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국내 시간) Xbox 게임패스 및 스팀으로 출시된 ‘하이 온 라이프’는 말하는 총 종족 ‘개틀리언’과 함께 지구를 구하기 위해 힘쓰는 고졸 백수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의 제작자인 저스틴 로일랜드가 설립한 게임회사, ‘스콴치 게임즈’가 개발한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상당한 관심을 받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게임이 언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게이머들이 대다수일 정도로 그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유머 감각에, 심지어 한국어조차 지원하지 않는 점이 흥행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릭 앤 모티’의 독특한 세계관과 뒤틀린 유머를 통해 국내에서도 저스틴 로일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맞지만, 게임은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호흡, 상호작용을 가진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하이 온 라이프’는 그가 ‘스콴치 게임즈’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는지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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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앤 모티’ 아는 사람, 손!
‘하이 온 라이프’라는 게임을 보다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개발사인 스콴치 게임즈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는 카툰 ‘릭 앤 모티’와 훌루(Hulu)를 통해 방영중인 ‘솔라 오포짓’의 공동 제작자, ‘저스틴 로일랜드’에 대해서도 말이죠.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성우로, 다채로운 재능을 뽐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저스틴 로일랜드는 ‘릭 앤 모티’의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 명의 주인공인 릭과 모티의 성우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스콴치 게임즈는 그가 자신의 넘치는 상상력을 게임에 담기 위해 설립한 스튜디오로, 2016년 설립되어 주로 VR 게임을 개발해 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릭 앤 모티’의 첫 번째 에피소드라도 본 적이 있는 게이머라면, 대충 ‘하이 온 라이프’도 얼마나 “정신이 나간”게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용 유머와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 쉴틈없이 빠르게 떠드는 등장인물들의 대사까지, ‘하이 온 라이프’와 ‘릭 앤 모티’는 꽤나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스토리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이 온 라이프’의 주인공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백수로, 말하는 총 ‘케니’의 도움으로 외계인의 지구 침공 속에서 살아남게 됩니다. 졸지에 지구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주인공은 말하는 총 종족 ‘개틀리언’과 함께 지구를 침공한 외계 범죄 집단 ‘G3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죠.
어찌보면 상당히 흔한 전개에서, 개발사 특유의 저질스러운 농담과 말장난, 그리고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합니다. 케니를 비롯한 말하는 총 종족, ‘개틀리언’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쉬지 않고 떠들어대기 일쑤이며, 여러 장소를 탐험하며 만나는 외계인들도 저마다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또 가끔은 비디오게임의 클리셰같은 요소들(어린 아이 npc를 쏠 수 없다 등)을 비꼬는 듯한 연출 등도 곳곳에서 볼 수 있기에 유머 취향이 비슷하다면 한 없이 웃으며 플레이가 가능할 것입니다.
‘의외로’ 짜임새 있는 메커니즘이 이끄는 핵심 게임플레이
하지만, 게임은 에피소드 하나에 15분 짜리 애니메이션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특유의 질 나쁜 유머가 취향에 맞아도 몇 시간이고 계속 듣는다면 질리게 마련입니다. 말장난 하나로는 게임 후반까지 플레이어를 붙잡아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입니다. ‘하이 온 라이프’는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무장하면서도, 의외로 짜임새 있는 건플레이를 통해 1인칭 슈터로서도 꽤나 재미 있는 경험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각각의 월드를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여러 장비에 따라 탐험의 폭을 넓히는 ‘메트로배니아’식 구성을 채택했습니다. 거기에 격파할 보스의 순서를 선택할 권리를 어느 정도 플레이어에게 전달함으로써, 마치 ‘록맨’을 플레이하듯 우선 격파한 보스로부터 다른 종류의 총기를 얻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쉴 틈 없이 떠드는, 개성 넘치는 총기들은 저마다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전투 뿐 아니라 탐험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무기를 교체하며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게임이 여느 FPS와 다르게 전투가 어려운 편에 속하지는 않아 손에 맞는 무기로 풀어나가면 되지만, 탐험에 있어서는 무기마다 역할이 고정되어 있어 적재적소에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있죠.
예를 들면, ‘릭 앤 모티’와 마찬가지로 저스틴 로일랜드가 성우를 맡은 기본 총 ‘케니’는 특수 기술을 통해 슬라임 덩어리를 발사할 수 있습니다. 이 덩어리는 전투 상황에서 다수의 적을 공중에 띄우는 역할도 하지만, 탐험 시에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는 역할도 겸하는 식이죠. 이처럼 총기를 획득할 때마다 탐험할 수 있는 월드의 넓이와, 깊이가 증가하는 구조를 통해, 플레이어가 우주 현상금 사냥꾼 역할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맵 곳곳을 탐험하는 것에 대한 보상 체계도 나름 의미를 갖습니다. 게임 속에는 칼 모양 외계인 ‘나이피(Knifey)를 통해서만 열 수 있는 기괴한 상자들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수집 요소는 물론, 무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당포에서 물건을 살 때 필요한 돈을 얻는 것도 가능하고요.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한 G3 카르텔 간부들을 처치하러 가는 과정은 체감상 그렇게 길지도, 또 너무 짧지도 않은 수준에서 레벨이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꼼꼼히 상자들을 찾아 움직였다면 클리어 시간은 늘어나겠지만, 굳이 부수적인 탐험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지루함을 느낄 정도의 길이는 아닌 수준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모든 게임플레이 과정에서 여러 캐릭터들이 (지나가다 만나는 npc, 적, 무전, 심지어 총까지) 쉬지도 않고 떠들어대기 때문에, 시간이 더 금방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다만, 이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 게이머라면 말 그대로 귀에서 피가 나는 듯한 고통을 느낄 수 있어 추천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리하자면, ‘하이 온 라이프’는 게임 진행에 따라 점점 발전하는 주인공의 장비를 통해 점진적으로 탐험 지역을 넓혀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장비 업그레이드와 수집 요소 등의 보상으로 탐험에 대한 목표를 부여합니다. 레일슈터/플랫포머 측면의 레벨디자인에서도 적당한 난도와 길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정신 없고, 조금은 저속한(?) 유머 위에 세워진 꽤 그럴싸해 보이는 게임플레이는 ‘하이 온 라이프’를 중간에 놓지 않고 끝까지 즐기는 데 아주 큰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머, 언어 등 총체적 장벽으로 빛바랜 게임패스의 접근성
위에서 살펴본대로 ‘하이 온 라이프’는 안그래도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게임인데,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탓에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즐기기 힘든 타이틀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출시 당일부터 Xbox 게임패스를 통해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접근성이 언어 지원의 문제로 상당 부분 퇴색된 셈입니다.
그저 길을 찾고, 적을 쏘고, 보스를 죽이면 되는 기본적인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은 말이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의 대부분이 색채 짙은 말장난과 유머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릭 앤 모티’처럼 거의 모든 대사가 빠르게 휙휙 지나가기에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듣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영어가 들린다고 하더라도 특유의 뒤틀린 유머코드와 맞지 않는다면 큰 재미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로, 언어에 큰 문제가 없고, ‘릭 앤 모티’ 등 저스틴 로일랜드의 이전 작품들을 통해 매력을 느껴본 적이 있는 게이머라면 ‘하이 온 라이프’는 무료한 주말을 보내기 위한 게임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질 나쁜 유머가 전부 웃긴 것은 아니지만, Xbox 게임 패스 구독자라면 무료로 할 수 있는 게임을 굳이 피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게임은 정식 출시를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지역에서 Xbox 게임패스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많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레인보우식스: 시즈’, ‘포트나이트’ 등에서 콜라보를 진행할 정도로 ‘릭 앤 모티’의 인기가 높은데다, 저스틴 로일랜드가 참여한 게임이라는 점이 높은 관심으로 이어진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저 말하는 총과 개발사의 장기인 유머감각으로만 차별화를 꾀하려고 했다면, ‘하이 온 라이프’는 이미 경쟁작들로 가득한 FPS 시장에서 출시와 함께 빠르게 잊혀지는 타이틀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스콴치게임스는 놀랍게도 게임 분량의 90%에 육박하는 기이한 유머와 말장난을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10%의 게임플레이 위에 얹어두었습니다. 절대 안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저찌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를 지탱해내고 있는 모습조차도 이들이 고안해 낸 고도의 유머는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자세히 파고들면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중후반부까지 등장하는 적들의 종류가 너무 반복적이라는 것도, 전투가 전반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는 점도, 등장인물의 전반적인 움직임 등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점도 그렇죠.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게임이 제공하는 농담을 즐길 것인지 저울질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확실히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고, 기존 FPS 장르 팬층에게는 어필할만한 요소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뒤틀린 유머감각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직 ‘릭 앤 모티’를 보지 않았다면, 정주행도 하시고요.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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