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 리뷰

페이트 시리즈는 일반 유저들에게도 잘 알려진 서브컬쳐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고대원시전설신화 그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꽤 오래 전 일본 문화 개방과 함께 ‘서브컬쳐’란 개념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축을 담당하는 시리즈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 기원이 된 ‘페이트/스테이 나이트’ 이후로도 여러 미디어 믹스를 전개하는 한편, ‘페이트/엑스트라’, ‘페이트/그랜드 오더’ 등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아도 페이트 세계관을 확장할 다양한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원작 이상의 흥행은 기록했어도 게임플레이에서 널리 호평을 받았던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스토리야 타입문의 세계관을 구축한 나스 기노코 본인이 직접 집필하거나 감수하면서 컨트롤했지만, 그 복잡한 세계관을 게임플레이와 결합해서 시너지를 빚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간 여러 개발사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딘가 하나씩은 아쉬운 구석이 있었죠.

그래서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가 처음 공개됐을 때도 그렇게까지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덕심이 있으니 눈독은 들였지만,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과연 페이트 시리즈의 잔혹사(?)를 끊어낼 만한 작품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죠. 페이트/그랜드 오더 아케이드가 국내에 들어올 리가 없으니 그 감성으로 애정캐 중 하나인 무사시를 조작해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랬던 터라 기대를 배신(?) 당한 느낌이지만, 이제야 ‘페이트’나 ‘타입문’ 시리즈 입문을 시킬 때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게임명: 페이트/사무라이 액션
장르명: 액션
출시일: 2023. 09. 28.
리뷰판: 1.01 버전
개발사: 타입문, 코에이테크모
서비스: 디지털터치
플랫폼: PC, PS5, Switch
플레이: PS5

“이게 그거였구나” 타입문 세계를 게임플레이로 쉽게 풀어낸 내공

페이트 시리즈의 첫 작품, ‘페이트/스테이 나이트’는 2004년에 출시됐습니다. 그러니 이제 곧 20주년을 맞이하는 셈이죠. 그 동안 나온 미디어믹스 작품만 해도 여러 가지입니다. 각각 세부 시리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서로 크게 연관성은 없고 그 특유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느슨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관의 키워드들을 필연적으로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구성으로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죠.

사실 페이트 시리즈를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전세계 신화나 전설, 민담 혹은 역사 속의 영웅들이 다른 시대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 현현한 뒤 그들과 함께 여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이야기긴 합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관과 용어 그리고 서사의 구조가 난해한 편입니다.

물론 “묻겠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시절부터 언급된 마스터나 서번트 같은 용어야 영단어 뜻대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예장 등 타입문 세계관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술 관련 용어나 체계는 다른 작품에서 보기 어려운 구조라 처음 접했을 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조금 파고들다보면 다른 익숙한 개념에 치환해서 이해할 수는 있는데, 낯선 단어 위에 해설 같은 표기를 별도로 적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단어들이 쭉 나오는 게 달갑지만은 않죠. 라이트노벨이나 일본 서브컬쳐 작품을 좀 파고들었다면 그런 스타일이 낯설지는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저렇게 해야 할까 싶으니까요.

▲ 지금 시대에도 갑작스럽게 세이버라고 하면 ??? 소리가 나오는데, 에도 막부 시대면 뭐

그래서 서브컬쳐 게임에서 세계관이 복잡한 게임들은 유저의 분신 혹은 스토리를 이끌어갈 주인공이 그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기억을 잃은 설정을 주고는 합니다. 그래야 그 낯선 세계관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갈 당위성이 주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때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장황해지거나 혹은 “그런 건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이런 식으로 일축하는 함정에 빠진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페이트’ 시리즈는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 세계관의 매력 자체야 말할 것도 없이 잘 되어있지만 낯선 용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전개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오래도록 구축해온 시리즈다보니 처음 접하기엔 무엇부터 알아야 할까 걱정부터 들기 마련이죠.

그런 문제를 인식해서인지,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의 서사의 초반부는 시리즈의 원점인 ‘페이트/스테이 나이트’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성배 전쟁, 여기서는 영월 의식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주인공과 그 전쟁에 대해 반 정도는 알지만 변칙적인 수라던가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밥을 좋아하는 세이버 서번트, 타입문의 마술 세계관에 잘 알고 있는 조력자 등등 보다보면 페이트/스테이 나이트의 구도를 에도 막부 배경으로 하면서 좀 더 입문하기 쉽게 다듬은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 역시 페이트 주인공은 얼굴은 달라도 세이밥이어야….읍읍읍

여기에 흔히 원어식으로 후리가나라고 말하는 그런 표기나 개념은 지양하고, 이미 오랜 세월을 거쳐서 페이트 시리즈에 정착된 개념들 위주로 전개하면서 단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상을 제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해설이 굳이 필요하지 않게, 말이 아닌 ‘게임플레이’로 보여줬다는 것이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의 놀라운 성과입니다.

그간의 페이트 시리즈를 살펴보면 그 개념을 온전히 게임플레이에 녹여내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이템 등 익숙한 요소를 그냥 페이트 시리즈 단어로 끼워맞추거나, 혹은 페이트 시리즈 특유의 ‘제약’을 게임으로 표현하려다보니 플레이 방식도 제한되어버려서 재미를 반감시켜버리곤 했죠.

물론 코에이테크모가 그간 타 회사의 IP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을 때처럼, 이번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도 기본은 무쌍류입니다. 그러니 잡졸이나 잡몹들은 무기 몇 번 휘두르고 휘둘러서 추풍낙엽으로 만들고 좀 센 무장과 싸울 때 이리저리 치고 빠지다가 화끈하게 필살기를 먹여주는 그런 시원한 스타일이죠. 개발사는 다르지만 ‘페이트/엑스텔라’나 ‘페이트/엑스텔라 링크’에서도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검증된 방식입니다. 타입문 세계관에서 서번트가 원체 강력한 존재들이라, 그들의 활약을 보여주기엔 그만큼 좋은 게 없겠죠.


그런데 여기에 타입문의 마술적 세계관을 덧입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장’이라는 것도 간단히 생각하면 장비라고 보면 되긴 할 텐데,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혹은 몇 년도 작품이냐에 따라 그때그때 묘사가 달라져서 100%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스토리와 세계관의 중핵인 나스 기노코 본인이 페이크로 혹은 설정을 다시 정립하면서 이리저리 바꾸는 경우도 있으니, 우스갯소리로 타입문 팬 사이에서는 “나스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팬으로서는 삼류”라는 말까지 할 정도입니다.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에서는 그렇게 혼선이 갈 만한 것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이야기에 필요한 그리고 페이트 시리즈에서 성배 전쟁을 다룰 무렵에 썼던 핵심 개념 몇 개만 추려서 게임플레이를 구성했습니다. 무쌍류를 베이스로 하되, 거기에 ‘영맥’이나 여러 마술적인 개념을 턴제 시뮬레이션에 도입하거나 전투 중에 직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재해석한 것이죠.

영맥 관련해서 턴제 시뮬레이션을 도입했다지만, 그간 무쌍류를 즐겼던 유저라면 ‘거점’을 점령한다고 보면 편할 겁니다. 무쌍 본가에서도 종종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미션이 있었으니까요. 다만 이번에는 턴제로 진행되는 게 좀 다르긴 합니다. 한 턴에 한 칸씩 움직이면서 영지를 차츰차츰 넓혀가고, 중간중간 결계를 깰 수 있는 소영맥을 확보하거나 아군 본진을 노리는 적을 요격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면서 수를 두어야 하죠. 이에 도움이 되는 원호 예장을 확보하거나, 서번트의 ‘단독행동’ 특수능력을 여기서 활용해 서번트만 따로 전장으로 보내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마술 공방’이니 여러 마술로 강화한다는 개념도 그간 무쌍류나 여러 스타일의 액션 RPG를 소화했던 코에이테크모답게 육성 및 전략 요소로 활용,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바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해서 타입문의 세계관에서 직접 검을 휘두르고 마술을 사용하며 헤쳐나가는 묘미를 살려냈죠.

▲ 영맥과 그 연결의 중요성을 게임플레이로 보여주면서 신중하게 수를 두는 전략성까지 가미하고

▲ 타 작품에서 여러 가지로 꼬아서 표현했던 개념도 알기 쉬운 육성과 업그레이드 개념으로 풀어냈습니다

코에이테크모의 액션 노하우가 페이트의 스토리를 만나 빚은 몰입감

▲ 왜 페이트 시리즈에서 마술과 신비 개념이 중요한지 몸으로 이해시켜주는.webp

타입문 세계관의 설정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게임플레이로 풀어냈다, 무쌍류의 기본이 잘 되어있다는 점에서 이미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액션도 단순히 ‘무쌍류’가 아닌, 그간 코에이테크모의 다양한 노하우를 페이트식으로 승화하면서 차별화를 꾀한 것도 상당히 인상 깊은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토리, 세계관과 연계해서 한층 맛을 끌어올린 것도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죠.

일단 이야기의 시작은 미야모토 무사시의 양자인 ‘미야모토 이오리’가 영월 의식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유이 쇼세츠와 라이더의 습격을 받은 이오리의 앞에 세이버가 등장하고, 영월 의식에 엉겁결에 참여하게 된 이오리는 세이버와 함께 영월 의식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게 됩니다.

‘함께’라는 단어에서 이미 짐작하겠지만, 이번 작품은 여타 페이트 시리즈와 달리 ‘마스터’도 전면에 나섰습니다. 페이트 시리즈 팬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만한 내용이죠. 포켓몬으로 따지자면 포켓몬 배틀에 트레이너도 칼을 휘두르면서 참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미야모토 이오리가 유명한 검호 무사시의 양자이자 그에게서 검술을 사사받기는 했지만, 단순 검술로는 온갖 마술적인 개념 그리고 ‘신비’라는 것에 유의미한 피해를 못 입히는 게 타입문 세계관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마스터가 칼을 휘두르면서 무쌍을 찍는다는 게 팬 입장이라면 이해하기 어렵죠.

▲ 검만 아는 마스터로는 괴이도 상대하기 어려운 판에 서번트에 맞선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 여기서도 마스터를 찾아내서 먼저 노리는 게 정석!

정확히 말하면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는 무쌍류 100%가 아닙니다. 애초에 코에이테크모가 무쌍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인왕’, ‘와룡’ 등 고난도의 액션도 훌륭히 소화하는 게임사니까요. 그 두 노하우의 배합이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의 액션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키워드일 겁니다. 페이트/스테이 나이트 이후 여러 마술적인 소양이나 지식을 어느 정도 깔고 있던 주인공들과 달리, 아예 마술은 모르지만 스승 무사시도 인정할 만큼 검술을 수련한 주인공이 잡졸들은 검술로 썰어버리고 서번트나 기타 괴이들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찔러대다가 시장에서 구했던 홍옥의 서에서 배운 보석 마술을 활용하거나 서번트와 협공 혹은 교대해서 공략하는 게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의 플레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왜 굳이 서번트가 메인이 아닌 ‘마스터’를 메인으로 내세웠나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도 시대적인 배경이나 인물 간의 구도 그리고 게임플레이로 잘 조화시킨 것이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전국 시대 전란의 한복판이 아닌, 평화가 찾아온 에도 막부 초창기 에도 한복판에서 서번트들이 날뛰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이미 게임 초반에 예시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월 의식에 참가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막부에 반감을 가진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국 시대 같은 동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죠. 민초들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영월 의식이라는 걸 표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물밑 싸움 구도의 당위성을 이런 식으로 부여한 셈입니다.

그리고 마스터가 직접 서번트나 각종 괴이와의 싸움에도 참가하는 구도를 통해서 고난도 액션 스타일을 가미하는 한편, 타입문 세계관 진입장벽 중 하나인 ‘신비’와 ‘마술’에 대해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왜 마법이 아닌 ‘마술’이라고 하는지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고, 어쨌거나 저게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아마 해리포터 세계에서 마법사와 머글의 관계로 설명하는 게 쉬울 거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피해를 못 입히는 건 아닌데, 마술적인 무언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신비가 깃든 존재 혹은 마술적인 무언가에 의미있는 타격을 주지 못하거든요.

최후의 생존자를 가리는 시점에 가까워지면서 이오리는 서번트나 다른 마스터와의 교류를 통해 보석 마술 등 다양한 수단은 물론이고 검술도 한층 더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땀 한 땀 피하면서 깎아내거나 서번트를 불러서 보호 게이지를 다 벗겨내야 했는데, 점점 더 경쟁 서번트로 등장한 사부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술에 가까워지면서 어지간한 괴이는 그냥 혼자서 처치해버릴 수준까지 성장하는 구도를 게임플레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죠. 각 자세별 특징과 이를 활용한 다양한 검술, 비검에 보석 마술까지 차근차근 숙달하면 서번트 상대로도 교대나 서번트 호출 없이도 무난히 상대할 수 있게 되니까요.

▲ 페이트 팬이면 무사시가 여자로 나온 것쯤은 별 거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다른 세계 무사시는 이렇습니다

▲ 원체 유명한 검사에 주인공의 스승, 그리고 서번트이기까지 하니 그 검술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죠

▲ 그에 자극 받은 주인공도 점차 어지간한 유귀 따위는 한 칼에 베어버릴 정도로 성장합니다

물론 소울류와는 다른 감각의 회피-응격 시스템이 처음에는 손에 잘 안 익어서 힘들지만, 뒤로 물러나거나 제자리에서 발동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파고들듯 피해야 반격이 확정적으로 잘 들어간다는 것만 이해하면 비교적 수월해집니다. 보통은 칼이 들어오면 빼기 마련이고 서번트를 상대로 마스터는 안 싸우기 마련인데, 그런 거 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파고들며 검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이오리의 스토리 속 모습과 게임플레이를 일체화시켰다고 할까요? 심지어 적의 공격도 회피나 방어 외에, 먼저 강공격이나 마술 혹은 서번트와의 연계기로 깨뜨리는 등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컨셉으로 풀어낸 것이 여타 게임과 차별화된 포인트인 셈입니다. 물론 그것에만 치우치면 소울라이크가 되어버릴 테니, 체력 회복 수단만큼은 좀 여유롭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융통성도 빠질 수는 없지만요.

어쨌거나 그런 성장과 함께 세이버가 점차 이오리에게 마음을 열어가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밝히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이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를 플레이하는 내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이를 표현하는 기재가 필살기를 넘어 서번트의 상징 그 자체인 ‘보구’를 뒤늦게 알려주는 것인데, 그게 단순히 시스템적으로 늦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이버가 왜 소원을 잊었고 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내면의 갈등과 당시 상황을 현재에 빗대서 서브리미널 시그널마냥 살짝살짝씩 보여주고 있거든요.

한편으로 이오리도 세이버와 만나 여러 괴이나 서번트와 상대하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걸 느끼지만, 세이버의 강력한 힘과 그 정체에 대해 짐작하면서 호승심이나 여러 복잡한 감정에 얽혀있는 게 게임플레이로도 묘사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번트와 1:1로 싸우는 마스터라는 건 페이트 세계에선 어지간해선 성사가 안 될 일이지만, 그 정도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빌드업을 거쳤거든요. 그리고 서로 검을 부딪히면서 알아간다는 고전적이지만 효과적인 스토리 전개까지도 이끌어가면서 ‘모르면 알아와라’가 아닌, ‘몰라도 알 수 있는’ 그런 포지션으로 페이트 시리즈 그리고 타입문의 세계관에 이끌고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 검을 맞대며 전해지는 진심이라는 왕도적인 내러티브가 엮이면서 몰입감은 높이고 장벽은 낮췄습니다

고대원시 페이트는 물론이고 페이트/그랜드 오더에 페이트/엑스텔라 링크까지 패키지로 나온 게임도 꾸역꾸역 해온 입장에서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는 여러 모로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그 복잡하게 얽혀서 도저히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시원하게 게임플레이로 풀어냈고, 그 게임플레이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죠.

무쌍류로 잡졸들은 베어버리지만 각종 괴이, 서번트가 출몰할 때는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기조로 완급을 조절하고 세계관에 대한 내용을 복잡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시켰습니다. 거기에 방어보다는 선제 공격으로 상대의 수를 깨뜨리는 과감한 스타일을 더하면서 신중한 플레이와 시원한 액션을 동시에 살렸죠. 여기에 각종 마술 개념을 그간 코에이테크모가 축적한 무쌍 및 여러 액션 RPG의 요소로 풀이하면서 진입장벽도 낮추고 완성도도 높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에 스토리도 게임플레이에 맞춰 잘 녹여내면서, 그간 ‘썰’로 듣기만 했지 너무 방대해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페이트’라는 시리즈의 매력을 알기 쉽게 잘 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순히 명령-복종하는 관계나 신뢰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서번트-마스터 간의 관계, 여러 마술적인 용어와 개념도 영월 의식을 전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게끔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기존 팬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아서 페이트 시리즈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팬서비스도 충실합니다.

▲ 에이 설마 그 양반이겠어 싶겠지만

▲ 역시나 금삐…아니 AUO군요. 여윽시 아처로 현현 안 하고 성배 전쟁 참가만 안 하면 현자 그 자체인…

▲ 타입문 세계에 빠질 수 없는 ‘시계탑’까지 개입을?

물론 여느 게임이 다 그렇지만, 이 게임도 완벽한 게임은 아니긴 합니다. 우선 그래픽이 좀 아쉽죠. 닌텐도 스위치까지 고려했다고 이해하고 싶어도, 정작 닌텐도 스위치 버전에서는 최적화 문제가 불거지고 있으니 그래픽에서 목표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서번트나 주요 등장 인물은 일러스트에 맞춰서 잘 구현하려고 하는 편인데, 나머지 배경 디테일이나 이펙트를 보면 현세대의 느낌은 확실히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쌍류 베이스에 고난도 액션 요소를 더하다보니, 무쌍류의 고질병인 타격감 문제가 유달리 좀 크게 느껴지는 것도 흠입니다. 그냥 잡졸을 파도타기로 확 쓸어버리거나 비검으로 단칼에 베어버릴 때는 별 생각 없지만, 서번트나 좀 급이 되는 괴이들과 싸울 때는 좀 얘기가 달라지죠. 피한 뒤에 반격하고 방어를 깨뜨리고 선제공격으로 파훼하는 등 여러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데, 그것도 뭔가 픽, 픽 때리는 느낌이라 흥이 살지는 않거든요. 그나마 방어 뒤 반격보다는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더 적극적인 스타일을 더해서 좀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맛이 있는 거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그 밋밋한 타격감 때문에 액션에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쌍류 타격감이 안 좋다고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유달리 이 게임이 타격감이 부족해보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타입문 팬이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츄라이츄라이 해볼 수 있는 구성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는 확실히 의미가 있는 타이틀입니다. 그간 서브컬쳐 게임사, 아니 서브컬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시리즈지만, 스토리나 캐릭터 외에 나머지 분야는 항상 모자라서 매번 팬조차도 ‘팬이라서 산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오가던 시리즈였으니까요. 특히나 패키지 게임은 더더욱 그랬고요. 비주얼 노벨로 시작한 원작이야 원래 스토리만 강조되는 장르니 그런 비판은 안 들었지만, 그 외에 다른 뭔가가 엮이는 순간에 그 요소들이 오히려 몰입감에 방해가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랬던 게 이제 조금은 방향성을 잡은 듯하니, 이 경험을 살려서 다음 번 페이트 패키지 게임도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번 페이트 패키지 게임이 어떤 개발사와 나올지는 모르겠고 장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는 스토리에 맞춘 게임플레이 설계가 무엇인지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니까요.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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