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쳐3, 사이버펑크 2077의 개발사 CDPR이 20일부터 24일까지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진행하는 GDC에 참가했다. 핵심 개발자 다수가 GDC에 참석한 가운데, 위쳐3 확장팩의 사이드 스토리부터 시작해 사이버펑크 2077의 퀘스트 전반을 담당한 파벨 사스코 퀘스트 디렉터도 무대에 올랐다.
CDPR은 역대 최다 GOTY 기록을 달성한 위쳐3는 물론, 사이버펑크2077도 마치 게임 내 세계관에 녹아들어 가는 듯한 몰입감 있는 내러티브를 선보여왔다. 사이버펑크2077는 초창기 버그 및 충돌 이슈 등으로 삐걱거렸으나, 기업의 압제에 기계화된 신체가 일상화되면서 인간성이 옅어진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정교하게 그려낸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좋은 스토리를 넘어서 아직도 회자하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게임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쳐3 확장팩 하츠 오브 스톤의 사이드 퀘스트부터 시작해 위쳐3 블러드 앤 와인, 사이버펑크2077의 퀘스트 전반을 설계한 파벨 사스코 퀘스트 디렉터는 CDPR이 게임 퀘스트와 내러티브를 짤 때 짚고 넘어가는 10가지 항목에 관해 설명했다.
우선 CDPR에서는 내러티브 파이프라인이 스토리 아웃라인 – 퀘스트 디자인 문서화 – 초안 작성을 거쳐서 프리 알파, 알파, 베타, 그리고 출시 전 폴리싱까지 이어진다. 스토리 아웃라인과 퀘스트 디자인 문서화 작업은 각 단계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판단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안건이 초안 작성 단계에서 거부되면 다시 각 단계로 돌아가서 재검토 및 반복이 이어진다. 이 작업은 시나리오팀뿐만 아니라 퀘스트 디자인팀도 참가, 이야기를 어떻게 연출하고 퀘스트로 풀어낼지를 같이 고민한다.
그 과정은 크게 플롯 조정, 내러티브 구조화, 디자인 개선 3단계의 층위에서 검토 및 설계가 이루어진다. 우선 플롯을 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은 유저가 게임에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위쳐3, 사이버펑크 2077에서 유저는 각각 게롤트와 V가 되어서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게임플레이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단순히 개발자가 던져주는 이야기의 구도만 따라가지 않는다. 화면에 갑자기 누가 죽어있는 모습이 등장하거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면 이를 알아보고자 여러 행동을 취하게 된다. 결여된 무언가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게임사가 플롯과 동선을 짜는 과정에서 유저의 그러한 행동에 맞춰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실제로 그 세계 속에서 유저가 참여한다고 느끼게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스캔이 가능한 만큼, 자연히 유저는 사방을 스캔하면서 단서를 찾고자 한다. 그때 결정적인 단서가 쉽게 노출이 되어버리거나 정반대로 어떤 정보도 없으면 유저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플롯과 퀘스트 동선을 맞춰나가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만으로는 유저의 관심을 끌어오기 어려운 만큼, ‘임팩트’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넣어야 할지도 고민해야만 했다. 사이버펑크 2077에서 이블린이 죽은 뒤 주디의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스토리뿐만 아니라 연출에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줄 장치가 필요했다. 플롯 작성 단계에서는 슬퍼한다는 정도만 언급됐지만, 게임 화면에서는 그대로 연출했을 때 밋밋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주디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화장이 번지면서 검은색 눈물이 나오게끔 수정, 시각적인 임팩트를 통해 주디의 감정과 상황을 유저에게 좀 더 확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됐다. 위쳐3에서 시리가 각성하는 장면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실하게 인지시킬지 고민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사스코 디렉터는 그냥 단순히 스토리라인만 쭉 이어지는 구도로는 유저들이 어떤 것도 기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많은 양의 이야기를 속독으로 읽어줘 봐야 그 내용은 온전히 기억에 남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많은 양의 이야기를 단순히 화려한 이펙트로 떡칠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보다는 완급 조절, 특히 중요한 씬과 시퀀스에서 기억에 남을 법한 연출이나 구성을 항상 고려해둔 것이 더 유저들의 기억에 잘 남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 스토리를 쉴 새 없이 빠르게 전개해나가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부분을 구현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됐다. 스토리 전개의 퀄리티에 대한 신뢰감이 조성되려면, 비인간적으로 어떤 감정의 변화나 상황에 대한 전개 없이 바로 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두 남녀가 만나자마자 동침하는 그런 전개가 아예 없진 않지만, 그런 패턴이 계속 이어지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개발진의 수준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
그보다는 각 캐릭터가 서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그 사이 일부 공백이 있는 현실적인 인간 관계와 비슷한 묘사를 통해서 인간다운 캐릭터에 대해 그리고 개발진에 대한 신뢰가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이버펑크2077의 핵심 이야기는 결국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에서 절대적 지배자 아라사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 모두가 그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따로 노는 듯한 그 플롯이, 사이버펑크2077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다운’ 캐릭터를 만들고 이것이 공감과 신뢰를 불러오는 구도가 사이버펑크2077 퀘스트의 원동력 중 하나인 셈이었다.
플롯을 보고 연출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조정할 때 필요한 부분을 짚은 후에는 내러티브 구조를 어떻게 짤지 고민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파스코 디렉터는 이때 가장 먼저 ‘간결함’을 언급했다. 유저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면 좋긴 하지만 굳이 알아도 되지 않은 부분은 중언부언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면 오히려 핵심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 반복 설명에 짜증 난 것만 기억할 확률도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어떤 중요한 정보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쓸데없는 부분을 자잘하게 보여주는 기법도 있었다. 그냥 단순히 메시지만 나열하면 유저들은 다 평이하다고 생각해 집중력이 낮아지지만, 노이즈 사이에 중요한 메시지가 섞여 있으면 오히려 이를 더 잘 듣기 위해 집중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위쳐3와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단순히 소리뿐만 아니라 씬의 시퀀스, 카메라의 움직임, 구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한 것을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여러 차례 확인해볼 수 있다.
스토리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선택지’에 대한 체크도 이어졌다. 선택지를 만들 때 유의할 점은, 유저들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최선의 선택이라는 답은 굉장히 모호하고, 모든 유저의 니즈에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CDPR에서는 이 최선의 선택을 ‘유저’가 그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입장에 전적으로 몰입해서, 어떤 선택지든 고른 뒤에 그 캐릭터의 반응과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스코 디렉터는 사이버펑크2077 출시 이후, 스트리머들이 멜스트롬 갱단에 들어가서 무례하게 구는 멜스트롬 갱단을 제압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장면을 예시로 들었다. 당시 많은 스트리머들이 늑장부리면서 일부러 떠보는 행태를 보여준 멜스트롬 갱단에 열받아 있었고, 그때 마침 V의 행동 선택지에도 열받아 있다는 것이 명확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걸 고르면서 스트리머들은 망설임 없이 멜스트롬 갱단을 욕하고, V 역시도 그때 욕하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유저와 그 분신인 캐릭터의 선택이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 셈이었다.
이 부분에서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어떤 결말을 빨리 보여주기 위해 서두르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스토리 전개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캐릭터들을 재깍재깍 등장시키는 것은 임팩트가 부족하다. 종종 극 중에 중요한 인물들이 때로는 늦게, 천천히 클로즈업되면서 등장하는 연출을 사용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단순히 빠른 템포로는 어떤 임팩트를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방적으로 결과만 보여주기 위해 빠르게만 빌드업하는 것으로는 세계관의 맥락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사이버펑크 2077에서 라디오, TV쇼까지 퀄리티도 예사롭지 않다, 이 부분은 흔히 말하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V가 어떤 선택을 할지, 유저가 그 입장에서 어떤 결말로 달려갈지 직접 보고 선택하게 하기 위한 빌드업이자 맥락인 셈이었다.
다만 게임은 삶을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인 만큼, 어떤 ‘의미’가 없다면 간소화하는 결단도 필요했다. 앞서 사례와 반대로 의미 없는 대화나 씬이 길게 이어지면 그에 지쳐서 유저들이 이탈하는 경우도 생기는 만큼,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사스코 디렉터는 CDPR의 스토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로 과감함과 새로움을 강조했다. 조슈아 스티븐슨이 십자가형을 당하는 브레인 댄스를 만드는 사이드 퀘스트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사이버펑크식으로 오마주한 퀘스트인데, 이는 종교계를 비롯해 여러 계층에서 심하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논란까지 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터부를 깨고 과감한 시도를 여러 차례 보여주었기 때문에 CDPR은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임사로 유저들에게 인지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 모든 스토리 설계 과정은 처음에는 담당자가 혼자서 혹은 몇몇이 생각해낸 것들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스토리가 그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른 팀원과 함께 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사스코 디렉터의 마지막 조언이었다. 1인 개발을 뺴면 결국 게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회사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모인 만큼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단서가 어딘가에는 있기 때문이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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