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역사 기반의 토탈워, 줄여서 ‘역탈워’가 나올 시기가 되긴 했다. 중간에 짧은 이야기를 담는 ‘토탈워 사가’시리즈 중 하나로 출시된 ‘토탈워 사가: 트로이’가 끼어 있긴 하지만, 정식 역탈워 기준으로는 가장 최근 작품이 2018년에 출시된 ‘토탈워: 삼국’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팬들의 관심은 ‘다음 작품의 배경이 언제냐?’에 몰렸다. 반만년의 기록역사를 자랑하는 인류이니만큼, 격동의 시기는 너무나 많고, 토탈워의 배경이 될 시기도 넘쳐난다. 그럼에도 세계 기준으로 굵직한 이벤트들은 거의 다 다뤄졌기 때문에, 언제가 배경이 될지는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5월 18일 마침내 ‘토탈워: 파라오’가 온라인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공개되었다.
히타이트와 이집트, 3,200년 전의 격동기를 담은 캠페인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건, ‘토탈워: 파라오’는 신화와 얽혀있지 않은, 정통 역사 기반의 토탈워 시리즈다. 오랜 시리즈의 역사에서 잠깐 옆길로 샜던 ‘트로이’처럼 신화적 유닛이나 신화의 재해석 같은 건 들어있지 않다.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도, ‘세트’나 ‘라’, ‘이시스’와 같은 이집트 신앙의 신들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토탈워: 파라오’의 주인공은 오로지 인간이며, 기원전 1,200년 경, ‘트로이’보다 백 년 정도 앞선 시기의 격동기를 다룬다.
개발진은 신화적 유닛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을 덧붙였는데, ‘토탈워 사가: 트로이’의 경우 고증의 기반이 된 사서가 호메로스가 지은 ‘오디세이’였다. 오디세이에는 신화적 표현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이 신화적 요소들을 재해석하는 형태로 진행했으나, 이집트 신왕국의 격동기는 충분한 객관적 사료가 존재했기에 개발진이 굳이 신화를 해석할 이유가 없었다.
등장하는 세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2천년이 넘는 고왕국 시대를 지나 19왕조의 ‘신왕국’시대로 접어든 이집트, 그리고 이 당시 이집트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철기 문명의 시작을 알린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 마지막으로 현 팔레스타인 지방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고 있던 ‘가나안 인(Canaanite)’들이다.
너무 오래 전의 역사이기에 웬만큼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대중적으로 알 만한 건 이 시기 가장 강력한 힘을 뽐냈던 이집트의 명군주 ‘람세스 2세’정도지만, 일단 이 시기 나일강 유역과 그 근방의 상황은 토탈워로 다뤄질 정도의 격동기였던 건 맞다.
공개된 군주는 총 8명. 이 시대의 상징적 군주인 람세스 2세의 손자이자 ‘메르넵타’ 파라오의 아들인 ‘세티’와 ‘아멘네세스’, 세티의 2번째 부인이면서 19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이자 여성 파라오였던 ‘투스레트’, 마지막으로 투스레트를 상대로 내전을 일으켜 승리한 대귀족 ‘세트나크테’의 아들이자 이집트 최후의 명군주로 꼽히는 ‘람세스 3세’가 군주로 등장하며, 히타이트는 ‘수필룰리우마’와 군사 지도자 ‘쿠룬타’가, 가나안 파벌에서는 이집트를 약탈하고 스스로를 이집트 왕조를 끝낼 인물이라 밑었던 이르수(Irsu)와 배후에서 이집트 권력의 중심을 노리는 ‘베이(Bay)’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모든 전투와 내정 활동은, 앞서 설명했듯 신화가 아닌 철저히 역사적 사실성에 의해 벌어진다. 권력계층의 내분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이집트를 전복하려는 가나안 파벌, 그리고 명백한 외세인 히타이트의 틈바구니에서 흘러가는 나일 강 유역의 격동기를 담은 작품이 ‘토탈워: 파라오’이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토탈워: 파라오’를 기획한 이유로 고왕국 시대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집권 이후 이집트가 멸망하기까지 이어진 수천년의 세월 중 이 시기가 가장 심한 내외 갈등을 겪었던 시기이며, 동시에 청동기 문화가 절정에 이른 문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조금 다른 이유도 하나 있는데, 이 시기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람세스 2세 정도는 알지만, 이 시기 이집트가 어떤 현실에 처해 있었는지는 이집트 인들이나 사학자를 제외하면 거의 모른다. 그 점이 개발진에겐 도리어 매력적인 부분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의외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CA는 이집트 전문가와 고대사학자 등을 영입해 검증 작업을 거치기도 했지만, 이 시대 자체가 워낙 격동의 시기이다 보니 히타이트와 이집트 관련 유물과 기록이 충분했고 이 시절 문명의 기초였던 청동은 철기에 비해 잘 녹이 슬지 않기에 사료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토탈워: 파라오’의 월드 맵은 오늘날의 터키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반도부터 남부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중동 일부를 담는다. 크기는 개발사의 말에 따르면 ‘워해머 토탈워3’의 ‘불멸의 제국’을 제외하면 가장 크지만, 정착지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펼쳐지는 전투가 주된 매력인 만큼, 정착지 기반의 전투보다 야전의 비중을 늘리고자 한 의도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바탕으로, ‘토탈워: 파라오’는 다채롭게 꾸려진 캠페인을 플레이할 수 있다. 캠페인 자체에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옵션이 굉장히 많으며, 어떤 성향의 파라오가 되어 왕국을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선택지가 종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다양하다.
달라진 세계 구현과 더 각별해진 디테일
‘토탈워: 파라오’는 역탈워 시리즈의 차기 작품인 만큼,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기능들이 다수 들어가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플레이어 진영의 흥망에 따라 달라지는 비주얼 무드다.
‘토탈워: 파라오’에서는 문명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냐에 따라 화면의 톤과 감마가 조금씩 바뀌며 게임의 분위기 전체가 달라진다. 가령 중심 도시가 타격을 받거나, 치안이 나빠져 무질서 상태가 이어지는 등 악재가 다가올 때면 해당 지역의 전체적 색채와 전투 시 조명이 어두워지며, 반대로 문명이 꽃을 피우는 시기에는 찬란한 톤의 비주얼이 이어진다. 화면 만으로도 게임의 상황이 어떻게 풀리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투’에 이르러서도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변경의 방향은 기존에 존재했던 개념들이 보다 현실적 방향으로 디테일을 갖추게 된 쪽인데, 단적인 예로 높은 장갑을 지닌 병종도 오래 공격을 당하다 보면 갑옷이 깨져버린다. 철에 비해 무른 청동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고장갑 유닛들이 전에 없던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만큼 이전처럼 그냥 전선에 던져 두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감각하게 활용하긴 어려워졌다.
한 가지 더 극적으로 변한 부분은 역동적인 날씨, 그리고 이와 연동되는 지형의 변화다. 이 날씨와 지형 효과는 매우 복잡하게 전투에 작용하는데, 먼저 지형에 따른 전투력의 변경은 이전 시리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가에서 이동 속도가 줄어든다거나, 숲에서는 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등 지형과 병종에 따라 보너스와 패널티를 받는 식이다.
이번 작품 또한 지형에 따른 전투력 변화가 존재한다. 진흙은 중량급 유닛들의 전투 효율과 속도를 줄이고, 높은 풀들이 늘어선 초원은 병사들이 숨을 수 있으며, 습지는 소형 유닛들의 전투력을 저해한다. 숲은 대형 유닛들의 전투 효율이 떨어지는 한편, 원거리 공격이 일정 확률로 막히는 보너스를 제공한다.
재미있는건, 이 지형이 전투 상황, 그리고 날씨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바뀐다.
맑은 날이 이어질 때는 습지와 진흙이 말라서 일반적인 땅이 되지만, 불화살에 숲과 초원이 빠르게 타버린다. 맑은 날이 너무 길게 이어질 경우 병사들이 더위를 먹게 되며 이는 지속적인 전투력 손실로 이어진다. 반대로 비가 내리면 멀쩡한 땅이 습지가 되고, 진흙이 되지만 불이 번지지 않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 폭풍이 불 때는 원거리 유닛의 효율이 극히 하락하고, 천둥벼락이 치면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씩 깎여나가며, 모래폭풍이 불 때는 지속적인 피해를 받고, 안개가 끼면 서로를 찾아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자연 현상의 변화는, 전투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굉장한 전술적 무기가 될 수 있다. 바람의 방향을 보고 화공을 가한다거나, 날씨 변화에 따라 유닛을 쉬게 하거나 적극적으로 전투에 기용할 수도 있고, 적을 진창으로 유도하거나 시간을 끌면서 적의 탈진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더해진 디테일은 분명 어려운 게임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지만, CA가 어느 정도 의도한 바도 있다. 기존의 작품들 모두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과거의 일을 다루는 게임들이지만 이번 작품은 오래 전도 너무 오래 전을 다루기 때문에 기존 작품들에 비해 병종의 수가 무척 제한적이다.
단적인 예로, ‘토탈워: 파라오’에는 투사형 공성 병기(투석기나 노포 등)가 존재하지 않으며, 등자가 개발되기 전이기에 기병도 없다. 기존 기병의 역할은 ‘전차’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병종을 통한 전술적 다양함을 동원하기 어려워 고대 전장의 핵심인 포지셔닝, 즉 지형과 환경을 잘 이용해야 하는 쪽으로 전투 방향이 틀어진 셈이다.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는 병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몇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토탈워 시리즈에서 병종에 따라 진형을 구성하는 건 전작인 ‘토탈워: 삼국’에서 절정을 이뤘지만, 전투 중의 기동과 관련된 건 꽤 선택지가 적었는데, 이번 작품은 주 전선을 구성하는 보병들의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명령이 생겼다.
추가된 태세는 두 가지로, 조금씩 적을 밀어붙이며 방어선을 올리는 ‘어드밴스’, 그리고 조금씩 방어선을 물리며 적을 끌어들이는 ‘기브 그라운드’가 추가되었다. 일부 유닛은 어드밴스나 기브 그라운드 상황에서 전투력에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덕분에 밑그림만 잘 그린다면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적을 아군의 사선으로 끌어들여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거나, 적을 불이 잘 붙는 갈대숲으로 밀어넣어 강제로 화공을 가할 수도 있다.
전투에서 한가지 더 변한 점을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을 말할 수 있다. 실질적인 게임의 시스템 변화보다는 비주얼 변경점에 가까운데, 이전 작품들에선 일부 영웅이나 군주 유닛들이 보유하고 있던 액션 애니메이션이 이번 작품부터는 일반 병종에도 다수 적용되어 보다 역동적인 전투를 살펴볼 수 있다.
‘토탈워: 파라오’는 올해 10월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캠페인과 게임 시스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앞으로 더 많은 정보들을 공개해나갈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게임에 대한 전반적 소개와 두 개의 미리 준비된 전투 체험이 가능했으나, 게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출시까지 남은 기간 동안 진행될 더 많은 정보 공개에서, 아마 ‘토탈워: 파라오’가 가진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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