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N 1위 달성한 유저 제작 게임, 그리고 벌스워크의 비전

청강대학교 이득우 교수를 안 지는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BIC의 모더레이터도 했었고, 네오플과 함께 게임잼을 진행하는 등 게임 산업 내 산학협력에 적극적인 그는 본업인 교수 활동 외에도 게임 업계 전반에 걸쳐 많은 일들을 하며 도움을 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들은 소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건이었다.

청강대학교를 졸업한 학부생 중 하나가 미래를 고민하길래, 같이 게임이나 만들어 보자며 권유해 ‘포트나이트’ 내에서 만든 게임이 전체 유저 제작 게임 중 1위를 달성했다는 소식. 에픽게임즈는 매년 수천억 원의 금액을 크리에이터들에게 배분하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그 시장에서 1위를 달성했다면 수익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 게임명 밑에 뚜렷하게 적힌 ‘이득우(ideugu)’

단순 계산을 통해 어렴풋이 떠오른 금액에 취해 말을 이어가다 보니 ‘포트나이트’ 속 시장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이득우 교수와 제자가 함께 만든 게임의 DAU(일일 활동 유저 수)가 최대 170만 명. 동시접속자 수는 54,000명을 돌파했고, 누적 플레이는 2천만 회를 넘겼다. 게임 게시 후 고작 2주만에 일어난 일이다.

듣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 해당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자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 보자 하니, 서울의 한 사무실 주소를 건네줬다. 이번 게임 개발을 계기로 멀티플랫폼 콘텐츠 스타트업과 함께 하기로 했다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자는 이득우 교수. 주소를 찍자 나온 회사 명은 ‘벌스워크’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득우 교수와 함께 벌스워크의 윤영근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 벌스워크 윤영근 대표


Q. 예상 외의 소식이라 놀랐다. 사무실까지 왔으니 이것부터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벌스워크’는 뭘 하는 회사인가?

윤영근 대표: 대중적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적합할 것 같다. 유저 게임 제작도 처음부터 진행했고 MCN과 유튜브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픽시드’와 ‘썰플리’가 벌스워크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채널이며, 그 외에도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인게임 영상 제작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이득우 교수님이 본부장으로 들어오시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게임과 관계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골드 버튼 외에도 4개의 실버 버튼 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벌스워크

Q.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MCN이야 흔하지만 유저 게임 제작 분야를 사업으로 삼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윤영근 대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인데, 이전에 넷플릭스로 방영된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제작사는 돈을 그리 벌지 못했다. 추정 금액이지만 아마 20~40억 사이의 수익을 거두었을 거다. 그런데 로블록스 내에서 오징어게임의 포맷을 따 만들어진 게임이 1,000개가 넘고, 이중 탑5 매출을 합치면 아마 300억 원 정도 나올 거다.

재미있는 건, 오징어게임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로블록스를 주로 즐기는 연령층이 소비할 수 없는 드라마라는 거다. 그렇기에 게임으로 만들어진 오징어게임이 로블록스 내에서 소비될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로블록스가 작년에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으로 배포한 금액만 아마 1조원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비단 로블록스 뿐만 아니라,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도 전체 수익의 40%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투입한다고 밝혔으며 이것 또한 수천억 원 대의 규모다. 제페토 또한 800억 원대 매출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영상을 만들기 위한 장비가 사람 몸만한 카메라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듯, 게임 제작도 전문가 그룹의 협업이 아닌, 개인의 아이디어로 가능한 시대가 왔으며, 이를 뒷받침할 자본이 갖춰진 시장이 생겼다는 뜻이다. 충분히 사업 모델로 생각할 가치가 있었다.

▲ 플랫폼에서 시장으로 발전한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Q. 그러면 벌스워크와 비슷한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여럿 존재하는건가?

윤영근 대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퍼지던 2020년쯤엔 무수히 생겼었고, 지금은 당시에 비하면 줄었지만 아직 존재한다. 로블록스에서 흥행한 게임들을 만들어낸 개인 개발자들이 모여 하나의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벌스워크는 전체 규모 면에서 세계 3위 정도 되며, 우리보다 더 높은 수익을 거두는 기업들도 존재한다.

Q. 듣다 보니 궁금한게, 플랫폼이 곧 시장인 만큼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심할 것 같다. 보통 이런 건 기업 입장에서 꽤 큰 리스크 아닌가?

이득우 교수: 유저 제작 게임의 특징은 대부분의 제작자가 곧 해당 플랫폼의 유저인 만큼, 잠재고객층이 되는 유저들의 성향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들이 원하는 것을 저격한 콘텐츠가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유저 제작 게임 대부분은 이렇다 할 서사나 고품질의 그래픽이나 연출 기법 같은게 없다. 오로지 해당 유저층이 원하는 게임 규칙과 이를 최소한으로 받쳐주는 어셋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 제페토 모두 이루는 유저층이 다르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원하는 자극의 종류가 다르다. 전략으로 요약하면 플랫폼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의 회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지만, 다른 많은 게임사들도 흔히 말하는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걸고 플랫폼을 만들어 시장을 구성하려 하고 있다.

인디 게임 씬의 발전 과정을 보면 다소 이해가 쉽다. 인디 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오픈 API와 상용 엔진 등이 발전하고 구글과 애플이 모바일 게임 시장을 구성하면서 플랫폼화가 이뤄진 시기다.

그리고 플랫폼은 개인이나 소규모 개발 집단이 건드릴 수 없는 빅테크의 전유물이며, 동시에 지배력 경쟁의 수단이다. 로블록스와 에픽게임즈가 수익 쉐어를 통해 공격적 확장을 하는 이유도 플랫폼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쟁 플랫폼으로부터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며, 그걸 위해서는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

서비스를 이어가면서 지속적인 수익을 발생시키려면 유저 풀이 유지되어야 하고, 유저 풀이 유지되려면 꾸준히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져야 하며,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지려면 플랫폼이 제작자들에게 꾸준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이런 현 상황에 대한 자본 논리가 유저 제작 게임 기업이 작동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 청강대학교 이득우 교수(벌스워크 본부장)

Q. 그리해도 결국 그 플랫폼 내에서도 다른 게임 제작자들과 경쟁하게 된다. 좋은 유저 제작 게임의 조건은 무엇인가?

윤영근 대표: 앞서 말했지만, 유저 제작 게임은 끊임없는 ‘니즈 탐색’의 과정이다. 유저 제작 게임은 플랫폼 내 제작도구로 만들어지는 만큼 개발 허들도 낮고 게이머들의 눈높이도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게이머들의 니즈와 어긋나 있을 경우 누구도 그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디테일’, 기성 게임업계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디테일이다. 유튜브가 만들어지고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영상이라는 콘텐츠의 범위는 너무나 넓어졌다. 이전에는 몇 개의 방송국, 혹은 100여개 남짓한 케이블 채널에서 스포츠 중계, 다큐멘터리, 뉴스,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방영했지만, 유튜브의 등장과 함께 세상 사람들은 먹방과 리액션 비디오, V로그라는 새로운 장르를 알게 되었다.

이 말은 곧, 기존 제작자들이 전혀 파악하지 못한 숨은 니즈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먼저 파악해 파고드는 것이 결국 유저 제작 게임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벌스워크의 주력 콘텐츠 중 하나인 인게임 쇼츠도 영상 미디어 발달 과정에서 만들어진 장르다.

Q. 유저 제작 게임 시장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라 생각하는가, 기성 게임 산업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이득우 교수: 어느 순간 기성 게임 산업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게임사(史)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아마 다들 알겠지만, 오늘날 게임 산업의 공룡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게임들이 유저 제작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롤과 도타2로 나뉘는 MOBA, 카운터스트라이크, 배틀그라운드, 오토체스가 모두 유저 제작 모드로 출발해 상용화 수순을 밟은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의 원형이 앞서 말한 대로 기존에 없었던 게이머들의 니즈를 저격한 게임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유저 제작 게임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가 플랫폼을 일궈내기 전까지 유저 제작 게임 씬 자체가 산업화가 되지 않은 창작의 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 대학생인 Eul의 손에서 만들어진 전설의 유즈맵 ‘DOTA’

Q. 벌스워크가 추구하는 유저 제작 게임 생태계에 맞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득우 교수: 확실한 건, 인디 게임씬과는 다소 다르다. 물론 개발 과정이야 비슷하지만, 인디 게임의 경우 보다 밑바닥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기술적 장벽을 넘어야 하고, 수 년은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이 했던 게임과 개인의 경험이 작품에 강하게 묻어나고, 작가주의적 성향을 띈 게임들도 상당수 만들어진다.

하지만, 유저 제작 게임은 이미 대부분의 어셋들이 마련되어 있고, 게임 제작 툴도 상용 엔진 대비 쉽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게임의 핵심이 될 디자인 로직만 있다면 문제 없이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기술 장벽이 낮고, 투자비용이 적으면서도 빠르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정리하면, 인디 게임이 창작자의 자아를 실현하는 형태라면, 유저 제작 게임은 닫힌 생태계 안에서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저격해야 하는 형태다.

유저 제작 게임에서 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아마 기성 게임 산업에 그리 맞는 인재가 아닐 거다. 기성 게임 산업은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분리되어 있고, 분업화가 이뤄져 있다. 기획자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고, 아티스트는 재능이 필요하며, 프로그래머는 엔지니어 역량을 갖춰야 한다.

청강대학교 졸업생 중에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너무나 좋은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고, 굉장한 상상력과 자신만의 재미 이론을 갖추고 있는데, 현 게임 산업에서 요구하는 개발자의 모습에 부합하진 않았다. 나와 같이 게임을 만든 졸업생도 게임 개발을 접고 다른 분야로 나가려 고민하던 걸 내가 설득해 함께 하게 된 케이스다. 이 친구도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중 어느 직군에도 완전히 맞지 않는 일종의 ‘튀는 블록’이었다.

▲ 엔지니어 역량이 다소 낮아도 툴을 통한 게임 제작은 비교적 쉬우며 노하우도 많이 공유된다.

윤영근 대표: 이렇듯, 창의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지만 현 산업에는 핏이 맞지 않는 인재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상들이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리스크를 케어해주고 수익은 함께 나누는게 현재 벌스워크의 사업 모델이다. 이전의 과도 성장기때는 게임 하나로 성공해서 단번에 부자가 되는 경우도 꽤 있지 않았나? 그 때의 로망도 다시 좀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교수님과 함께 게임 만든 그 학생은 지금 꽤 행복해하고 있겠다.

이득우 교수: 말해 뭐하겠나. 하루하루 도파민 과다 분비에 시달리는 것 같다. 입이 귀에 걸렸다.

Q. 마지막으로 벌스워크가 구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윤영근 대표: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는 모든 회사 구성원들이 이와 같이 행복해지는 거다. 모든 미디어 콘텐츠의 창작 주체는 기업에서 개인으로 향한다. 문예전을 통해 등단 후 ‘작가’라는 이름을 걸어야 글을 쓰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글은 누구나 자신의 상상력만 갖고 만들어내는 웹소설이 주를 이룬다. 영상콘텐츠 또한 대기업에서 중소 스튜디오를 거쳐 개인이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고,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상 콘텐츠 시장의 종류와 규모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게임이라고 다를까. 여전히 게임은 개인이 만들어내기엔 너무나 많은 장벽이 있는 협력 콘텐츠이지만, 툴의 발달과 산업의 변화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성과를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나아가 앞으로는 더 큰 가능성과 시장이 유저 제작 게임 산업에 생겨날 것이라 단단히 믿고 있다.

이미 해오고 있던 영상 콘텐츠도, 그리고 게임도. 계속해서 유저들의 입맛은 변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을 것이다. 이를 예측하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콘텐츠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콘텐츠 전문 기업. 그것이 우리가 구상하는 벌스워크의 미래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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