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가 원작을 존중하는 법


데드스페이스를 훌륭히 재탄생시켰다는 평을 듣는 EA의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2023). 부산 벡스코 컨퍼런스 홀에서 진행된 ‘지스타 컨퍼런스(GCON)’에서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 개발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데드스페이스의 게임 디렉터 에릭 바티자가 강단에 섰다. 그는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디렉터였으며,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 프로젝트로 EA에 입사해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를 작업했다.

서바이벌 호러 게임의 매니아였던 에릭 바티자는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개발 첫 스텝부터 다양한 문제에 부닥쳤다. 1인칭 오프라인 게임을 만드는 것의 위험성, 빛나는 대작을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옛날 게임은 싫다는 의견 등 다양한 문제에 봉착했다. 하지만 첫 테크 데모를 만들고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에릭 디렉터는 개발 과정에서 깨달은 다섯 가지 지침을 만들고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 초집중(Laser Focused)를 포함한 5개 요소를 지침으로 삼았다

1. 원작을 살리는 방법(True to Original)

2008년에 출시한 원작 데드스페이스는 스페이스 호러 장르의 창시자이며, 많은 팬이 아직도 즐기는 걸작 호러 게임이다. 팬들은 펄스 라이플의 ‘손맛’이나 그 사운드까지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작’을 다시 만드는 방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1탄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향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에릭은 팀원들을 모아 몇 달에 걸쳐 1편을 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졌다. 데드스페이스가 왜 좋은 게임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원작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설픈 리메이크는 원작의 느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원작을 살리는 방법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커뮤니티다. 제작진은 데드스페이스의 팬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그룹을 만들고 그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작업물을 공유했다. 커뮤니티는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며 피드백을 보냈다. 솔직한 피드백을 요청했고, 커뮤니티와 함께 팬들을 위한 게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대표적인 수정 사항은 아이작의 기본 무장인 펄스 라이플의 사운드다. 초기에는 원작 데드스페이스와 똑같은 효과음을 썼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은 사운드가 어울리지 않다고 지적했고, 과감하게 사운드를 바꿨다. 이런 식으로 피드백을 통해 원작의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발 방향을 정해갔다.

▲ 이제는 서바이벌 호러의 대명사가 된 데드스페이스 원작

▲ 팬들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공이 컸다

데드스페이스의 가장 유명한 기믹은 바로 ‘사지 절단’이다. 머리를 노리는 일반적인 슈터 게임과 달리 데드스페이스의 적인 네크로모프는 사지가 약점이다. 플라즈마 커터로 사지를 자른 적을 밟아 죽이거나 다리를 잘라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화력을 쏟아 붙는 등 사지 절단은 데드스페이스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다만, 원작의 사지 절단은 말 그대로 팔과 다리가 끊어지는 정도라 현대 슈터 게임에서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원작의 사지 절단을 발전시킨 껍질 시스템(Peeling System)을 개발하게 된 이유다. 껍질 시스템이 적용된 네크로모프는 살과 골격을 가지고 있으며 네크로모프의 사지를 쏘면 사지가 바로 절단되지 않고 살이 뚫린 후 골격이 끊어지는 자연스러운 단계를 거치게 된다. 껍질에 레이어를 두면서 다른 무기와의 실감 나는 상호 작용도 가능한데, 화염 방사기를 쏘면 피부만 녹아 없어지는 식이다.

다만, 연출을 강화하면서도 사지가 끊어지는 타격 횟수는 동일하게 설정했다. 원래는 껍질마다 각기 다른 타격을 설정했지만, 원작을 체험한 유저들이 기존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보내왔고, 원작과 동일한 방식으로 수정하게 됐다. 이렇게 원작을 개선하면서도 조율점을 찾는 것이 에릭 디렉터가 말하는 ‘원작을 살리는 방법’이다.

▲ 원작의 사지 절단 시스템은 조금 단순하다

▲ 개발 도중 무서움 경감을 위해 사용한다는 고양이 사진

▲ 게임에서는 피부가 벗겨지고 골격이 파괴되는 과정이 생생히 보인다

2. 공포(Horror)

에릭 디렉터는 공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테러(Terror)’를 꼽았다. 테러는 긴장감이 있어서 가슴이 뛰는 순간이다. 공포의 순간 그 자체보단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을 말한다. 서바이벌 호러 게임에서는 절대 유저를 그냥 놀라게 하지 않는다. 적과의 조우 이전에는 음악을 고조한다거나 적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거나 눈앞을 슥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 서서이 조여오는 상황적인 공포를 ‘테러’라고 한다.

하지만 서바이벌 호러 장르에서는 ‘테러’를 통제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 방에 있는 모든 적을 죽여버리면 된다. 그러면 유저가 방 안에 머무는 한 그 방에 있는 긴장감은 0이 된다.

이 부분을 개선하고자 ‘긴장 감독'(Intensity Director)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긴장의 수준을 항상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상황을 감지하고, 긴장 레벨을 1~10까지 정한다. 긴장 단계별로 ‘스모그’, ‘소리 효과’, ‘빛’ 등이 추가되며 최종적으로 긴장이 최고가 되면 네크로모프가 스폰된다. 같은 복도를 걸어도 긴장 레벨이 점차 상승하고 유저는 끊임없이 공포를 느끼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탄약과 무기가 제한된 서바이벌 호러에서 적이 지속해 리스폰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훌륭한 시스템이어도 유저 입장에서 불쾌한 경험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적절한 부분까지 조율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하다 보니 적당한 선을 정할 수 있었고, 결국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 긴장감을 뜻하는 ‘테러’를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 긴장감 유지를 돕는 ‘긴장 감독’ 시스템을 개발했다

▲ 게임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긴장감은 다 이 시스템의 덕분이다

3. 끊이지 않는 경험(Unbroken Experience)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임 플레이다. 끊임 없는 플레이는 유저가 몰입감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유저는 생각보다 쉽게 집중력을 잃는다. 카메라 컷씬이나 로딩, 앵글 전환 등으로도 몰입은 깨진다.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에서 끊임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먼저, 원 데드스페이스의 이시무라 맵이 문제였다. 모든 챕터가 로딩으로 따로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 각각의 챕터를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에 게임의 레이아웃을 대대적으로 고치게 되었다. 기존 방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경험이 잘 이어지도록 하는 작업이다.

‘트램’이 대표적이다. 트램을 통해 이동하면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다른 공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는 로딩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처리도 빠르다. 대신, 유저의 몰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이동 시간을 정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무중력 유영도 비슷한 맥락이다. 원작에는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해 다양한 조작이 필요했다. 리메이크는 2편의 무중력 시스템을 가져와 더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1편과 같은 공간이지만, 무중력 유영을 통해 탐험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바꿨다. 1편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하게 됐다.

▲ 구판의 이시무라는 로딩이 많이 필요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 트램을 통해 흐름을 끊지 않는 이동 방식을 고민했다

▲ 원작에는 없는 무중력 유영 모드

4. 창의적인 게임플레이(Creative Gameplay)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들은 유저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도구나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데드스페이스의 무기는 너무나도 아이코닉 한 존재였다. 팬들은 1편의 무기들은 다 좋아한다. 어떤 무기가 있는지, 사용법부터 사운드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의 주된 운영을 바꾸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화염 방사기는 예외였는데, 상대적으로 애착이 덜한 무기다 보니 실험을 해보게 됐다(원작에 비해 크게 상향됨). 대신 보조 무기에서 많은 시도를 했다.

라인 건이 대표적이다. 라인 건의 보조 무장인 레이저 트랩은 함정을 설치하는 간단한 보조 기능이지만, 기존에 있는 무기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했다. 라인 건으로 레이저 트랩을 설치한 구조물을 키네시스 모듈로 들면 움직이는 빔 함정을 라이트 세이버처럼 휘두를 수 있다. 이렇게 원작 요소와 조합이 되는 방향으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유도했다.

원작 무기들의 로직을 유지하면서도 상호작용을 추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하게 됐다. 원작에서는 상호 작용이 불가능했던 오브젝트들을 키네시스 모듈로 뜯어 날릴 수 있거나, 오브젝트마다 각기 다른 판정의 피해를 주는 등의 상호 작용 요소들이 있다.

퍼즐 요소도 강화됐다. 유저들이 퍼즐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 수 있도록 원작의 퍼즐에 상호작용을 추가했다. 힌트도 플레이어가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힌트를 직접/간접적 다방면으로 제시했다.

▲ 리메이크에서는 키네시스 모듈로 들 수 있는 오브젝트가 늘어났다

5. 초집중 상태(Laser Focused)

끝으로 에릭 디렉터는 개발의 마무리 단계에서 초집중 상태를 강조했다. 초집중이란 특정 시점에서 어떤 결과에 대해 퀄리티를 높여보는 것이다. 이것저것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는 것도 좋지만, 초집중을 통해 세세하게 퀄리티를 높여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양에 집중하더라도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단계가 되면 퀄리티를 높이는 게 중요했다. 어떤 요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흘러갔다. 긴장 감독 시스템은 성공적이었다.

▲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퀄리티를 높이는 마지막 단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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