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크리틱 88점, 인도네시아에서 빛난 인디 개발사

동남아 게임 시장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은 수년 전부터 익히 들려오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국의 게임을 동남아에 수출하려는 입장에서 해당 시장을 주의깊에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났을 뿐, 아직도 동남아시아는 ‘게임을 개발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는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팬층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곳이 있는데, 바로 인도네시아의 게임 개발자들이 그 예입니다. ‘커피 톡’과 같은 서정적인 분위기가 매력인 인디 게임부터 ‘드레드아웃’같은 호러 게임까지, 여러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접한 게임들 중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게임 개발사 ‘모지켄 스튜디오’는 신작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고향인 인도네시아를 적극적으로 게임 속에서 소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990년대 마을의 풍경과 그들이 늘 먹던 길거리 음식들, 여러 문화적인 요소들을 게임 속에 잔잔히 녹여내면서도, 전 세계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스토리를 통해 높은 평점을 얻어내는 데도 성공했죠.

게이머들에게는 약간 생소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의 매력을 게임 속에서 한껏 발산해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모지켄 스튜디오에서 신작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의 디렉팅과 아트디렉터를 겸임한 디마스 노반(Dimas Novan) 디렉터와 서면으로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 디마스 노반(Dimas Novan) A Space for the Unbound 디렉터

■ 애니메이션 ‘성지 순례’에서 착안한,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 대한 꿈


▲ 자바 섬 동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 ‘수라바야’

Q. 먼저 한국의 게이머들을 위해, ‘모지켄 스튜디오’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모지켄 스튜디오(Mojiken Studio)는 2013년에 설립된, 인도네시아 수라바야(Surabaya)에 위치한 게임 스튜디오입니다. 그간 Ultra Space Battle Brawl, Divination, When the Past was Around와 같은 독특한 게임들을 만들어 왔고, 가장 최근에는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A Space for the Unbound)’를 개발했습니다.

Q. 외국인 게이머의 입장에서, 게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의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착안하게 되었나요?

= 학창 시절에, 저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실존하는 장소를 찾아가 보고, 또 비교하는 활동인 ‘성지 순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활동이 실제 삶과 애니메이션을 서로 보완하는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죠.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내는 신선한 분위기가 실제 장소를 빛나게 하고, 또 그것이 정반대로도 이뤄진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 날 이후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자라온 장소, 그리고 시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투영하고 싶었고, 이를 통해 그 장소와 시간이 새로운 가치를 갖도록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묶이지 않은 자들의 우주’는 우리가 자라온 장소의 독특함을 세상에 알리기를 바라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서브컬쳐 문화의 ‘성지 순례’에서 착안한 게임 속 도시 ‘로카 시’

Q. 또 고양이가 정말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번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데요. 만나는 고양이마다 직접 이름을 지어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시스템은 어떻게 착안하게 되었나요?

= 저희는 게임 속 주인공인 아트마와 라야가 살고 있는 마을을 아주 활기차게 만들고 싶었고, 저희가 가진 추억 또한 마을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어린 시절 이웃에서 고양이, 닭, 새, 때때로는 염소들을 보며 자라왔는데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들 또한 우리의 마을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또 스튜디오 구성원 대부분이 고양이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고양이는 저희에게 상항 내집같은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고양이에게 일일이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기능 또한 플레이어들이 여정을 이어가게 될 로카시에 직접 참여하고, 또 집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 추가했습니다.

Q. 게임에도 다양한 인도네시아 음식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혹시 하나만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음식은 무엇인가요?

= 박소(Bakso)! 고기 경단(쇠고기, 닭고기, 생선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을 쇠고기 육수와 함께 먹는 음식이에요. 가끔은 국수가 함께 제공되기도 하죠. 상당히 보편적인 맛이기 때문에, 특별히 적응할 필요는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소토(Sotto)인데, 마찬가지로 육수와 함께 닭고기 또는 쇠고기를 먹는 요리죠. 인도네시아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소토 요리법이 존재할만큼 아주 보편적인 음식입니다. 박소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맛이고, 인도네시아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게 소개해줄만한 음식들입니다.

▲ 인도네시아의 국민 음식, ‘박소’

▲ 게임 안에서도 학교 앞 맛집으로 등장합니다

■ “캐릭터의 여정이 플레이어에게도 의미를 전달하기를”


▲ 서정적인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콘셉트의 작품을 개발해 온 ‘모지켄 스튜디오’

Q. 게임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학교 폭력’과 같은 주제는 자칫 클리셰가 되거나, 흔한 결말을 맞이하기 쉬웠을 텐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운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어떤 영감에서 이 작품을 개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스토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토대는 “이룰 수 있었던 것(What Could’ve Been)”이라는 한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특정 주인공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상관 없이 행복을 발견했다면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두 삶이 행복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때로 어두운 시간을 겪어야만 하고, 우리의 추악한 자아와 과거를 직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겪은 뒤 비로소 행복의 가치가 훨씬 더 실질적이고, 의미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이 게임에서 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도구는 ‘버킷리스트’와 ‘동화’입니다. 두 요소는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은 정서적 상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게임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버킷리스트와 동화의 역할은 완전한 원을 그리며 등장인물들의 여정을 말해주는 존재가 됩니다. 물론, 이를 모두 하나로 묶어내는 ‘심층 다이브’같은 요소도 주목할만한 부분이고요.

Q. 비교적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동남아 국가에서 큰 유행을 하면서, 일부 유명인사들이 과거 저지른 학교폭력이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폭력’은 학교뿐 아니라 다른 단체, 조직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저는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정서적, 감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특정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에 대한 미성숙함, 오해, 혼란으로 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특정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적대적인 환경을 만들거나, 또는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이 매일 안전해지는 것이고, 우리가 매일 더 나아지기 위해서 성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미숙함과 오해, 혼란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예방할 수 있을테니까요.

▲ 동남아 국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Q.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 또는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 ‘묶이지 않는 자들을 위한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플레이어가 특정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과 어두운 시간들을 헤쳐나가고, 그 사람을 위한 최고의 지원자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나쁜 일이 발생하면 때때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불확실한 경우가 생기며, 이러한 불확실성은 불안, 감정 폭발,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와 스튜디오는 이 게임을 통해 특정 캐릭터들이 자신이 가진 약점, 두려움, 실패, 그리고 희망을 대면하는 과정을 아주 신중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게임 속 캐릭터들의 여정이 플레이어에게도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경험으로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이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일이며, 이것을 깊이 느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한번 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OST 또한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Q. 군더더기 없는 한국어 자막 덕분에 한국 인디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번 작품이 잘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다게임즈와 협업을 통해 한국어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로컬라이징과 관련한 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의 한국어 로컬라이징에는 박재준님과 임바다님께서 참여해 주었는데, 이 분들과 함께 하는 협업은 지금까지 매우 훌륭했습니다. 한국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소화하기 쉽고, 나아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110% 이상을 투자해 주신 것 같아요. 스튜디오 측면에서도 바다게임즈와의 소통도 나무랄 데 없었고, 함께 협업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Q. 현재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는 메타크리틱 88점을 유지하는 등, 가장 비평적으로 성공한 2023년 인디 게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 솔직히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게임을 만들 때 정말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편이고, 때때로는 게임의 성과나 플레이어의 평가를 출시도 전에 먼저 생각하는 게 잘못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팀원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환경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 속에 여전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희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인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Q. 전 세계의 게이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번 작품만의 중요한 요소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또한 디렉터로서, 이용자 기반을 글로벌로 확장하기 위해 의도했던 부분들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게임의 프롤로그 부분에서, 가능한 게임을 보편적으로 만드려고 노력한 몇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픽셀 아트 스타일인데, 그야말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요소죠. 유니크한 설정과 결합해 게임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우정’과 관련된 동화 요소를 최대한 전반에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역시나 보편적으로 알려진 가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심층 다이브’라는 게임 내 시스템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마인드 다이빙’에 대한 저마다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으며, 특정 팬층에게는 매우 익숙해진 개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를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성장물 이야기로 묶어내는 것이 저희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 출시 이후, 다음 계획은 어떤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앞으로는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싶으신가요?

=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지만, 조만간 또 즐거운 게임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한국의 인디 게임 팬 여러분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한국의 플레이어 여러분께서 저희의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고, 또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 있다면, 게임을 통해 의미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실 수 있다면, 개발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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