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 다 봤는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닌텐도 스위치를 켰다. 제목과 이어지는 글 서두의 합리적인 전개를 기대하면 안 된다. ‘휴지가 없다!’는 그런 게임이다.


터질듯한 배를 쥐어 잡고 화장실로 달려간 남성. 시원하게 급한 일은 처리했지만, 아차차. 급한 나머지 휴지가 제대로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말이냐 속옷이냐 무엇을 희생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휴지가 없다’는 닌텐도 스위치 게임. 닌텐도 스위치에서 80%의 문제는 보통 조이콘이 해결해준다.


우리는 왜인지 모르지만, 화장실 천장 위 높은 곳에서 휴지를 조작, 그저 잘 굴려 화장지를 아저씨에게 전달만 해주면 된다. 물론 그냥 굴리기만 하면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없으니 적당히 휴지를 반절되는 톱날도 움직이고 가시밭이 바닥에서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저 아저씨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휴지 하나 주는데 이 난리를 피우나 싶긴 하지만. 뭐 어쨌든 게임 자체는 간단하다. 아니, 너무 간단해서 그냥 게임만 보면 시간을 할애해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캐주얼한 인디 게임이다.

가격도 600엔, 카드로 긁으니 대충 5,800원 정도가 나왔는데 아무리 싼 게임(화장실이 주제라 쌌다는 게 아니라 가격이 싸다는 거다)이라도 이대로는 이걸 따로 소개하기엔 기사를 확인하는 위에서도 썩 매력적으로 느낄 게임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 맛을 내는 요소가 있다. 바로 조이콘이다. 휴지는 그저 버튼을 눌러 굴리는 게 아니다. 진짜 두루마리 휴지 안에 조이콘 한쪽을 넣어두고 판자 위에서 진짜로 휴지를 굴려야 한다. 이게 이 게임이 맛을 내는 진짜 요소다. 앞서 말했지 않았나. 닌텐도 스위치는 조이콘이 80%라고.

적당히 쿠팡에서 시키고 아직 버리지 않은 박스 하나 가져와 한 편을 뜯고 죽 늘려준다. 휴지는 새것일수록 지름이 커 굴러가는 데 시간이 걸려 조작이 편하다. 조이콘은 두루마리 심 안에 넣고 조이콘이 심 안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여기에 휴지 두 장을 뜯어 적당히 고정한다. 이제 종이판 위에 휴지를 올려두고 게임을 보면서 판을 적당히 기울이면 된다.

이 조이콘을 통한 조작이 심플하다 못해 심심할 정도의 게임을 꽤 스릴 넘치게 만든다. 기울기에 따른 가속도가 붙으니 살짝만 조작하려 해도 한 번에 쓱 굴러가 아저씨의 생명같은 휴지가 반토막나기 일쑤다. 또 속도를 내려고 빨리 굴리면 종이 밖으로 떨어지고, 너무 천천히 굴리면 장애물을 적절히 지나치기 어렵다.

뻔한 장애물 피하기 게임이 약간의 발상 전환으로 그래도 친구이나 가족과 함께하기 꽤 그럴듯한 게임이 된 셈이다.

▲ 두루마리 휴지 안에 조이콘을 잘 넣고

▲ 적당히 넓은 판 위에서 잘 굴려주면 된다

사실 개발자인 미야자와 타카히로는 2001년부터 인디 게임을 개발했고 일본 게임 대상 인디 부문 우수상을 비롯, 다양한 수상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흥행과는 거리가 3만 광년은 떨어져 있지만, 줄을 당겨 로프를 오르는 RuinsClimber, 샴푸 통을 컨트롤러로 만든 Shcocooococo, 무게를 잘 맞춘 성배를 올려야 전설의 검을 뽑을 수 있는 The Sword 등 참신한 게임들이 그의 이력에 올라있다.

닌텐도, 그리고 스팀이나 소니, MS, 에픽 등 다양한 대형 게임 플랫폼사들이 바라는 인디 중에는 이런 게임도 있었을 거다. 스팀을 비롯해 근래 플랫폼 사들은 인디 게임의 스토어 입점을 비교적 자유롭게 풀었다. 닌텐도 인증 게임이 아니면 타사 게임 하나 찾기 어려웠던 과거 3DS 등의 시절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 ‘성배 무게를 잘 맞춰 바쳐야만 뽑을 수 있는 전설의 검’을 게임으로 만들었던 미야자와 타카히로


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참신한 발상의 확장으로 100% 이어지진 못했다. 때로는 모바일에서도 저열한 수준으로 비판받은 타이틀이 큰 변화 없이 이식됐다. 다른 언젠가는 그럴듯한 광고 이미지를 걸어두고 실제 게임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의 것을 잘 옮겨내는 데 그쳐 참신함보다는 돈이 되는 게임을 만드는 예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지며 ‘휴지가 없다!’처럼 나름의 독창적인 휴지, 아니 무기를 가지고도 눈에 보이는 스토어 페이지 이미지와 그래픽 연출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눈에 띄지 못하는 ‘작품’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독특함에 기댄 게임들은 언제나 시장의 주류가 될 수 없고 억지로 하라고 해서 할 만한 게임도 아니다. 다만 꼭 판매량을 제일 먼저 앞세우지 않더라도, 똑같은 게임만이 시장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독특한 시도가 그만한 주목을 받을 수 있어야 이러한 게임이 참신한 무언가가 계속 나올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화장실에서 거름을 생성하는 주제의 게임을 하니 이런 바람은 괜스레 더 커진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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