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스타레일 리뷰

호요버스의 신작, 붕괴: 스타레일이 지난 26일 출시됐습니다. 호요버스 게임 사상 처음으로 턴제 RPG를 채택한 만큼, 2021년 붕괴3rd 온라인 공연에서 깜짝 공개된 이후 1년 반 남짓 동안 세 차례의 테스트와 게임쇼 시연을 통해 담금질을 해온 작품이기도 하죠.

사실 전작 ‘원신’부터 그러한 행보를 보였던 만큼,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초 공개 당시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전작과 항상 비교가 오르내려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신’이 어느 새 서브컬쳐풍 오픈월드 RPG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고, 전투 방식이 다르고 IP도 다르다지만 서브컬쳐풍 오픈월드 RPG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초창기 CBT에는 콘텐츠 구조 자체가 너무 비슷해서 전작의 그림자를 미처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같은 개발사의 전작과 비슷하다는 게 게임을 평가할 때 크게 좌우하는 부분은 아니긴 하지만, 호요버스의 경우에는 여태까지 턴제 RPG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보니 다소 불안한 요소이긴 했습니다. 실시간 액션 게임과는 다른 노하우와 설계가 필요한 장르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그런 스타일을 먼저 선보이면서 노하우를 쌓은 일본의 개발사들도 가끔씩 삐끗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과연 호요버스가 그 과제를 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호요버스는 이번에도 자신의 덕력과 집념으로 이를 증명해내고 있는 중이죠.


게임명: 붕괴: 스타레일(Honkai: Star Rail)

장르명: RPG

출시일: 2023. 4. 26.

리뷰판: 1.0

개발사: 호요버스

서비스: 호요버스

플랫폼: PC/모바일

플레이: PC


호요버스의 노하우로 빚어낸 모험의 세계

호요버스는 이미 이전 ‘붕괴3rd’부터 여러 차례 오픈월드 콘텐츠에 대한 도전을 이어오고, ‘원신’으로 오픈월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경험이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우주를 무대로 하는 방대한 이야기를 그려낸 시도가 ‘붕괴: 스타레일’인 셈이죠.

제목에서 짐작하다시피, 이번 작품의 주요 소재는 별과 별 사이를 오가면서 은하를 여행하는 은하열차가 주요 소재입니다. 우주적인 존재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들이 세계에 퍼뜨린 영향력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 행성 그리고 우주 어딘가의 사건들이 앞으로 주인공 일행이 겪게 되는 모든 이야기에 연결되어있죠. 이번 출시 버전에서는 우주 정거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야릴로6, 선주 나부까지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 특성상 앞으로도 여러 행성을 떠돌며 파멸의 에이언즈가 남긴 ‘스텔라론’을 회수하거나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가 이어지리라는 건 전작의 사례를 봐서 짐작할 수 있죠.



▲ 출시 버전에서는 우주 정거장에서 눈 덮인 야릴로6, 동양풍과 SF가 섞인 선주 나부까지 공개됐다

어느 한 나라 단위가 아닌, 행성 그리고 우주 단위로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 만큼 원신처럼 심리스 오픈월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식을 대신 각 필드마다 경계를 명확히 그어둔 제한된 월드를 선보였습니다. 그렇게 각 지역이 따로따로 떨어진 만큼, 그 하나하나의 밀도와 그래픽 퀄리티를 전작보다 더 끌어올리고 테마에 맞춰 작업하면서 느낌을 살렸습니다. 스토리에서 중심이 되는 구간만 조명하는 일종의 최적화를 진행하면서 그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보다는 ‘개척’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설득력을 부여했죠.

물론 모험의 몰입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같이 모험을 떠나게 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좀 더 알 수 있는 서브 퀘스트, 맵 곳곳에 숨어있는 탐사 요소나 도전 콘텐츠, 돌발적인 이벤트 등 곁가지들도 튼튼해야 하죠. 그래야 메인 퀘스트가 안 풀리거나 했을 때 잠시 리프레시했다가 다시 모험을 이어갈 수 있고,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메인 퀘스트에 다시 집중하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 요소는 방식은 다소 달라도 호요버스가 이미 ‘원신’에서 여러 차례 풀어내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턴제 그리고 제한된 오픈월드에 맞춰서 새롭게 빚어낸 것이 놀랄 만큼 잘 작동하고 있죠. 그냥 승강기랑 길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컨테이너를 움직여서 한 곳의 진로를 열면 다른 진로가 안 열린다거나 회로를 맞춰야 하는 등 단순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퍼즐 기믹들이 곳곳에 보였거든요.

▲ 이런 것쯤이야 간단…아 잠깐 타임 타임

▲ 어쨌든 맞추면 보상 겟

▲ 강적을 무찌르고, 길을 개척하면서 탐사하는 맛도 챙겼다

여기에 곳곳에 숨어있는 보물상자를 찾으면서 퍼즐을 풀거나 강적과 마주쳐서 극복해내는 탐색의 기본 요소는 물론, 메인 스토리의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각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볼 수 있는 서브 퀘스트의 촘촘한 배치까지 잘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장르 특성까지 고려해서 꾸준히 플레이하다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스토리가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게끔 경험치 배분도 잘 해둔 터라, 모험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미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두 번째 지역인 선주 나부에서는 34레벨까지 올려야 그 다음 장이 열리다보니, 무작정 끝까지 주파하기는 좀 어렵긴 하지만요.

▲ 쭉 달려오다보 뭔가 수상쩍은 단체의 뒤를 캐는 서스펜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나 싶었지만

▲ 다음 이야기는 34레벨부터 개방 크흑…

어쨌거나 그렇게 클래식한 모험의 느낌을 살리는 한편, 세계관의 여러 기술을 각종 편의성에 연결하면서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도 붕괴: 스타레일의 또 다른 강점 중 하나였습니다. 캐릭터를 육성하고 키우는 재료를 단순히 합성해서 상위 재료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로 치환하고, 음식을 그 자리에서 만드는 것 외에도 퀘스트 진행 및 수락도 어느 정도 원격으로 진행되곤 하니까요. 은하를 누빌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세계다보니 이런 편의 기능들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조합의 재미를 십분 살린 시스템과 다양한 콘텐츠로 조정한 난이도 밸런스

다만 모험의 짜임새와 전투 방식을 제외하고 캐릭터 육성이나 스킬 구조를 보면 ‘원신’이 강하게 연상될 수밖에 없긴 합니다. 일반 공격과 전투 스킬, 필살기 체계도 그렇고 유물, 광추, 성혼 등은 이름만 바뀌었지 각각 성유물, 무기, 운명의 자리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죠. 결국 이야기나 모험도 좋지만 어쨌거나 적과 싸우고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만큼, 이 부분에서 원신과 과연 비슷한 체계를 선택한 붕괴: 스타레일이 어떤 완성도를 보여주냐가 관건인 셈입니다.

물론 원신에서는 속성 간 상성 대신 원소 반응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도입했듯, 이번에도 상성 구조나 전작의 원소 반응 대신 실드와 약점 그리고 브레이크라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적들은 각각 실드와 그 실드에 약점 속성이 부여된 상태고, 그 약점 속성을 공략하면 실드가 깨져서 일순 무력화가 되면서 순번이 밀리는 방식이죠.

약점 속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고, 실드가 있다고 해서 실드를 깨기 전까지 적에게 피해를 못 주는 건 아니긴 합니다. 그렇지만 적마다 약점 속성이 제각각 다르고, 몇몇 적들은 실드를 깨거나 상태 이상을 주지 않으면 꽤나 위협적인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약점 속성을 잘 공략한 파티 조합이 필요하죠. 또 전투 포인트를 사용하는 스킬도 파티원이 포인트를 공유하다보니 매번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의 패턴이나 아군 상황, 전투 포인트의 잔여량을 보고 전략적으로 스킬 배분을 해야 했죠.

▲ 실드의 약점을 깨서 일순 무력화하고, 에너지만 차면 턴에 상관 없이 발동하는 필살기로 유연함을 더했다

이런 구조를 통상적인 턴제 RPG에 더했다면 원래 복잡한 장르가 더 꼬이면서 진입장벽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차피 정직하게 서로 주고 받는 싸움이라 공격을 피하고 연타하는 컨트롤이 필요 없는 대신, 전략적인 선택의 부담감이 있는 장르니까요. 그런데 실수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커져버리면 선택 자체가 부담되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붕괴: 스타레일에서는 이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두었습니다. 우선 필살기는 에너지가 차는 순간부터 턴에 상관 없이 언제든 발동할 수 있게 했죠. 얼핏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한 턴에 한 번 움직이고 순서대로 친다는 턴제 전장의 규칙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라 그 효과는 확실합니다. 한 번 실수해서 적에게 턴을 넘겨줘서 뭇매를 맞을 상황이라고 해도, 필살기가 차는 순간에 바로 발동하면 한 번은 그 공세를 끊어버릴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더군다나 이런 시스템은 익숙해지면 조합을 어느 정도만 갖춘다는 전제 하에 무난하게 스토리를 뚫어버릴 수 있는 강점도 있습니다. 필살기와 게이지를 모아서 한 번에 폭딜로 보스의 주요 패턴을 사전에 봉쇄하고 쉽게 클리어하거나, 아니면 아껴뒀다가 주요 패턴 전에 필살기를 써서 패턴을 끊고 무난히 딜을 누적해서 클리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물론 보스의 약점을 격파하려면 속성 조합이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지급하는 캐릭터들로 약점 돌파가 가능하도록 스토리 콘텐츠가 짜여있어서 큰 무리 없이 주파가 됩니다. 대다수 전투는 여기에 비술로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디버프를 걸어놓고 선공을 할 수도 있으니, 체감 난이도도 상당히 낮은 편이죠.

▲ 초반에 실드로 쏠쏠하게 지원하면서 반격까지 하는 삼칠이뿐만 아니라

▲ 조패운이 때론 필요하지만 제레 없으면 대체제로 활용하게 되는 청작

▲ 힐과 디버프 해제로 생존을 책임지는 나타샤 등등, 기본 캐릭터도 고루 쓰이게 콘텐츠를 설계했다

▲ 육성 재료 던전에서는 정 급하면 친구 캐릭터를 빌려 쓸 수도 있다

이렇게 무난하게 끝나면 아마 머리를 쥐어짜서 한 수 한 수 두는 전투를 기대하는 유저 입장에선 싱거울 겁니다. 적 공격은 피하고 나만 이기적으로 때리는 컨트롤이 액션의 재미라면, 적에 맞춰 캐릭터를 조합하고 패턴을 예상하면서 승리를 향해 착착 수를 두어나가는 것이 수집형 턴제 RPG의 재미니까요.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 붕괴: 스타레일에서는 원신에 있던 월드 레벨과 유사한 ‘균형 레벨’을 도입, 레벨로 찍어누르는 걸 제약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일정 레벨 이상이 되어야만 그 균형 레벨을 올리고, 점차 콘텐츠도 그에 맞춰서 해금이 되게끔 조절한 것이죠.

나선 비경 같은 ‘망각의 정원’에 로그라이크 덱빌딩처럼 진행되는 시뮬레이션 우주도 추가로 선보이면서 조합을 짜고 도전하는 재미를 살렸습니다. 특히 시뮬레이션 우주는 디버프, 버프에 따라서 추가로 효과가 발동하거나 피해를 더 주는 다양한 조건들이 플레이하면서 붙는 경우가 많아서 그 두 가지 관리도 신경을 쓰면서 수를 두게 만드는 묘미가 있었죠.

▲ 평소에 디버프-버프의 전략성을 축소한 대신, 이를 로그라이크 덱빌딩 콘텐츠인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보강했다

뿐만 아니라 모험 중간중간 등장하는 강적들은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나 스킬들을 갖고 있어서 평소에도 상당히 대비를 해야 하는데, 도전 콘텐츠에서는 그런 강적들을 평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육성이 되었어도 제공되는 카드들이나 물품들을 잘 조합하지 않으면 쉽게 돌파하기가 어렵죠. 적도 특정 풀 안에서지만 어쨌든 랜덤하게 나오니, 예비 멤버들도 때로는 써먹을 필요도 있고요.

‘망각의 정원’에서는 시뮬레이션 우주와 달리 그렇게 빌드업을 하지 않고 바로 자신이 육성한 캐릭터를 고스란히 도전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추가 조건이 붙어있어서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조합을 우선 육성하면 좀 더 쉽게 돌파할 수 있게 해두었죠. 즉 어느 한 OP 캐릭터에만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육성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입니다.

▲ 툭하면 페널티 거는 수호자의 그림자부터

▲ 어지간하면 선턴 잡고서 바로 광역기 날리는 적까지, 적 배치가 CBT에 비해 까다롭지만

▲ 반복 파밍 자체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고속으로 뚫어버릴 수 있다

몰입감 있는 캐릭터, 그러나 고유명사로 쌓아버린 이야기와 답답함으로 엉킨 실타래

이처럼 붕괴: 스타레일은 ‘덕심’을 제외하고 보아도 짜임새가 잘 갖춰진 게임입니다. 그런데 호요버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덕심’도 뒷받침이 되었으니,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죠. 더군다나 원신처럼 실시간 액션 기반에 자유도가 높은 필드가 아니다보니 캐릭터의 모델링은 원신 때보다 더 일러스트에 싱크로율이 높아질 정도로 정교해졌고, 입모양도 각 언어마다 싱크를 맞췄기 때문에 대화하는 장면도 더욱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캐릭터도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것을 넘어서, 대기 모션이라던가 말투 그리고 행동에서 특색과 개성을 살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서브 퀘스트를 포진해두는 등 디테일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것 또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성우의 연기도 두 말할 것 없고, 거기에 메인 퀘스트에 주요 퀘스트는 풀더빙을 지원해서 몰입감을 한층 높였습니다.

더군다나 원신과 달리 시리즈 전작이 있어서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의 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부분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잘 풀어냈습니다. 히메코, 브로냐, 제레 등 전작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작과는 다른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또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붕괴에 있던 캐릭터가 아닌 ‘개척자’나 삼칠이라 불리는 마치 세븐스(Mar. 7th), 단항 등 신규 캐릭터의 비중도 적절하게 스토리에 맞췄습니다. 전작을 즐겼던 유저들에게는 반가운 캐릭터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묘미를, 신규 유저에게는 붕괴를 몰라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처음부터 쌓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죠.

이론만 보면 완벽하게 보이지만, 의외의 구석에서 허점이 보이는 게 ‘붕괴: 스타레일’의 문제입니다. 아니, 사실 이 문제는 엄밀히 말해 ‘붕괴: 스타레일’의 문제라기보다는 붕괴 IP 자체가 안고 있는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요. 바로 ‘붕괴’라는 키워드와 그 세계관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던져둔 떡밥과 고유 명사들이 과하다는 점이죠.

▲ 오리지널 캐릭터의 활약도 고루 조명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 전작을 몰라도 크게 상관 없도록 구성했다

다 제쳐두고 붕괴: 스타레일만 국한해서 보자면 일단 ‘스텔라론’, ‘에이언즈’ 등 주요 고유 명사 자체가 너무도 빨리 부연 설명 없이 나와버립니다. 물론 이후에 웰트나 히메코 등이 추가로 설명을 해주기는 하고, 처음부터 그렇게 아리송한 말을 하면서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카프카라는 캐릭터의 특색을 살려주는 요소이긴 합니다. CBT를 거치면서 이 부분은 꽤나 지적을 받았는지 고유명사 위에 조그맣게 그 명사가 어떤 뜻인지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단어들을 적어주기도 했고요.

사실 그런 고유 명사를 대강 해석하고 스토리를 훑어나가도 붕괴: 스타레일의 스토리 자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닙니다. 에이언즈 즉 초월적인 존재 중 파멸을 상징하는 누가 지금의 우주가 잘못됐다면서 파괴하고 개변하기 위해 스텔라론이라는 무언가를 뿌려놨는데, 그것이 우주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죠. 개척자들이 이를 막으면서 스텔라론 그리고 에이언즈와 세계의 비밀을 연구하기 위해서 또 다른 에이언즈가 만들어놨던 은하 열차를 타고 은하 곳곳을 누비는 게 붕괴: 스타레일의 대략적인 스토리입니다.



그 사이사이에 지나가는 행성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동료를 만들어가는 정통 JRPG식 구조라 그 맥락 자체만 파악하면 공감대 형성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유저 즉 주인공이 모르는 곳에서 자꾸 일이 벌어지는데 처음부터 고유 명사들을 계속 나열하다보니 무언가 소외되는 느낌이고, 또 다른 종류의 항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입하기 어려운 장벽이 펼쳐지는 게 문제일 뿐이죠.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고유명사를 나열하면서 자기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스토리 그 자체를 오글거리거나 뭔지 못 알아먹겠다고 꺼리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굳이 단어를 의식하지 않으면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자체는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역할군 분류부터 캐릭터 성장 요소까지 고유 명사들로 쭉 채워버려서 의식하게 되어버리는 게 좀 크죠. 물론 세계관 자체에 몰입감을 주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이 전략 자체를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부분은 아닙니다. 다만 플레이할 때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죠. 파멸, 지식, 수렵, 보존, 화합, 공허 이렇게 캐릭터 클래스를 적어버리면 부연설명을 듣고 직접 써보지 않는 한 이 역할군이 무얼 담당하는지 직관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얼기설기 엮인 고유명사와 세계관을 스토리 안에서 풀어내고자 한 시도가 없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걸 100% 지금 다 설명하기엔 붕괴: 스타레일은 이제야 정식 출시의 첫발을 내딛은 터라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원신처럼 주변에서 수집할 수 있는 각종 서류에 여러 설정을 녹여냈고, 여기에 시뮬레이션 우주를 통해서 ‘에이언즈’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나가는 식으로 보완을 하는 체계를 갖췄죠.

시뮬레이션 우주는 각종 보상이 걸려있고, 유물 중에 장신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플레이어들이 꼭 돌아야하다보니 참가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돌면서 에이언즈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되는데, 안 그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숙제 콘텐츠인데 고유 세계관을 풀어나가려고 하다보니 텍스트량도 꽤 길어서 눈에 잘 들어오질 않습니다.

▲ 보상 때문에 돌아야 하는 콘텐츠에 세계관을 이해할 단서들이 있긴 하지만, 숙제할 시간에 이걸 볼 리가

물론 이건 개인차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끝이 보이는 콘솔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가 되는 라이브 서비스 그것도 모바일도 지원하는 게임 속의 로그라이크 덱빌딩식 ‘숙제’ 콘텐츠에 어지간하면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지 않은 게 최근의 유저 루틴이죠. 그걸 기깔나는 텍스트로 뽑아냈다면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툭툭 상황을 던져두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유형의 텍스트로 이야기 떡밥을 많이 배치하는 방식은 누구나 소화시키기엔 어려운 방식입니다.

사실 스토리, 세계관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개인차가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이 문제를 중언부언 설명하고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 스토리나 세계관 그리고 그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게 되는 초반의 구성 때문이죠. 고유명사의 남발보다도, 영상을 보고 캐릭터를 만난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템포가 너무 늘어지거든요.

이건 ‘원신’에서도 보였던 문제긴 합니다. 다만 원신은 오픈월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임이라 이야기 템포가 다소 느려져도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면서 노는 재미가 있는데, 붕괴: 스타레일은 정해진 구역만 돌아다닐 수 있어서 그 느린 템포가 확 느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과 세계관에 대한 정리를 처음부터 이식하려고 하다보니 정보량만 소화가 안 될 정도로 비대하게 늘어나니 그리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하다못해 2배속이라도 좀 빨리 풀어서 전투라도 빠릿빠릿하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붕괴: 스타레일은 아마 호요버스가 내놓은 작품 중 가장 호불호도 갈리고, 평가도 갈리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턴제 RPG라는 장르부터 진입 장벽이 어쨌든 생길 수밖에 없는 붕괴 IP의 고질적인 약점 등 호불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요소를 안고 나왔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호요버스의 전작 ‘원신’이 여러 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보니, 전작과 콘텐츠 그리고 루틴을 상당 부분 비슷하게 갖고 간 ‘붕괴: 스타레일’은 이래저래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느 정도 스토리를 뚫고 레벨을 올린 뒤에는 고치나 터널 등 던전을 돌면서 행동력을 소모하고, 시뮬레이션 우주와 망각의 정원을 주기마다 플레이하면서 보상을 얻는 그런 플레이 루틴은 동일하거든요.

물론 이 말이 단순히 전작의 성공 공식을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해서 퀄리티가 낮아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원체 설명할 거리들이 많은 게임이다보니, 콘텐츠 도는 루틴이나마 설명을 줄이는 식으로 채택했다고 볼 여지도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그걸 그냥 이식한 게 아니라 장르 그리고 일부 트렌드에 맞게 개조해서 들여왔습니다. 전투의 루즈함을 줄이기 위해 호요버스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 전투도 지원하고, 심지어 고치 같은 단순 파밍은 자동 반복 전투까지 더했죠.

▲ 유물 파밍…옵션작….윽 머리가

이 부분 외에 BM도 CBT부터 너무 판박이라서 과연 정식 출시 때 어떨까 하는 우려가 나오긴 했습니다. 컨트롤이 불가능한 턴제에, 앞서 말했듯 아무래도 캐릭터 조합 자체가 갖춰져야만 뭔가 말이 되는 시스템을 선택한 터라 캐릭터 획득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전작 원신이야 어차피 오픈월드를 즐기면서 이것저것 한눈 팔고 다닐 게 많지만, 붕괴: 스타레일은 제한이 명확한 JRPG 구성이니까요.

이 부분은 기본 지급 캐릭터로도 필수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게 적들의 약점 배치를 조절한 뒤, 이래저래 콘텐츠를 추가하면서 보상을 얻을 구석을 더 만들어내는 식으로 보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정 레벨 달성 보상 같은 것도 늘리는 한편, 상시 뽑기에서도 1회 한정으로 원하는 5성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조건을 달아두기도 했고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집형 RPG에 비해 보상 자체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태까지 호요버스가 내놓은 게임 중에서 필드 돌아다니면서 획득하는 보상이나 콘텐츠 보상 자체는 종합해봤을 때 제일 획기적으로 많지 않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턴제 RPG에 대한 접근성을 낮춘 것 또한 스킬의 연계나 순서 그리고 다양한 버프와 디버프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턴제 RPG의 맛이 떨어지는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전략적인 플레이는 시뮬레이션 우주로 보완하는 등, 게임 구조적인 설계나 전략을 봤을 때 ‘붕괴: 스타레일’의 짜임새와 퀄리티는 전작을 단순히 복붙했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죠.

그렇지만 초반에 바로 재미를 어필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고유명사 투성이에 몇 번이고 초반 설정도 리부트하면서 기틀을 짜맞춰가고 있는 ‘붕괴’라는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나가는 과정이 다소 루즈한 것과, 원래부터 그리 초반 템포가 빠르지 않았던 호요버스 게임의 특성이 결합되었으니까요. 리세마라는 게임을 평가할 때 필수 요소까지는 아니니 그 부분은 빼더라도, 첫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확실히 속도도 느리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라 평가를 높게 주긴 어렵죠.

그 단계를 뛰어넘으면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과 함께 방대한 이야기의 하모니와 우주 여행의 로망, 턴 규칙을 조건부로나마 농락하며 즐기는 특이한 전략성 등 종합 패키지가 뒷받침되어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어느 정도 하다보면 전작처럼 유물 파밍의 미래가 그려지는 불안감도 엄습하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업데이트를 통해서 꾸준히 할 것을 제공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나갔던 호요버스인 만큼, 이제 첫 발을 내딛은 붕괴: 스타레일이 앞으로 어떤 모험의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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