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닉네임)는 게임 로컬라이즈, 라이센싱, 마케팅 업무로 경력을 시작하여 개발 전략, 게임 제작 관리 업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콜 오브 듀티,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천주, 페르시아의 왕자 등을 국내 퍼블리싱하고, 팡야 콘솔 버전 등의 해외 라이센싱 업무를 담당했다.
합법이었던 바다 이야기 시절에 일본의 게임개발사 SNK의 파치슬롯을 국내법에 맞게 수정하는 업무, 드라마 겨울 연가의 일본 파칭코 라이센스 계약 업무에 관여하며 MMORPG와 파칭코의 유사성을 처음 깨달았다. 이후 사행성 이슈에 관심을 두고 게임 과금 모델 설계 등에 관여하며, 게임 사행성에 관해 이론과 실무적으로 경험을 쌓았다. 이 경험을 토대로 책,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K-게임 사행성의 비밀’을 썼다. 현재 게임 업계 분석 유튜브 채널 ‘뀨놀의 게임 읽기’에서 활동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관련 업무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 정부의 시행령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정부가 발표한 ‘확률형 아이템 시행령’을 봤을 텐데, 어떻게 평가하나?
고라 = 확률형 아이템 시행령은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화라는 큰 흐름에서 나왔다. 따라서 그 부분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가챠, 확률형 아이템으로 불리는 사행성 뽑기 판매 방식에 대한 지적과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게임사에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가 있다. 이후 공정위가 확률형 아이템을 고객 기만적인 상술로 보아, 최대 영업정지까지 내릴 수 있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마련하고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법 안에서 다루겠다고 하며 해당 개정안을 막았다. 2020년 10월 말에 공정위가 확률형 아이템에서 손을 떼기로 발표하며, 해당 개정안은 취소된다. 공정위안이 취소되고 2개월 뒤인 2020년 12월에 나온 것이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이다. 이 법안이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23년 초 ‘일부개정안’ 형태로 통과됐고, 이에 따라 나온 것이 이번 시행령이다.
시행령 전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성’ 측면에서 주로 지적받았다. 즉, 정보 공개나 확률을 속이냐는 것은 다음 문제이며, 고객 기만적인 상술이거나 준도박에 해당하니 해당 판매 방식 자체를 규제하고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방법으로 결제 제한이나 매출에서 확률형 아이템 매출이 일정 비율이 넘지 않도록 제한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해외에서는 준도박으로 보아 미성년자에게 확률형 아이템 상품을 팔면 안 된다고 하는 흐름도 있다. 차라리 1천만 원, 1억 원짜리 아이템을 팔고, 확률형은 팔지 말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확률 공개 여부에만 관심이 가면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이 부분이 확률 공개 의무화 법안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시행령 내용을 보면 이런 흐름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시행령과 이에 관한 정부 인터뷰에 ‘사행성’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또한, 변동확률, 컴플리트 가챠 등 고객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기만적이라고 꾸준히 지적이 있던 복잡한 기법도 확률만 표기한다면 모두 문제없다고 시행령 안에 명시했다.
즉, 이 판매법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발 더 나아간 흐름으로 보인다.
‘확률 정보만 정확하게 제공하면 된다’는 관점으로만 계속 고객들의 시야를 돌려놓는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라’라는 논의만 이뤄질 뿐, 근본적인 논의는 계속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보 공개의 측면만 봐도 지금 사실상 모든 사행성 기법을 허용한 상태임에도 정보 표기에 대한 시행령 내용은 매우 두루뭉술하다. 따라서 더 많은 정보를 공개, 표기하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흐름대로라면 정확하다는 명분 하에 점차 복잡하게 표기할 것이다. 게이머들은 복잡한 수식이 표시된 확률 정보를 보고 어느 순간 ‘알아서 잘했겠지’ 하며 결제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게임사는 “저희는 법대로 다 알려드렸습니다”라는 분위기로 가고,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거나, “확률 표기 다 했는데 사행성이라니 억울하다”며 당당한 상황으로 갈 것으로 예상한다.
게임사가 시행령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고라 = 함부로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확률형 아이템의 매출 의존도가 큰 대형 게임사의 사업부 담당자라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법안이므로 긍정적으로 볼 것 같다.
일단 확률형 아이템 정의가 생기고 관련 규제가 따로 생기면서 예상되는 가장 큰 효과는 사행성 이슈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성’ 규정으로 심사하고 있지만, 확률형 아이템 규정이 신설된다면 더 이상 ‘사행성’으로 심사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확률 표기 문제를 떠나서 좋지 않은 판매 방식이라는 인식을 털고 단순 표기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다음으로 표기만 하면 변동확률, 컴프가챠도 문제없고, 확률 제한도 없다. 따라서, 기존의 판매 방식을 변경할 필요도 없다. 그간은 관련법이 없으니 여론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제 ‘합법’적으로 관련 기획을 마음 편하게 도입할 수 있으니 명쾌해졌다고 생각할 것 같다.
또한, 연매출 3년 평균이 1억 원 이하인 회사만 확률 표기 의무를 면제한다고 했는데, 이렇다면 사실상 거의 모든 회사가 확률 표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큰 회사는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부담이 없지만 작은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더 확률 표기 법안이 복잡해질 것을 예상하면 작은 회사들은 복잡한 심의, 표기 규정을 맞추는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내가 대형 게임사 사업부라면 중소 게임사에 “심의와 확률 노하우가 있으니, 저희를 통해 서비스하시는 것이 사업적으로 유리하다”라고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퍼블리싱 협상에서 좀 더 카드가 생겼다고 볼 것 같다.
외국 게임사는 지키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아닐 것이라고 본다. 대표적인 앱마켓 운영사인 구글, 애플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다. 그런데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자격을 부여한다. 해당 앱마켓에 등록된 해외 게임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을 방치할 경우,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취소하겠다고 하면 안 따를 수가 없다.
결국 국내 사업을 하지 않으며 스토어도 거치지 않으며 APK를 직접 받으라고 하는, 일부 마이너한 해외 게임을 제외하면 대부분 따르거나, 한국 사업을 포기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역시 경쟁사가 번거로워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니 국내 대형 게임사에는 좋은 법안이다.
또는 대형 게임사라면 국내법에 밝지 않은 해외 게임사에 “우리를 통해 퍼블리싱하셔야 심의 빠르게 통과할 수 있다”면서 협상에 들어갈 것 같다.
그동안은 자율규제였기 때문에 해외 게임사는 따라주지 않고 아무 패널티가 없어서, 국내 게임사만 피해를 보고 있던 것에 가깝다.
정부 관점에서 확률형 아이템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어느새 사라졌다.
고라 = 이 법안이 가진 가장 강력한 효과가 그 부분이 아닐까. 2019년까지는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여론의 큰 방향이었다. 단, 당장 없애면 너무 파급력이 크니 어떻게 연착륙할 것이냐, 점차 줄여나갈 것이냐는 방법적인 논의가 많았다.
예를 들어, 확률형 아이템 매출 총량을 두고 이 비율을 점차 줄여나가거나,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지 않는 회사에 다른 혜택을 주는 안들도 있었다. 그런 흐름에서 해외의 시즌 패스, 배틀 패스 과금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을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규제된다면 매출 감소를 피할 다른 과금 방식을 게임사에서는 연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 이후 그런 이야기들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확률만 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임사 입장에서 시행령은 ‘이 정도면 선방했어’ 느낌일까?
고라 = “이보다 더 좋기는 쉽지 않다”가 게임사 입장이 아닐까. 없애야 한다는 논의는 사라지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다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이 없었을 때보다 여론의 눈치를 덜 보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시계를 2025년으로 앞당겨 보자. 그때 유저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어떤 불만을 얘기하고 있을까?
고라 = 앞으로 몇 년간의 흐름은 ‘더 정확하게 표시해달라’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변동 확률과 컴프 가챠를 명시적으로 합법이라고 했는데, 이 기법들은 단순 백분율 표시로는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을 할 수 없다. 입법 측에서도 이미 이 흐름을 예상하고 시행령 안에 분수, 함수, 텍스트를 사용해도 된다고 한 상태다.
이에 따라 조건에 따른 확률 변화를 분수, 함수를 써서 표기하려는 움직임이 조만간 벌어질 것이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노하우가 공개된다면서 반대할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타협점으로 일정 범위 안에서 변화한다는 두루뭉술한 수학 표기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고래 유저’에게 확률형 아이템 시행령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고라 = 결제 제한이 있던 시절(2019년 폐지), 고래 유저는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왜 제한이 있냐’ 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결제를 제한하는 내용은 없다. 고래 유저 입장에서는 ‘돈을 쓰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는 상황 자체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현재의 흐름에 큰 관심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추후 규제로 인해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상태가 된다면 반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원랜드 고래 유저도 더 쓰고 싶겠지만 제한이 있다며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분들이 안심하고 돈 쓸 권리를 위해 베팅 상한을 없앤다면 그분들은 만족하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이슈가 될 것이다.
즉,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의가 애초에 고래 유저의 돈 쓸 권리 보호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올바른가라는 관점에서 이뤄졌으나, 지금은 그 관점이 사라졌다는 부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법이 유저를 보호할 수 있다고 보나?
고라 = 일반적으로 법은 유저를 보호할 수 있지만, 확률 공개 의무화 법안은 아니라고 본다. 또는 유저의 어느 부분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강원랜드, 로또, 빠찡꼬 모두 투명하고 공정하게 확률을 공개한다. 안심하고 돈 쓸 분위기 조성에는 확률 공개 의무화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투명하고 공정한 확률 공개가 사행심을 줄이거나 유저의 지갑을 보호해 줄 수 있냐 하면, 그건 아닐 것이다.
게임사가 0.0004%라고 표기했다면, 앞으로 어떻게 검증할지도 의문이기는 하다.
고라 = 현재 발표된 것으로는 사후 검증을 통한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게임사 서버를 들여다보는 형태는 아니고, 직접 가챠를 돌려서 표기된 것과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굉장히 많이 했을 때 특정 확률에 수렴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사후 검증해야 하는 확률형 상품의 특성상, 많은 인원이 큰 비용(개발사에서 제공한 확률 검증 전용 계정일지라도)을 써가며 해야 하므로 제대로 된 확인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문제 되었을 때만 확률을 일시적으로 되돌리는 방법 등은 검증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일본 빠찡꼬의 사례를 참고하여 국내에서도 모든 확률형 아이템 상품을 중앙 정부 서버에 연결하여 실시간 모니터링이 되게 하는 방법도 논의된 적이 있으나, 여러 현실적인 제약과 반발로 인해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좋은 아이템이 나왔을 때 서버 전체 알림으로 나오는 것도 확률형 아이템을 부추기는 요소 같다.
고라 = 확률형 아이템을 떠나서 게이머의 구매를 유도하는 기획 장치 대부분이 ‘사행성’이라는 카테고리로 규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위는 정부가 문화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위한, 기묘한 준정부기관이다. 그렇다 보니 세부적인 규정을 임의로 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말씀하신 요소들도 게임물관리위원회 초창기에는 ‘사행심을 부추긴다’며 쓰지 않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강제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다 보니 소위 좀 막 나가는 회사들이 소송을 통해서 업체에 유리한 판결을 만들어왔다. 이런 판결이 선례가 되어 다른 회사들이 따라 하는 흐름이 있다. 아이템 구매 경쟁을 부추기는 서버 전체 알림도 그중 하나로 알고 있다.
이제는 확률 공개만 하면 사실상 모든 것이 허용이므로 이런 식의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기획을 막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확률 정보에 기댓값을 표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고라 = 가장 간단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1/100로 한 번 당첨되는 것과 10/1,000으로 10번 당첨되는 것, 100/10,000으로 100번 당첨되는 것은 모두 확률과 기댓값이 동일하다.
하지만 게임사는 확률 분포를 다르게 하여 의도적으로 100번이 나중에 나오도록 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여전히 기댓값은 동일하게 나온다. 이것이 드러나서 문제가 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기댓값 표시 요구는 당연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변동 확률을 명시적으로 허용한 이상, 기댓값을 고객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표시하려면 복잡한 수식 형태가 될 것이다. 여기에 컴프 가챠 등이 합쳐진다면 해당 가챠 결과물의 가치 자체를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발생한다.
기댓값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다. 그러면 변동 확률이 들어간 확률형 상품에 대해 기댓값과 확률 분포 개념을 배우지 않은 중학생까지는 할 수 없다고 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혹은 해당 수식을 계산할 수 없는 사람은 가챠를 할 수 없다고 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일반 게이머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괜찮다고 하면 하거나, 알아서 했겠거니 하면서 플레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으로 기댓값의 전문적인 수학 수식 표기를 보고 현명한 소비를 할 사용자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애초에 그런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현명하지 않다는, 현재의 논쟁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확률형 아이템 시행령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고라 = 확률형 아이템을 무엇으로 볼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건너뛰어 게임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전에는 도박, 준도박, 악질 상술, 사행성 등의 지적이 꾸준히 있었지만, 법안 통과와 함께 그 주장은 상대적으로 힘을 잃게 되었다. 이번 시행령에서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러한 흐름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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