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게임 대장주로 견조한 성과의 엔씨소프트를 만든 건 다름 아닌 리니지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강세를 보인 내수 시장만큼 해외 시장에서 성과는 부각되지 못한 리니지. 또 글로벌향 게임들은 이미 서비스 연차가 높아 그 성과 기대치가 한정적이었다. 이제는 분명 리니지 이후를 생각해야 했고 엔씨는 꾸준히 그다음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도 더 리니지라는 이름을 떼고 개발 중인 쓰론 앤 리버티(TL)는 엔씨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서 본격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할 작품이다. 엔씨가 공언한 플래그십 타이틀에 그간 엔씨가 주력해오던 모바일을 거른, PC MMORPG다. 회사의 주력 상품이라는 플래그십의 의미에 집중한다면 그간 집중된 리니지를 넘어, 엔씨라는 회사를 대표할 새로운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
출시 전, 게임의 핵심을 헤집어 볼 수 있는 TL의 베타 테스트는 그래서 엔씨 팬이든, 그렇지 않든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엔씨의 플래그십 타이틀로서 글로벌 시장에 통할 타이틀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여러 관심 속에 진행된 베타 테스트.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TL이 보여준 모습은 리니지라는 이름이 없어도, 모바일이 아니더라도 엔씨의 MMORPG는 글로벌 팬들의 취향과 기준을 공략하기엔 섣부른 게 아니냐는 의문을 더 크게 남겼다.
게임의 돌입 컷신부터 초반 튜토리얼 구간은 분명 엔씨의 변화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어졌다. 그저 혈맹원, 제자 A가 아니라 주체를 명확히 해 내러티브를 강조한 연출. 테스트인 만큼 최적화는 차치하고 으레 대형 PC 게임에서 기대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긴 그래픽과 컷신. 자유로운 시점 변화가 주는 접근 방향까지. TL에는 분명 리니지라는 이름에서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잠시나마 느껴지며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튜토리얼 구간이 넘어가며 게임의 변주는 또다시 뒤바뀌고 새로움보다는 모바일 MMORPG의 익숙함을 답습한다. 복합적으로 준비한 콘텐츠 간의 톱니가 맞지 않아 바퀴들이 서로 삐걱대고 부러져 전투라는 하나의 콘텐츠 위에 엎어지기 때문이다.
베타 테스트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TL은 게임의 핵심을 다수 공개했다. 그리고 추후 더 추가될 콘텐츠가 많지 않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수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 방향도 플레이어의 진행 방식에 따라 능동적으로 펼쳐나가도록 구성은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월드 곳곳의 이야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인공은 분명 TL이라는 게임의 메인 줄기를 끌어나가는 인물로 그려졌다. 코덱스는 핵심적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커다란 대륙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이면을 탐사할 수 있는 콘텐츠다. 필드 곳곳에서 특정 시간마다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거의 매시간 다른 종류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이벤트는 업데이트 전까지는 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메인 스토리나 코덱스 등을 멈추고 콘텐츠 소비 속도를 조절하는 동시에 획일적인 플레이 진행 단계도 플레이어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릴 수 있게 했다.
이렇듯 각각의 게임 디자인, 그리고 이것들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콘텐츠 소비는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선택되어 저마다 다른 플레이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그런 이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익숙한 UI로 메인 퀘스트를 화면 우측에 띄우고, 이를 클릭해 다음 이벤트까지 자동 이동과 대화로 이어지는 메인 퀘스트는 그 진행의 익숙함만큼 보상 역시 예상한 대로다. 단순 이동, 몇몇 이벤트 전투, 약간의 사냥으로 수집한 아이템 납품 등 메인 퀘스트는 적은 전투로 효과적인 경험치를 제공한다.
MMORPG라는 게임 구조상, 또 TL의 여러 이벤트 역시 경쟁의 구도가 명확하게 그려지는 만큼 게임의 우선 목표는 레벨업이다. 그나마 방대한 전투를 그린 대규모 보스전도 일정 레벨을 달성해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높은 보상을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메인 퀘스트는 보상의 핵심이며 굳이 부수적인 보상에 집중한 다른 콘텐츠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사냥 후 드롭 아이템을 납품하는 이벤트도 높은 레벨에서의 빠른 사냥, PvP 위험까지 있으니 메인 퀘스트를 밀어내고 꼭 먼저 즐겨야 할 정도는 아니다.
재밌게도 이런 보상 속도를 늦추려 의도적으로 메인 퀘스트만으로는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게 만든 단절 구간이 존재한다. 일정 레벨에 도달하지 않으면 퀘스트 진행이 불가능한데 이 구간이 되어서야 다른 콘텐츠에 눈을 돌리는 식이다. 분명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플레이어 주도적인 진행 방향을 그렸지만, 게임 안에서 이미 이게 제대로 되지 않을 상황을 상정해둔 셈이다. 그리고 다시 메인 퀘스트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레벨업은 소위 ‘닥사’가 필요한 구간이 된다.
반복 퀘스트인 의뢰를 받든, 겸사겸사 코덱스 목표도 달성할 겸 사냥터를 정하든 핵심은 사냥이다. 그러니 많은 콘텐츠가 ‘약재로 좋으니 (특정 종류의) 거미를 잔뜩 사냥하고 드롭되는 거미 다리를 가져다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액션을 중심으로 하는 MMORPG에서 전투와 사냥이 핵심이 되는 데에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하지만 메인 퀘스트로 갈음할 수 있는 게임 보상의 전형성으로 콘텐츠 진행 방향의 변주가 효과적이지 못했다. 필요한 건 똑같이 반복해도 재미있는, 전투 자체의 재미인데 TL은 여기서 가장 큰 약점을 드러낸다.
전투는 다양한 스킬의 유연한 연계보다는 발을 땅에 붙이고 이루어지는 기본 공격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스킬이라고 그다지 다를 건 없다. 굳이 제자리에서 공격하지 않는 돌진, 이동기 등도 능동적으로 상황에 따라 이동하거나 캔슬하기보다는 먼저 입력된 내용을 그대로 수행하는데 그친다. 모바일에서 리모트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퍼플on에서는 UI까지 바뀌는 만큼 이를 고려했다면 단순한 플레이가 요구되긴 해야 했는데 이는 정작 PC MMORPG에서 기대할 수준을 낮춰 버렸다.
결국, 사냥은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른 보상 분배보다는 동일 패턴의 반복이다. 큰 화면, 상향된 그래픽 안에서도 전투는 기존의 엔씨 모바일의 연장선상이고 이는 되려 PC 게임임에도 그 지루함을 대신할 자동 사냥의 필요성을 불러왔다.
그런데 TL의 자동 사냥은 모바일 중심 자동 사냥과는 그 정체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듯 다시 한 번 엇나간다.
세부적인 설정 요소는 존재하지만, 주변을 색적하고 사냥감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퀘스트/의뢰 몬스터를 따로 지정해주지 않으면 쓸데없는 사냥을 반복하는 등 영리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여기에 일종의 패링에 가까운 반격 개념 스킬을 넣었는데 아슬아슬한 레벨대의 사냥터, 혹은 특정 몬스터의 경우 이 반격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소울류 게임처럼 판정이 아슬아슬한 것은 아니고 가이드 UI까지 표시해줘 그것만 보고 적당히 회피 버튼을 누르면 되는 정도다. 전투 시스템에도 후판정으로 모션을 보고 공격을 피할 여지를 만들었는데 공격 자체는 발을 붙이고 있으니 공격과 회피가 이질적으로 분리된 플레이가 반복된다.
분명 자동 전투인데 사냥감은 사냥감대로 지정하고, 가끔 공격 표시가 뜨면 회피 버튼을 누르는, 딱 그정도는 해줘야 하는 오묘한 반자동 전투가 완성된 셈이다. 기본적인 전투 방식과 콘텐츠의 반복 요소는 자동 전투를 요하지만, 전투 안에서는 반대로 조작을 필요로 하는 구간이 더해지며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진 요소를 후에 더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남는 건 기묘한 이질감과 소량의 경험치 뿐이다.
테스트 기간인 만큼 아직 많은 부분이 공개된 건 아니지만, 튜토리얼 구간에서 보여준 변화와 함께 플레이어 입장에서 TL을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남은 구간은 오히려 BM이다.
엔씨가 꾸준히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밝힌 부분인 만큼 변화는 많았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핵심 유료 상품을 뽑기 대신 배틀패스와 확정 구매로 대신했다. 물론 이 부분 역시 눈에 띌 변화긴 하지만 상품 구성보다 더 큰 세부적인 콘텐츠, 시스템 차이가 다른 BM의 차이를 만들 것으로 보였다.
TL에는 숱한 모바일 MMORPG에 존재하는 다양한 과금 필요 콘텐츠들이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 장비부터 변신, 인형 개념의 아미토이 등에 컬렉션 개념이 존재하고 장비 강화, 공격 강화를 위한 소모 아이템, 그리고 던전에서 특수 장비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소모성 포인트인 어비스도 존재한다. 하지만 형태는 비슷할지언정 테스트에서 보여준 획득, 활용 방식은 온전히 과금 중심에서 플레이 중심으로 형태를 전환했다.
변신, 아미토이의 수집 효과는 직접적인 능력치 제공은 없고 스태미너나 이동속도, 소폭의 특정 적의 피해량 감소 정도에 그친다. 아이템 획득이나 회복량 증가 등 꽤 눈에 띌 효과가 몇 있긴 했지만, 테스트 버전에서는 수집을 위한 획득 자체가 플레이를 통해 유도된다.
메인 퀘스트, 혹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코덱스 완성 보상으로 변신과 아미토이를 획득하고 배틀 패스, 꾸밈 주화라는 별도 재화를 통한 구매 역시 랜덤 획득이 아니라 특정 변신, 아미토이를 직접 구매하는 식이다. 꾸밈 주화도 월드 내 숨겨진 일지 등 수집품을 얻어 소량씩 얻을 수 있다.
장비, 소모성 강화 아이템 역시 모두 재료가 있어야 구매가 가능하다. 구매를 통한 무작위성이 아니라 플레이를 통한 ‘수급에서의 무작위성’이 강조된 부분이며 이는 획득한 장비나 아이템의 분배를 위한 거래소의 중요성을 높였다. 거래 아이템 등록은 유료 재화가 아니라 일반 재화인 솔란트로 이루어지니 경제 순환 자체가 거래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장비 컬렉션도 능력치는 아예 없애고 제작을 위한 재료로 보상이 결정됐다. 장비 파괴도 없고 아인사하드의 축복 개념을 대신하는 어비스 포인트는 필드 전투로 획득한다.
일반, 고급, 희귀, 영웅 등만 공개되며 상위 등급의 장비나 변신 등의 공개와 함께 BM의 변화 역시 분명 바뀔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온전한 과금 대결을 넘어 게임 플레이를 중심으로 게임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실제 변화가 가해지더라도 시스템 근간을 건드리지 않으면 지금의 구조를 변경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 이전 모바일 타이틀 수준으로의 변화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TL의 경제 구조는 리니지로 대표할 수 있는 기존 엔씨 타이틀의 형태를 흔들고자 한 부분이 더러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목표 중 하나인 글로벌 시장의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할 단계까지는 도달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 중심으로 유도된 경제 구조와 함께 끌어올렸어야 할 게임 콘텐츠의 다양성과 재미는 미흡함이 더 두드러졌다.
리니지가 특유의 경제 시스템과 모바일 지향 과금 구조를 통해 덩치를 키운 만큼, 엔씨의 플래그십 타이틀이라면 회사는 물론 투자자가 기대하는 성과치가 있다. TL이 보여준 플레이어 지향의 BM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그 시장이 국내, 아시아 일부 국가로 한정되어 버린다면 목표 달성을 위해 경제 구조의 변화 역시 없앴던 ‘더 리니지’라는 이름으로 되돌아가 버릴지 모른다.
베타 테스트를 통해 얻은 피드백이 정식 출시 이후 글로벌 시장 공략 단념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나은 게임으로 목표했던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될지. TL의 미래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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