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리뷰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야숨)’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부터 닌텐도, 그리고 게임 업계 전체까지 꽤 많은 변화와 영향력을 미친 타이틀이다.

다양한 작품이 출시되며 여러 분기로 이야기가 나뉘어 진행됐던 게임 배경을 먼 미래를 바꾸며 세계선을 바꾼 젤다의 전설 신작. 거치 콘솔과 휴대용 콘솔의 통합을 이룬 하이브리드 기기 스위치의 런칭 타이틀로서 이끈 닌텐도의 새 시대. 그리고 탐험을 강조하며 여러 오픈 월드 타이틀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게임으로서의 임팩트.

야숨은 여러 부문에 그 영향력을 펼쳤고, 또 긍정적인 쪽으로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후속작 발표 이후 기대와 함께 전작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일말의 걱정도 나왔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시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하 왕눈/왕국의 눈물)은 상상한 것 이상을 그려내며 다시 한 번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여정의 한계를 확장했다.


게임명: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장르명: RPG /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3. 5. 12.
리뷰판: 1.1.0

개발사: 닌텐도
서비스: 닌텐도
플랫폼: NSW
플레이: NSW

◎ 기사 내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진화한 여정으로
젤다를 구하러 갈 마음이 그래도 좀 더 들었다

게임의 시작은 전작의 진엔딩 이후 링크와 젤다의 고대 유적 탐험에서 시작한다. 이후 지하에서 만난 미라화 된 가논, 파괴되는 마스터 소드, 붕괴된 바닥 아래로 추락하며 사라진 젤다, 그리고 하늘섬에서 맨몸으로 깨어난 링크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렇게 왕눈은 다시 한 번 게임의 시작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링크로 설정했다. 플레이어는 전작에서 가졌던 능력을 포함해 많은 것을 잃은 채로 하늘섬 한 곳에서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하트 3개, 스태미너 한 줄의 맨몸 링크가 다시 긴 여정을 떠나게 된 셈이다.

▲ 풀강 링크에서 다시 3성 링크로

하지만 그 여정은 내러티브의 확장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야숨은 기본적인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게임 초반 플레이어의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수수께끼의 노인으로 등장하는 하이랄 왕이 이 구간에서 어느 정도 목표를 지정해주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가이드 자체는 없었다. 오히려 제목에도 있는 ‘야생’을 키워드 삼아 잠에서 깨어난 링크를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기존 시리즈와는 달라진 게임의 기술을 사용하고,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내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말 그대로 자연에 던져놓고 살아봐라 식이다.

내러티브는 분명 이러한 야숨의 방향성과 특징을 옅게 만들 수 있는 요소였다. 플레이어의 창의력 아래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요소와 자연환경의 변화가 그대로 게임에 적용되는 창발적 플레이는 설명이 아니라 플레이 안에서 깨우쳐야 하는 내용이다. 이는 기존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추구하던 자유로움과는 다른 방향성에서 구현됐다.

비슷하게 서바이벌 게임이나 마인크래프트로 대표할 수 있는 샌드박스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많은 것을 설정하고, 체험하며 세계에 적응한다.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행동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내러티브, 거기에 맞는 목표를 강조한다면 당연히 창의적 플레이보다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플레이가 구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쪽의 게임에서는 거대한 이야기나 플레이를 설명하는 상위 존재가 세계의 설정이나 기본적인 방향만을 제시하고 게임에서 빠져나간다.

야숨은 역할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롤플레잉 성향이 드리운 게임이지만, 반대로 ‘너 해볼 대로 한 번 해봐, 많은 게 생각한 대로 될 테니까’라는 샌드박스 성향 역시 짙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큰 틀도 4개 신수 해방을 중간 목표로 삼아 젤다 구출, 재앙 가논의 섬멸로 담백하게 구성됐다. 중간중간 얻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관계에 관한 부연 설명으로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몰입할 추가 장치에 가까웠다. 작중에서 충분히 소개되지 못한 100년 전 이야기는 컷씬을 통해 이야기 전달이 쉬운 액션 장르 ‘젤다무쌍 대재앙의 시대’를 통해 별도로 풀어낼 정도였다.

▲ 야숨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러티브는 젤다무쌍을 통해 풀어낼 수 있었다

왕눈의 내러티브 구성과 전달 방식 자체는 비슷하다. 전작에서도 활약한 4명의 인물과 함께 4개 신전을 해방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젤다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다시 적으로 등장하는 가논과의 대치까지 보면 비슷하다기보다는 똑같다고 하는 게 적합할 수도 있다. 이야기도 탐험에 따른 컷신 그 자체에 기대고 있다.

전달 방식은 비슷하지만 전달 내용은 다르다. 두루뭉술하게 방향만 잡아주고, 여러 곁가지 이야기들로 플레이 자체에 집중했던 야숨과 달리 왕눈의 이야기는 직접적이고 분명하다. 당장 게임 시작부터 전작에서 흐릿하게 담겨 암시만 됐던 많은 요소를 직접 언급하고 설명한다.

독기만 폴폴 뿜으며 등장했던 가논은 오랜만에 다시 인간형으로 등장해 게임 시작부터 위압감을 전하고 그 정체부터 불분명했던 조나우족은 당장 링크 앞에 등장해 게임 초반을 이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당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야숨의 100년 전 이야기보다도 훨씬 먼 과거인 10,000년 전 봉인전쟁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왕눈이 그 설명의 세세함을 가지고 있다.

▲ 독기 덩이가 아닌 인간 시절의 가논, 10,000년 전 봉인전쟁 시기의 이야기도 그려진다

그리고 이렇게 나열되는 이야기는 눈앞의 게임 플레이 목표와도 연계된다. 실종된 젤다를 찾는 과정과 여러 마을 곳곳에 등장한 젤다와 이상 현상. 그리고 봉인전쟁 당시와 이어지는 오늘날. 이야기가 보다 직접적으로 각각의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봉인전쟁 시기와 젤다의 행방과 관련된 이야기는 꽤 안타깝고, 전작의 담백한 이야기와 비교하면 충격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하게 진행된다. 시작부터 숨김 없이 다 등장한 조나우족과 가논의 부활이 그랬듯 젤다의 이야기도 반전보다는 꾸준한 암시를 통해 명확하게 전달된다.

야숨에서 사진을 보고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을 찾아 열리는 회상 이벤트는 이번에도 지상화에 있는 눈물 위치에 도달해 10,000년 전 기억을 되돌아보는 식이다. 타자화된 기억을 통해 링크가 제삼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돌아보는, 굉장히 편의적인 전개다. 대신 그 내용 자체가 야숨에서는 여러 인물의 관계에 집중해 부족한 캐릭터성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면 이번에는 과거 사건과 행위 자체, 그리고 그게 지금의 이야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담아낸다.

세세한 게임 플레이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플레이어마다 제작기 다른 경로로 게임을 즐기는 만큼 지상화 눈물 입수 시기도 달라 획득하는 이야기의 컷신 순서도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벤트 장면을 보는 순서도 저마다 다른데 몇몇 중요 이벤트는 어느 순서로 보느냐에 따라서 지금 진행 중인 플레이에서 느끼는 감정과 분위기를 크게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굵직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 젤다와 관련된 이벤트는 분명하면서도 슬프게 흘러가고

▲ 그 과정을 플레이어가 함께 알아가며 안타까움을 더하도록 만들었다

젤다 구하기? 그래도 이건 하고 가야지!
다른 길로 샐 수밖에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플레이

왕눈은 야숨의 후속작으로 전작에서 미처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에 암시만 됐던 요소들을 전면에서 다양하게 다룬다. 그럼에도 그 기반은 어디까지나 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플레이다.

야숨이 그랬듯 게임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내러티브를 비교적 단순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왕눈은 반대로 게임의 이야기적인 측면을 크게 강조했다. 여기에는 이유도 있고, 목표로 한 장점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도 게임의 큰 특징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개발진의 자신감도 느껴진다.

▲ 많은 것이 전작에서 이어지는 젤다 후속작으로서의 왕눈

우선, 왕눈은 이미 플레이한 이들에게 게임의 장점을 굳이 새롭게 어필하지 않아도 된다. 야숨은 기존 시리즈와의 다름, 또 그런 다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처음 알리는 게임이었던 만큼 그걸 살리기 위해 내러티브는 앞선 이유로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숨은 이미 시리즈 최고, 최대 흥행이라는 표현이 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게임이기에 많은 이들이 플레이했다. 플레이어들도 게임의 장점과 플레이 특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이미 전작을 통해 강조된 자유로운 플레이 특징을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야숨의 색은 이번에도 이어지기에 내러티브가 장점을 흐트려트리는 요소가 아니라 기존 장점과 함께 게임에 몰입감을 더하는 또 다른 요소이자 장점으로 양립할 수 있었다.

▲ 물론 꼬마였던 프루아 할머니는 다시 어른이 됐지만

반대로 게임은 전작의 후속작이고 이미 거대한 명성을 쌓았지만, 여느 프랜차이즈가 그렇듯 새롭게 게임을 시작하는 이들은 충분히 넘쳐난다. 많은 샌드박스 방식의 게임처럼 야숨 역시 엄청난 호평에도 명확한 목표와 진행 방향에 대한 부족함은 게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플레이어 부류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 주어지는 비교적 명확한 내러티브는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플레이 당위성을 확실하게 제공한다.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함께 동행하는 인물인 젤다의 실종을 시작부터 제공하면 당연히 ‘그를 찾아야 한다’는 목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인식된다.

링크가 깨어나는 하늘섬은 튜토리얼 구간이라고 하기에는 마음만 먹으면 수 시간을 즐길 정도로 방대하기도 하지만, 조나우족인 라울이 특정 사당을 방문하고 이를 해결하라는 안내로 시작되는 점에서 전작과 같다. 하지만 야숨에는 튜토리얼 구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얻기까지 왜 내가 그의 목표를 따라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큰 목표를 제공했다. 이후에도 여러 퀘스트 목표를 착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큰 틀에서 게임의 핵심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목표보다는 행위에 집중한 샌드박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보다 자유롭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셈이다.

▲ 젤다와의 이별을 시작에 겪은 플레이어게 자연스럽게 젤다 구출이라는 목적을 심었다

전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냄과 동시에 강화된 내러티브가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게임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전하는 데 될지도 모른다. 게임 자체가 오래됐으니 다른 수많은 게임을 해오며 야숨이 가진 세세한 플레이 감각을 잊은 이도 있을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게임이 흔들리기에는 이번 작품이 가진 자유라는 근간은 너무나도 깊게 박혀있다. 내러티브에 따른 목표를 주어도 얼마든지 창발적 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이를 위한 노력이 있다는 의미다.

게임 제작이 모두 마무리된 출시 한 달 반 전, 아오누마 에이지의 실제 게임 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상세 정보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링크의 능력들을 소개하며 큰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실제 게임에서도 그 활용도는 수많은 플레이의 변화를 만들었다.

물건을 땠다 붙였다 하는 울트라 핸드는 단순히 특정 물체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거의 모든 오브젝트에 능력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오브젝트라면 큰 제약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을 실현할 수 있다. 추진체나 자가 동력 바퀴, 글라이더, 광원체, 레이저나 화염포 등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조나우 기어 오브젝트는 적들을 잡고 나오는 재료 넣어 사실상 무한대로 획득할 수 있다.

이미 영상에 나왔던 자동차나 마차는 물론 수많은 나만의 물체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폭격기부터 매끈한 고속 자동차까지 수많은 창작품이 커뮤니티에 공유된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대개 플레이어의 상상력 부족일 뿐이다.

▲ 다양한 물체를 붙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재미

▲ 독특한 능력을 가진 조나우 기어는 드랍되지 않아도 쉽게 수급할 수 있다

소재를 무기에 활용하는 스크래빌드 역시 새롭기는 하지만 때로는 아쉬움으로 남았던 야숨의 무기 체계를 뒤집었다. 무기와 오브젝트를 결합해 새로운 능력을 내는 이쪽도 게임 안에 있는 소재 대부분을 무기와 묶어 활용이 가능한데 그 용법이 자유롭다.

점프 발판이 되는 스프링을 방패에 달면 공격하는 적을 멀리 튕겨내 높은 곳에서 떨어트릴 수 있고 무기에 여러 속성 소재를 달면 그걸 활용하는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진다. 단순히 공격력을 높이는 소재도 있고 무기끼리 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을 되돌리는 리버레코, 천장을 뚫고 나가는 트레루프는 암벽타기라는 수직 이동을 더 넓은 형태로 구현하며 이동의 자유로움을 만든다.

게임은 전투, 플레이, 이동 등 많은 구간에서 이러한 새로운 능력을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적응하도록 한다. 탐험의 영역이 강조된 전작에서 창작과 자유가 강조되다 보니 이거 한쪽만 보고도 수없이 많은 플레이가 가능하다. 내러티브에 따른 플레이 중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게임 요소에 녹아들 구간이 넘쳐나는 구성이니 내러티브 강화가 게임의 장점으로만 작용하고 있다.


새롭지만 젤다답다
같은 세계를 다르게,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게임 디자인

내러티브의 강화도 강화지만, 앞서 설명한 수많은 능력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훨씬 더 자유로워진 게임 속 자유 안에서 기존의 한계를 깨는 창의적 플레이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창의적 플레이의 자유로움은 자칫 잘못 다루면 게임의 핵심을 흩트릴 수 있다.

▲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능력으로 광차를 조합해 방패 서핑만 하면 이게 된다

왕눈은 오픈 월드라는 꽤 편의적으로 쓰이는 표현적 이점을 제외하고라도 RPG와 액션 어드벤처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링크라는 역할로 존재하는 플레이어가 자유도에 취해 그 역할을 잃으면 게임은 그저 여러 물체를 조합하고 무기를 만드는 샌드박스 액션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실제 게임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요소들이 게임 안에서 링크가 가진 능력임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부분은 울트라 핸드를 통해 아이템을 ‘붙이는’ 요소다. 여러 샌드박스 게임에서 월드 상태를 직접적으로 변경하는 구간, 적어도 여기서 플레이어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왕눈도 자유롭게 오브젝트를 결합하는 자유도를 가지지만 이를 접착제로 붙인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접착제는 단순히 게임 바깥의 존재인 플레이어가 만들어 가는 세계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이미 존재하는 하이랄 대지에서 마법과 유사한 능력을 활용하는 링크로 분(扮)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를 링크와 동일시하는 거지 플레이어를 게임 속 주인공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미묘한 차이같지만, 사실 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앞서 언급한 내러티브와 장점과 자유도가 함께 살아날 수 있고 실제 게임에서도 그게 가능함을 증명했다.

▲ 접착제는 왕눈 직관성의 핵심이자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링크라는 인물로 남아있음을 상징하는 요소다

이렇게 접착제와 같은 직관성은 전작부터 게임의 모든 특징을 아우르는 핵심 장점 중 하나다. 풀에 불을 내면 상승 기류가 발생하고 번개가 치는 장소에서 철제 무기를 들면 벼락을 맞는 등 야숨에는 많은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게임적 허용은 있을지언정, 실제 우리가 듣거나 경험한, 혹은 삶에서 습득한 지식, 그리고 실제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인식한 내용이다. 따로 게임만을 위한 별도의 지식 위에 쌓이는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니라 그러리라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추론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접착제는 플레이어에게 이것이 붙어있는지, 떨어져 있는지 알리는 가장 쉽고, 분명한 표현이다. 닌텐도를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접착 형태를 구현했음을 인터뷰를 통해 알린 바 있다. 그리고 이렇게 ‘붙인다’라는 개념은 플레이어에게 별다른 지식 없이 그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표면이 매끈한 쇠 공은 마찰력이 있는 거친 나무 표면에만 붙여야 해’가 아니라 ‘접착제가 있으니 눈에 보이는 그대로 붙이면 돼’를 말이 아닌, 직관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순하게 물건을 서로 붙인다는 식으로 시작해 점점 그 창작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며 자연스럽게 게임에 적응하는 역할도 한다.

그 직관성이 바로 아오누마 에이지 프로듀서가 말하는 ‘젤다답다’의 핵심이다.

▲ 게임 개발을 이끈 아오누마 에이지 프로듀서(좌)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디렉터

이렇게 플레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창발적 플레이는 너무나도 많아 게임 플레이 전체에 그 영향력을 펼친다. 그런데 이러한 플레이가 무한정으로 가능해진다면 게임의 또 다른 핵심인 퍼즐적 재미는 그저 능력을 활용한 꼼수 아래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결국, 하나의 퍼즐 풀이, 신전 공략 등에서 플레이어가 여러 능력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 풀어낼 수 있는 해결 방식을 다양하게 준비하되, 고민 없이 능력의 편리함만으로 퍼즐을 풀어내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부분에서 돋보이는 게 왕눈의 레벨 디자인이다. 사당이나 신전 등 정해진 길이 존재하는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싸매고 뇌를 들들 볶아가며 아이디어를 꺼내야 한다. 고민도 많았으니 클리어가 눈앞에 보이면 이 어려운 퍼즐은 나만 풀었을 거라는 성취감에 휩싸인다. 뭐 대개는 남들도 비슷한 정도의 시간 안에 클리어 하긴 했지만.

어쨌든 퍼즐의 클리어 구간이 다가오고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인다. 널브러진 바위나 보지 못했던 파인 홈, 무기와 조합할 수 있는 소재 등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하면 내가 플레이한 방법 외에도 여러 가능성이 시뮬레이션된다. 그중에서는 조작에 의한 피지컬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그냥은 생각하지 못했을 창의력에 의한 클리어도 떠올릴 수 있다.

▲ 신수를 대신해 이번에도 다양한 해결 방법을 품은 퍼즐 요소인 신전

▲ 현자들의 능력과 함께 신전마다 다양한 기믹으로 게임을 풀어나가게 된다

중요한 건 능력 자체가 매우 자유롭게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퍼즐 안에서 그걸 제한하고 있음을 플레이어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퍼즐의 구성은 분명 기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할 요소나 구간을 일부 만들어두고 제한한다.

하지만 왜 가진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느냐는 불만보다는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며 도전하고,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제한되는 수준이 대개 그 능력 활용이 논리적 퍼즐의 방해가 될 법한 내용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야숨보다 더 강력해진 능력을 이리저리 활용하고, 시도해보면서 퍼즐을 풀어나가도록 권장하고 집중하도록 만드는 레벨 디자인이다.

그러한 세심한 설정은 개발진이 플레이어가 시도해볼 법한 수많은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야 가능하다. 능력의 변화가 레벨 디자인에 있어 얼마나 많은 변화와 고민을 불러왔을 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 능력을 이리저리 조합해 머리 써서 플레이할 구간도 많도록 구성

능력 활용과 게임 디자인의 결합을 대표하는 게 게임 곳곳에 존재하는 건물터다. 건물터는 허드슨 건설이 하이랄 대지의 재건을 위해 목재나 바퀴 등 필요한 재료를 쌓아둔 곳이다. 실제 게임 플레이 내에서는 여기 있는 재료는 훌륭한 울트라 핸드 재료가 된다. 때로는 길을 만들 다리가 되고 마차나 배를 만들 재목이 된다. 단순하게 보면 건물터는 게임 콘텐츠를 활용할 작은 재료 공급터 정도다.

하지만 넓은 맵을 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게임 특성상 이동에 도움을 주는 탈것의 기반 재료의 분배는 분명 게임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걸 단순히 상자나 바닥에 널린 아이템이 아니라 재앙 후 재건 시기라는 게임의 세계관과 이야기와 결부시킨 건물터로 구현했다.

단순한 게임 플레이 위에 설정, 편의 요소까지 복잡하게 얽혀 그려낸 셈이다. 실제로 게임에는 여러 요소를 복잡하게 얽혀 만든 것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건물터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의 조합을 통해 그것이 그렇게 게임에 존재하는 데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조율했다.

▲ 세계관 설정을 위한 건물터의 자재가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게 왕눈 직관성의 방향이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면 진짜 할 수 있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래서 이렇구나’ 느낄 수 있는 것. 말은 쉽지만 모든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게임에서 이는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다.

개발진에서야 정형화된 플레이를 유도하는 게 편하다. 그만큼 고려할 부분이 줄어드니 말이다. 왕눈에서는 반대로 전작보다 더 많은 자유를 준다. 그리고 그건 같은 세계의 변형이라는 형태로의 작업을 의미한다.

중후반 하늘섬과 지저를 오가는 플레이가 중요하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하늘섬은 대지와 비교하면 분명 그 너비가 적다. 반대로 대지와 같은 크기의 지저는 독특한 개성은 있지만, 대지나 하늘섬만큼 플레이의 중심에 담기지 않는다. 결국, 튜토리얼 구간을 제외하면 초중반까지는 전작과 같은 하이랄 대지가 게임의 핵심 배경이 된다.

▲ 같은 장소이기에 그 안의 능력 변화에 맞춰 이질감 없는 디자인이 다시 이루어져야 했고

▲ 돈으로 열렸던 대요정의 변화처럼 게임의 이벤트와 엮어내며 인플레이 요소도 살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뿐 전작과 같은 공간을 재활용했다는 일부 비판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능력이 게임에 크게 관여했다는 부분을 생각하면 마냥 부합하는 비판이라 보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아무런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다면 이는 생각이 필요 없는 치트 정도에 그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천장을 뚫고 올라가지 못한 높이나 경사도를 구현하거나 두뇌 플레이에 기반한 플레이를 기존의 하이랄 대지 곳곳에 모두 적용돼야 했다. 이는 곧 왕눈의 하이랄 대지를 야숨의 것과 같은 공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동시에 실제로는 역할의 차이가 존재하는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필요 사항을 야숨보다 더 넓어진 자유도와 함께 구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을 재차 상기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시커족의 특징을 살려 푸른색으로 통일됐던 핵심 색상은 게임 곳곳에 녹색에 맞춰 재조정됐다. 그리고 이게 게임 전체에 고르게 활용되는데 뭇 게임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통일감과 전체적인 색상 구성까지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 능력 활용부터 게임 곳곳에 등장하는 녹색은 이번 작품의 상징으로 게임에 통일감, 전작에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목적과 방향 아래 전체적으로 능력 활용을 글리치(의도되지 않은 게임 오류)를 활용한 피지컬 요소나 꼼수에 의존한 플레이 역시 지양됐다. 많은 적에게 쉽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리모컨 폭탄, 움직임 자체를 멈춰버리는 타임 록 등은 사라졌고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 역시 덩달아 높아졌다.

스위치에 갇혀, 스위치를 넘어
6년 후 다시 한 번 스위치의 한계를 넘고자 하다

닌텐도 스위치 출시 당시부터 휴대용 콘솔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기기로 높은 활용성을 보였지만, 당대 거치 콘솔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PS5, XSX 등 다음 세대 콘솔이 등장하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공존한다.

이러한 한계에 따른 아쉬움은 왕눈이라고 다르지 않다. 게임의 해상도나 떨어지는 프레임 등은 여타 AAA 기대작이 보여주는 미려함보다는 분명 떨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분명한 한계 안에서 이 정도의 만듦새를 가져왔다는 부분 역시 짚지 않을 수 없다.

▲ 다른 기종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스위치 안에서는 다른 어떤 게임보다 훌륭한 그래픽을 구현해냈다

아직까지도 런칭 타이틀이었던 야숨만큼의 그래픽을 보여주는 스위치 작품이 손으로 꼽힐 정도로 야숨은 기기 성능을 충분히 활용한 오픈 월드 세계를 구현했다. 특히 사당 진입이나 워프 등 공간 변경 정도를 제외하면 별도의 로딩 화면이 없는 심리스 세계를 구현하기도 했다.

Wii U와 함께 출시되며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오롯이 닌텐도 스위치만을 위해 제작됐고 그건 더 성장한 게임의 만듦새로 증명된다. 적절한 시야의 활용과 퀄리티 조절로 일반적인 인게임에서는 두드러지는 프레임 드롭을 확인할 수 없다. 특히 근래 AAA PC 게임에서 문제로 떠오른 스터터링 등의 최적화 문제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오브젝트, 환경 요소가 다양하게 펼쳐진 공간에서 울트라 핸드를 쓰는 것처럼 무리를 주는 액션 정도에서 프레임이 급감한다. 클럭 자체가 낮은 성능 부족이 드러나는 구간인 셈이다. 반대로 하늘섬처럼 높은 곳에서 다이빙하며 펼쳐지는 시야는 상쾌하다 싶을 정도의 놀라움을 안기긴다. 부족한 성능에서도 심리스로 직접 대지까지 이동하는 모습을 담아낸 점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UI 변화와 편의 요소의 변화도 꽤 눈에 띈다. 가장 큰 변화는 능력 사용을 L 한 버튼으로 몰아넣고 방향키 위 버튼을 소재 활용에 따로 구분시켜둔 점이다. 활시위를 당기고 위 버튼을 눌러 아이템을 선택, 활에 바로 소재를 조합하는 식이다.

이게 그저 마냥 편리한 방식은 아니다. 강화 재료나 요리 재료를 제외하면 소재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야숨만큼은 아니지만, 활용 가능성이 분명한 소재의 수는 정말 많다. 여기에 일반 나무 화살만 남기고 특수 능력을 소재를 통한 조합에 모두 몰아넣어 자주 쓰는 것들의 수도 적지 않다. 자주 쓸 수 있는 순서로 소재를 정리할 수 있지만, 그걸 전투 중 하나하나 넘기고, 화살을 쏠 때마다 반복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속성별로 나뉘어있던 화살이 나무 화살 하나로 통합되며 화살 수급이 넉넉해졌다는 점 정도다. 그래도 소재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쉽게 확인할 수 있거나 소재 꺼내기가 필드 위에서 바로 되는 점, 아이템 종류 구분을 한 화면에서 가능하게 한 점등 편의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한 개선이 있었다.

▲ 소재 활용은 꽤 번거롭지만, 전작의 조작을 계승하는 방향에서는 그나마 최적의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

소재의 활용이 다양해지면서 이를 위해 조정된 전투 밸런스는 꽤 버겁게 그려진다. 기본적인 전투 방향은 같지만, 적들 역시 스크래빌드를 활용해 강력해진 무기를 쓰는데 이게 아무리 방어구를 강화해도 일반적인 속도로는 무기 대미지 상승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방어 능력이 떨어져 맞기 전에 때려야 하고, 전투 중 바로 무기를 조합하는 스크래빌드를 활용하기는 어렵도록 되어 있어 다양함보다는 강력한 무기를 조합해 들고 다니는 플레이가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게임에 익숙해지면 패링으로 다 깨부수고 다닐 수도 있고 울트라 핸드로 전차라도 만들어 무력 제압하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다.

▲ 주요 인물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형태가 바뀌며 조작 체계도 최적화됐다

신수 능력과 비슷한 현자 능력의 변화로 가능해진 소환을 통해 전투의 어려움을 덜 수도 있다. 시드, 루쥬, 윤돌, 튤리 등 전작의 등장인물이자 각 종족 현자의 힘을 가진 이들과 동행 시에는 한번 상호작용으로 능력을 준비, 다시 버튼을 눌러 능력을 발동하는 형태로 그 방식이 변경됐다.

대화가 발동의 핵심이 된 만큼 이들이 실제 형상화된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고 신전 클리어 이후에는 소환 영체 형태로 전투를 함께 한다. 직접 조작하는 링크만큼 전투에 능숙하게 참여하지는 않지만, 분명 적에게 피해를 주고 공격을 분산한다. 신전을 클리어하면 그 수만큼 함께 다닐 수도 있어 알아서 적들을 잡을 수준이 된다.

소환체로 합류하기 전 신전 공략에서는 영체 대신 인물들이 동행하는데 출시 전 영상에서 시드와 함께 적과 대치하는 모습도 인게임 안에 그려진다. 주변인에서 함께 적과 싸우는 동료로서의 특징이 그만큼 강조됐다 할 수 있다. 야숨을 플레이했던 유저들에게는 꽤 감동스러운 순간이기도 하고.

▲ 영걸의 후예들은 이제 전투를 함께 하기도 하고

▲ 다 소환해서 다니면 꽤 듬직해진다


워낙 기대가 높았던 게임이기에 과연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결과가 나올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다. 야숨보다 더 나은 젤다의 전설이 앞으로 나올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개발진은 다시 한 번 게임사에 길이 남을 게임을 공개했고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야숨을 거대한 후속작을 위한 서막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작과 같은 세계, 유사한 플레이를 유지하면서도 내러티브의 성장과 능력의 강화로 만들어낸 자유도. 그리고 그걸 게임이라는 틀 안에 한계가 없는 듯 구현해낸 디자인까지. 출시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점은 말 그대로 크나큰 축복이다.

리뷰를 쓰며 아쉬운 점은 리뷰를 써야 했기에 조금 더 천천히 게임을 맛보고 즐기지 못했다는 점뿐이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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