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키보드 덕후들이 많다. 옆자리 동료 기자만 해도 30만 원을 훌쩍 넘는 키보드를 쓰고 신상이 나왔다 하면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 틈을 보이면 그대로 영업을 당한다. 그렇게 팔랑귀 팀원들이 여럿 당했다. 물론 나 포함. 단순 수집에 목메는 사람이 아닌, 관리도 철저한 편인데 퇴근할 때는 항상 키보드 위에 먼지 방지 천을 덮고 가더라.
터부, 금기는 넘지 말라고 정해진 선이지만, 역설적으로 넘지 못할 선을 넘으면서 사람은 가장 큰 쾌락을 얻는다. 아담이 사과를 먹은 이유는 단지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금지되었기 때문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아무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 위험이 따른다는 걸 알면서도, 결과나 반응이 알쏭달쏭하니까. 프론티어 정신으로부터 무장된 “야 설마 죽겠냐?”나 “비켜봐 자식들아 내가 해보게”처럼 아예 대놓고 상황을 즐기는 극단적인 성향도 있고.
어쨌든 키보드 덕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키보드를 더럽히는 행위이다. 자동차 조수석에서 운전자와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쿠크다스, 웨하스 그리고 후렌치파이이듯, 키덕후에게 행복 버튼을 눌러주고 덕담을 받으려면 키보드 위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휘날리거나 음료수를 쏟으면 된다.
괴짜스럽지만, 꼭 해보고 싶다. 굳이 키덕후의 반응을 알아보는 가학적 요인보다는, 키보드에 온갖 액체로 덮어도 잘 살아 있을지가 궁금하다. 왜 유튜브에도 CPU 온도를 높이고 그 위에 계란을 익힌다던지, 뻥파워에 부하를 넣어 터뜨리는 영상도 즐비하지 않나.
어차피 내 키보드도 아닌데. 회사에 굴러다니는 키보드 하나 집어 해보면 되지.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아닌 놈큽(NOMKB) Not On My KeyBoard 되시겠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평소에 물 한 방울 안 튀게 조심하는 키보드, 대놓고 망칠 기회가 생겼는데 안 해볼 사람이 어디 있나.
맘 같아선 키보드 덕후 동료의 30만 원짜리로 몰래 하고 싶지만 그가 요절할지도 모르니 사무실에 있는 키보드를 굴려보기로 했다. 영상을 찍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키보드엔 방수 기능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다. 맘껏 굴려먹고 멀끔히 씻어 제자리에 갖다 놓을 계획이다.
일상의 흔한 실수라면 물이나 커피를 쏟는 정도쯤 되려나. 잠에서 확실히 깨기 위한 방법은 물이나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키보드에 쏟는 것이라 배웠다. 깊은 빡침은 그 어느 각성 효과를 아득히 넘는 수준이니. 하지만 우린 여기서 한 술 더 떴다. 고작 그걸로 키보드가 망가지겠어?
영상 시청 시 주의사항
식전, 혹은 식사 중이라면 뒤로가기를 권장드립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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