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게임 디자이너 팁 15가지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타인에게 조언을 전하는 행위는 어느새부터인가 ‘꼰대짓’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되어,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행동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절대로 넘지 않을 것 같던 서른이 넘고 나니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꼰대’가 된 이들은 분명 후배들이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욱 잘 되기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이번 데브컴을 통해 발표를 맡은 독일의 레벨 디자이너, 트리스탄 한셀에게도 분명 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 강연 제목이 ‘게임 디자인 스쿨에서 (내가 배웠으면 하는) 15가지’라니, 요즘 기준에서는 제목부터 ‘꼰대’의 기운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디 가서 이런 값진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다 형이 여러분들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

꼰대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하고, 게임업계를 포함한 산업 전반을 비추어 볼 때,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무에서 100% 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트리스탄 레벨 디자이너는 현업을 목표로 하는 예비 게임 디자이너를 위해 자신이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15가지로 정리해 청중에게 공유했다.

# 해당 발표는 강연자의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 트리스탄 한셀(Tristan Hantschel) The Good Evil 레벨 디자이너

1. 무엇이 좋은 게임 디자이너를 만들까?

= 아주 방대한 질문이고, 여기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하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잘 경청하고, 다른 사람들(플레이어나, 팀원)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 상 게임 디자이너의 자질은 팀원 사이에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좋은 경험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의 퀄리티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2. MDA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게임을 디자인하기

= MDA(Mechanic, Dynamics, Aesthetics) 구조로 게임을 분석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면 세 가지 요소 사이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메카닉은 게임의 기능적인 측면을 일컫고, 다이나믹에서는 이러한 기능이 플레이어의 입력을 만났을때 도출하는 경험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만족감과 몰입도를 더하는 심미적인 측면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게임을 디자인 할 때에도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는 식으로 윤곽을 잡아볼 수도 있다. 게이머들이 어떤 미적 요소와 감정을 원할지, 이를 위한 다이나믹은 어떻게 구성할지 등을 체계적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3. 비전을 끝까지 유지하기

= 게임의 핵심이 되는 비전은 종종 오랜 개발 과정 사이에서, 또 팀원과의 잦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점점 희석되고 만다. 좋은 비전이란 팀원 모두가 반복적으로 공감을 형성할 수 있고,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비전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단한 시작으로는, 공간 주위에 비전을 상기시킬 수 있는 것들을 눈에 띄게 배치해놓는 것이다. ‘갓 오브 워’의 경우 개발 과정에서 비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무실 식당 한 벽에 큼지막하게 붙여놨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다.

4. Affordances, 그리고 Signifiers

= 아주 근본적인 디자인 콘셉트이면서, 심리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단어다. 어포던스(Affordance)는 사물과 사물을 이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며, 시그니파이어(Sifnifier)는 이런 어포던스를 알려주는 일종의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언차티드4’에서 사물은 절벽이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인공인 네이선 드래이크라고 분석해볼 수 있다. 게이머는 네이선드레이크가 가진 신체적 특성을 통해 별다른 표시 없이도 등반을 할 수 있으리라 유추가 가능하다. 시그니파이어는 문에 붙이는 ‘미시오’, ‘당기시오’같은 역할이다. 몇몇 등반 기능을 갖춘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인지하기 편하도록 등반 가능 부위를 다른 색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포던스에 집중한 디자인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시그니파이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나쁜 디자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게임플레이의 일관성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에서 적절한 활용히 필요할 것이다.

5. 네트워킹 101

= 게임 산업은 생각보다 좁다. 이 곳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기로 결심했다면 네트워크를 다지는 것은 중요하다. 처음이 언제나 힘들다. 실행 가능한 조언은 오프라인 미팅에 자주 참석하는 것과, 타인에게 친절하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한 가지 사례로, 학생이라면 ‘데브컴’ 등 행사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

6. 임포스터 신드롬이란?

= 일종의 심리적인 현상으로, 자신의 성과를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거나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심리적 기재를 말한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것 같은 일로 너무 과도한 칭찬과, 명성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따라서 자신을 스스로 사기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업계 전반적으로 중요한 문제며,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이 심각해진다면 심리 상담 등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조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7. 인지적 편견(cognitive bias)

= 간단히 말하자면, 다양하게 발생하는 ‘편견’은 뇌가 저지르는 일종의 ‘새치기’다.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결론을 도출해버리는 것이다. 게임 디자인 과정에서 이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에게는 저마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 때문이다. 다수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플레이테스트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인지적 편견을 연구하고, 게임과 관련된 사례를 찾아보다 보면 분명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8. 게슈탈트 심리학

= ‘하나로 뭉뚱그려 인지한다’라는 뜻을 가진 독일 단어 ‘게슈탈트’는 일종의 시각적 자극을 특정한 패턴으로 인지하는 것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다. 하얀 종이에 까만 점이 있으면, 전체적으로 검은 점 뒤로 흰색 배경이 있다고 인지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자리에서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게임 또한 시각적인 매체인 만큼 특정 자극이 뇌에 작용하는 원리를 고려하면 보다 효과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다. 게임 디자인 뿐 아니라 UI, 아이템 배치, 전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해볼만 한 주제다.

9. 피드백을 주고받기

=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줄 때, 절대로 ‘샌드위치’ 형식으로 하지 말자. 독일에서만 쓰이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사탕발림으로 칭찬하는 소리를, 그 다음에 비평할 내용을, 다시 다음에 사탕발림을 하는 형식의 피드백을 일컫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상대에게 명확하게 비평을 전달하기 힘드니, 그보다는 빠르게 다음 과정이 수정될 수 있도록 액션 위주의 피드백을 전할 수 있도록 하자.

또 좋다/싫다/나쁘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말도록 노력하자. 이런 피드백으로는 어떤 것도 개선할수 없다. 설명 형태의 피드백을 통해 의견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10. 문서화에 대하여

= 문서화를 위한 도구는 팀원 전체의 접근이 용이하고, 수정가능한 것이 최고다. 최대한 간결한 문서가 가장 좋고,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도록 노력하자. 내 생각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모지를 쓰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자.

11. 플레이어 유형 나누기

= 게이머의 유형을 네가지로 나누는 바틀 타입(Bartle Types)으로는 세부적인 게이머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차라리 게이머 동기 모델(Gamer Motivation Model)을 사용해 타겟하고자 하는 플레이어 유형을 구분해 보자.

12. 스케이트보드 접근법

= 큰 도약을 피하고, 점진적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하도록 노력하자.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드는 데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자. 첫 번째 방법은 바퀴를 만드는것부터 시작해 하나씩 살을 붙여 자동차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문제는 도중에 문제가 생겨 결국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다면 남은 결과물은 아무 짝에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스케이트보드 접근법이란, 처음부터 바퀴 하나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만들고, 이후에는 자전거를 만들어보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자동차를 만들어가는 접근법이다. 도중에 잘못되거나, 만들고 싶은 자동차의 모습이 바뀌어도 적응이 용이하며, 어쨌든 굴러가는 스케이트보드 하나는 남는다. 언제나 여러분의 프로젝트에서 ‘스케이트보드’가 되는 프로토타입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13. 이상한 끌림 요소 (Strange Attractor)

= 디자인적 측면에서, 일상에서 익숙한 것들에 약간의 이상함을 첨가하는 것은 청중의 공감을 사는 동시에 이목을 끄는 데 효과적이다. 학교를 상상해 보자,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과 정취를 담고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과목이 수학이 아니라 마법이라면? 여러분은 방금 ‘해리포터’를 생각해 냈다. FPS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장르고, 모두에게 익숙한 컨트롤을 제공한다. 그런데 총알 대신 어디로 통하는 문이 발사된다면? 짜잔, ‘포탈’이 됐다.

주의할 것은 이런 이상한 요소를 너무 많이 넣으면 쉽게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또, ‘이상한’ 것의 정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쇼핑몰에 나타난 좀비 떼? 이상함을 느끼기에는 너무 한물 간 설정이다.

14.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게임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친구나 가족들로부터 ‘넌 참 창의력이 좋은 녀석이야’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자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말이다. 창의성은 강력한 도구지만, 이해가 필요하다. 여러분의 뇌는 아웃풋만큼이나 인풋 또한 필요하다.

다른 게임에서 영감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게임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에서 영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 보자. 한 가지 사례로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디자이너는 네메시스 시스템을 만들 때 미식 축구 월드 챔피언십 등 경쟁 스포츠 대진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고, 바이오쇼크의 경우 소설 작품인 ‘아틀라스(Atlas Strugged)’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분의 창의성을 큐레이팅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다. 평소 관심 없던 장르의 책을 읽어보거나,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보자.

15. 배움을 멈추지 말아요

= 게임 산업은 이미 매우 복잡해서 시작 단계부터가 고민 투성이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장르가 등장하기에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실무에 뛰어들면 매일 새로운 프로젝트가 여러분에게 배울 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학교 졸업 후에는 아무도 무엇을 배우라고 알려주지 않기에 더욱.

여러 도움을 찾는 것도 좋다. 로컬 개발자 커뮤니티를 찾아가거나, 디스코드 서버를 통해 배움을 구하는 것도 좋다. 또 요즘은 다양한 커리큘럼을 합리적인 가격에 학습할 수 있는 인터넷 강의도 잘 구축되어 있기에 원한다면 기회는 많다.

물론, 풀타임 근무는 그 자체로 매우 고된 일이다.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워라벨이 망가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차근차근 배움의 끈을 놓치 않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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