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첫 모습, ‘프로토타입’을 만나다


프로토타입은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의 시작 단계를 의미한다. 개발자는 자신이 생각한 게임의 재미를 시험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검증한다. 개발자가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재미의 가능성을 보면, 가다듬어 완성작을 향해 나아간다.

스마일게이트 인디게임 페스티벌 ‘버닝비버’에서 게임 개발의 시작 단계인 프로토타입을 모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함께 진행됐다. 버닝비버는 12월 18일(일)까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545-14 팝업빌딩에서 열린다. 프로토타입 전시회 ‘ver 0.0.1’은 행사장 1층에서 만날 수 있다.

‘ver 0.0.1’은 박선용 개발자, 전재우 개발자, 김땡땡(익명) 개발자가 기획했다. 이들은 전시가 독일 베를린 ‘DEVOLUTION’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고 소개했다. 전시된 게임은 당신의 안녕을 위하여(겜성게임즈), 더 램지(이키나게임즈), 던그리드(팀 호레이), 던전 로그 : 전설의 모험가(자이언트 다이스), 룸즈(핸드메이드 게임), 리로더: 테스트_서브젝트(네버더리스 스튜디오), 리플 이펙트(아웃사이더키즈), 메탈릭 차일드(Studio HG), 산나비(원더포션), 숲속의 작은 마녀(써니사이드업), 언소울드(메구스타 게임즈), 크로노소드(21c Ducks co.,Ltd.), 엑시트 더 던전(Singlecore Games & Dodge Roll), 라핀(스튜디오 두달), RP7(터틀 크림), Wetory(페퍼스톤즈)이다.

▲ 박선용 개발자

기획단은 기획 의도 소개를 통해 “더미 이미지들로 가득한 모습이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조작감도 별로 좋지 않다. 사운드 같은 건 기대하기도 어렵다”라며 “그렇지만, 개발자들은 이런 조악한 프로토타입에서 이 게임의 미래를 떠올리고, 앞으로 길고 긴 개발 여정을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 그래서 0.0.1 버전이 그래서 중요하다. ‘게임의 완성’이라는 미래를 향한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니까”라고 프로토타입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박선용 개발자는 이번 전시는 두 가지에서 큰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그가 베를린에서 열린 A MAZE 전시회에서 본 ‘DEVOLUTION’, 두 번째는 트위터에서의 논쟁이다. ‘DEVOLUTION’은 development(개발), evolution(진화)의 합성어다. 박선용 개발자는 “DEVOLUTION에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게임들의 첫 버전부터 출시된 버전까지 6-7의 개발 버전을 각각의 컴퓨터로 전시해서 그 게임들을 만든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라며 “히든 포크스(Hidden Folks), 킹덤(Kingdom), 에이프 아웃(Ape Out)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각 게임을 만든 과정과 비화들을 들을 수 있어서 재밌었다”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된 트윗 “Graphics are the first thing finished in a video game(그래픽이 비디오 게임 개발에서 가장 먼저 완성되는 것이다)”이다. 해당 문장이 왜 잘못됐는지 주장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인디게임, AAA 급 프로토타입 모습들이 많이 공개됐다. 박선용 개발자는 해당 트윗 논쟁을 보며 프로토타입을 모아 전시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 액션 검증 단계의 ‘메탈릭 차일드’ 프로토타입

▲ 터틀크림이 개발 중인 ‘RP7′(우)의 프로토타입 ‘RP6′(좌)도 만날 수 있다

박선용 개발자는 “게임을 만든다는 건 개발자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구현해내는 과정이다”라며 “이게 재밌을지 아닌지도 만들어보고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 거고, 그래픽 파트 역시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그림이 있는 채로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첫 아트 리소스를 만든다. 이런 ‘상상과 구현’의 간격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ver 0.0.1에는 16개 게임이 전시되어 있다. 선정 기준은 △관객들이 첫 버전과 현재 버전 모두를 경험할 수 있어 전시가 의도한 것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게임 △버닝 비버에서 전시작으로 선정될 것 같아서 관객들이 두 버전을 모두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게임 △이미 아주 유명해서 현재 버전의 모습을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이다.

박선용 개발자는 일반 유저가 프로토타입을 볼 때에 “개발자가 의도한 재미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처음 확인해보고, 이걸 진짜로 만들지 말지를 결정하고, 앞으로의 긴 개발을 시작할 채비를 하는 게 프로토타입이다”라며 “이를 염두에 두고 전시를 경험한다면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 ‘라핀’ 대표 이미지 스케치 모습(좌)과 완성 모습(우)

▲ 얼리 억세스 버전(우)에선 프로토타입보다 배경, 무대, 캐릭터가 정교해졌다


전시된 게임은 프로토타입 플레이와 함께 개발자 육성 설명이 있다. 이에 대해 박선용 개발자는 “유저가 전시를 보면 알겠지만, 전시된 프로토타입들이 아주 조악하다. 이 버전을 아무런 설명 없이 플레이하는 것도 같은 개발자 입장에선 즐거운 일일 수 있는데, 일반 관객들에겐 딱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했다”라며 “설명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각 개발자를 만나서 오디오 인터뷰를 했다. 관객들이 각 게임의 초기 버전을 플레이하면서, 이 버전을 만들 때 개발자가 했던 생각들을 개발자의 목소리로 듣게 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프로토타입 자체 보다 이 오디오 인터뷰가 제일 중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라며 “하나 같이 양질의 인터뷰다. 이번 전시에만 쓰고 묵혀두기엔 아까울 만큼”이라고 강조했다.

박선용 개발자는 개발자들끼리 프로토타입을 공유하는 문화를 권했다. 그는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큼 주변 사람이나 다른 개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도 내가 생각한 것처럼 받아들이는지를 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라며 “내가 현시점에서 하는 고민을 이미 해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던 동료 개발자의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관련해 온라인 게임의 초기 모습 보관도 역사 차원에서 점차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예로 20년 전 넥슨 ‘바람의나라’, 엔씨소프트 ‘리니지’ 등의 플레이를 별도로 담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선용 개발자는 “앞서 말했듯 진짜 ‘프로토타입’은 스튜디오 내부적인 자산으로 아카이빙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본인들의 역사이지 않나”라며 “온전히 프로토타입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개발이 중단된 게임들의 플레이어블 빌드나 리소스들을 전시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영화 ng 장면을 제작 과정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것도 게임이란 미디어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작업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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