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엑자일콘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POE2였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부수적인 소식들은 함께 알려졌다. POE의 다음 시즌인 선조들의 심판, 그리고 POE 모바일에 대한 소식이었다.
이 중, ‘POE 모바일’은 뭔가 좀 석연치 않긴 했다. 크리스 윌슨 대표가 직접 등판한 키노트 현장에서도 온갖 소식, 하다 못해 스킬 노드 하나하나의 변경점까지 다뤄졌지만, POE 모바일에 대한 이야기는 “개발 중이다”라는 말로 끝이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친구를 마지못해 소개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기에 POE 모바일과 관련된 소식은 별 거 없이 넘어가나 했는데, 또 현장 한편에 POE 모바일을 체험할 수 있는 시연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엑자일콘에 방문한 관객의 수는 빈말로도 적다 할 수 없는 수였는데, 마치 주먹으로 두드린 어항마냥 그 자리만 텅 비어 있었다.
이쯤되니 내심 궁금할 정도였다. 엑자일콘에 방문한 게이머들은 대부분이 코어 게이머들인만큼 모바일에 별 관심이 없는 거야 이해되지만, 정말 이 정도로 없을 정도인가? 그렇게 시연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게임을 플레이했고, 머릿속으로 이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정리했다.
그런데 미처 생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POE 모바일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가 너무 없다. 스크린샷도 몇 개 없고, 그마저도 이번 시연 빌드에서 찍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현장에선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따로 자료를 마련할 수도 없었다. 그런고로, 오늘의 체험기는 이미지가 없이, 그냥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체험기가 될 것 같다.
POE2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POE 모바일의 기본 시스템은 POE가 아닌, POE2를 기반으로 한다. 일단 선택 가능한 클래스부터가 POE2에서 추가된 6종의 캐릭터들인데, 시연은 POE2와 마찬가지로 워리어, 소서리스, 헌트리스, 몽크가 가능했다.
클래스 외에도 POE 모바일은 대부분 2편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가는데, 가장 잘 보이는 특징이 ‘골드’와 ‘구르기’의 존재다. POE 모바일은 POE에 비하면 상당히 느린, POE2의 전투 템포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며, ‘액션 RPG’라는 장르 구분 내에서도 RPG보다는 액션에 더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켓이 아이템에 있지 않고, 별도의 스킬젬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는 것 또한 POE2와 유사한 부분. 게임 플레이 난이도는 상당한 편인데, POE2와 마찬가지로 일반 몬스터를 처치해서는 플라스크가 충전되지 않아 매 전투를 도전하는 느낌으로 진행하게 된다.
그 외 부분들은 대부분 기존의 POE와 비슷하다. POE를 플레이 해봤다면 적응이 어렵지 않은 수준. POE2도 내적으로 많은 변화가 가해지긴 했지만, 근간 자체는 POE와 비슷하기에 그 시스템을 따온 POE 모바일도 큰 폭에서 차이가 나진 않는다.
캠페인 없이 바로 파고들기, 튜토리얼 후 아틀라스로
재미있는 건 콘텐츠의 구조인데, POE 모바일은 UI 사용법을 익히고 게임 감을 잡는 튜토리얼이 끝나면 곧장 ‘아틀라스’로 넘어간다. POE에서는 캠페인부터 온갖 콘텐츠를 통해 성장을 거듭한 후 어느 정도 갖춰지면 아틀라스로 향하는게 정석이겠지만, 모바일은 곧장 파고드는 콘텐츠로 넘어가 버린다. 뭔가 중간의 큰 한 조각이 비어 버린 느낌이다.
다만, 그게 좋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곧바로 게임의 핵심 콘텐츠로 들어가는 느낌인데다, 아틀라스의 구조 상 플레이가 선형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뚜렷한 절단 지점이 존재하기에 컨트롤 피로가 존재하는 모바일 게임에서는 오히려 더 적합하게 다가온다. 캠페인이 존재하는데 시연 빌드에서는 적용이 안 된건지, 아니면 진짜 이런 디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바일 버전이기에 오히려 더 낫다고 느껴진 부분이다.
아이템 시스템은 기존 POE 시리즈와 완전히 똑같다.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아이템이 숱하게 떨어지고,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우수수 떨어지는데, POE도 너무 많은 아이템이 떨어져 따로 필터를 적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차라리 아이템의 변수를 줄이든지, 인벤토리를 좀 늘려 두면 나을 것 같은데 POE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갔다 보니 아이템을 줍고 감정하는 과정도 꽤 큰 일로 다가온다.
‘개발 중이다’라는 말로 소개를 끝낸 이유
설명만 하고 보면, POE 모바일은 POE2를 기반으로 삼아 POE의 콘텐츠 구조를 압축해 집어넣은,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으로 보인다. 실제로 게임 플레이 중 그렇게 나쁘진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POE만의 느낌을 잘 살린 것 또한 그럭저럭 좋게 다가왔다.
문제는, 이번 빌드까지만 두고 볼 때 POE 모바일은 POE를 두고 굳이 할 이유를 느낄 수 없는 게임이다. 핵앤슬래시 ARPG의 팬층처럼 원하는게 너무나 확고한 팬층을 상대로는 더 그렇다. 캐주얼보다는 코어에 가까운, 모바일보다는 데스크탑 환경에서의 게이밍을 원하는 이들에게 POE 모바일은 별다른 메리트를 주지 못한다.
POE의 느낌을 잘 살리긴 했지만 POE만큼의 깊이는 없으며, 오히려 PC버전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다 보니 모바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가 없다. 게임이 잘 되려면 뭐라도 하나쯤은 다른 게임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데, POE 모바일은 그게 없다. 무엇을 한다 해도, PC만큼은 못한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가 POE 모바일에 대해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고 아직 개발 중이라는 언급에서 끝낸 것도 모바일에서만 경험 가능한,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POE2라는 대형 이슈에 가려져 비교적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POE 모바일은 갈 길이 멀게만 보였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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