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RPG인 파이널 판타지(FF)와 드래곤 퀘스트(DQ). 이 둘은 오랜 기간을 서로 라이벌로서 일반 게임 시장에서 중요한 축을 맡아왔습니다. 그 둘의 개발사인 스퀘어와 에닉스의 경쟁 관계 역시 팬과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졌습니다.
그런 둘이 깜짝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때는 2002년. 그리고 2003년 둘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회사가 됐죠.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데 어느덧 시간은 2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개발사 스퀘어, 에닉스보다는 스퀘어에닉스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졌을 정도로 말이죠.
1980년대부터 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게임사의 합병. RPG 중심으로 핵심 개발사로 이름을 올린 두 회사는 때로는 비슷한 형태를 보여왔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과정도, 성장 방향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회사의 성장은 일본 게임사를 돌아보는 데에도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고요.
드래곤 퀘스트, 사회현상으로 번진 국민 RPG
먼저 두각을 드러낸 건 가히 국민 RPG라고 칭송받은 DQ의 에닉스 쪽이었습니다. 1986년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는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로 유명한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캐릭터 디자인으로 먼저 주목받았는데요. 일본에 열풍처럼 몰려와 서구권보다 더 큰 인기를 끈 위저드리, 서양 RPG에 빠질 수 없는 울티마에서 영향을 받아 새롭게 구현된 작품은 일본 내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준이었죠.
위저드리는 1인칭 던전 RPG 개념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한 프랜차이즈지만, 표현 기술이 다양해진 오늘날 명성은 예전만 못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인기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해 많은 게임에 영향을 줬고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받은 일본 게임이 꾸준히 출시될 정도죠.
어쨌든 ‘드래곤 퀘스트’는 기존 인기작의 요소에 패밀리 컴퓨터라는 가정용 게임기로서는 거의 전무한, 깊이 있는 RPG 요소를 선보였습니다. 판매고는 150만 장에 이르렀죠. 일본 설화인 모모타로를 기반으로 한 RPG 시리즈 모모타로의 전설, 오늘날까지 아틀러스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여신전생 등도 ‘드래곤 퀘스트’의 인기로 시작된 타이틀이었고요.
그리고 1987년, 1988년 연달아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2 악령의 신들’, ‘드래곤 퀘스트3 전설의 시작’은 로토 시리즈로 이어진 3부작 전개에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되려 점점 더 큰 인기를 얻어갔습니다. 2편은 240만 장, 3편은 380만 장 이상을 팔았습니다.
특히 3편의 전개는 당시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참신한 발상과 기존 시리즈와의 연계성으로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보스와의 대전 이후 전개되는 왕도적인 엔딩 이후 갑작스레 등장하는 또 다른 세계와 최종 보스. 또 그 세계가 전작들과 이어지는 방식은 게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된 당시에는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구성이었으니까요.
가뜩이나 기대가 컸는데 입소문까지 타며 학교, 직장을 빠지고 게임 소프트를 사기 위해 게임 매장에 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구한 ‘드래곤 퀘스트3’ 카트리지를 힘 좀 쓰는 불량 학생들이 갈취하는 드래곤 퀘스트 사냥이 사회현상으로 보도될 정도였고요.
에닉스가 닌텐도와 제휴한 후 본격적으로 닌텐도 패미컴 시장에 뛰어든 게 1985년. 단 1년 만에 플랫폼 내 손꼽을 작품을 남겼고, 그 2년 뒤에는 총 세 편의 로토 시리즈 DQ를 통해 시장 최고의 프랜차이즈를 안착시킨 셈입니다.
마지막 희망, 도산 직전 스퀘어를 되살리다
위저드리, 울티마 등 인기 타이틀의 적절한 조화와 게임적 디자인을 패미컴에 녹여 일찌감치 사랑받은 에닉스와 달리 스퀘어는 다수의 타이틀을 꾸준히 선보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슈퍼 패미콤 시절로 넘어가면 줄줄이 출시되는 명작을 다 꼽기도 버거울 정도지만, 초창기만 해도 계속된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었죠.
PC-8800 시리즈에서 패미컴쪽에 뛰어든 건 에닉스와 비슷한 1986년이었지만, 여러 방향으로 시도한 타이틀들이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는 남코, 에닉스, 코나미, 캡콤, 그리고 이제는 잊혀가는 허드슨까지 대개 핵심 인기 타이틀을 이때쯤 하나씩은 선보였지만, 스퀘어만큼은 그러지 못했죠. 일찌감치 그래픽, 시나리오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작품을 선보였지만, 기술력이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는 현지 분석도 많았습니다.
꾸준히 다작을 이어갔지만, 히트한 타이틀이 없으니 회사 사정도 나빠졌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는 도산 직전까지 몰린 스퀘어의 마지막 한 방이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는 FF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디렉터로 개발을 주도했고 사가 시리즈로 더 유명해지는 카와즈 아키토시와 그를 도왔습니다. 훗날 성검전설을 탄생시킨 이시이 코이치역시 비정규직으로 막 스퀘어에 입사해 플래너로 게임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파이널 판타지’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판매량은 약 50만 장. 오늘날 파이널 판타지의 명성에 비하면 부족해 보일 수 있겠지만, 휘청거리던 스퀘어의 기둥을 다잡기엔 충분한 성공이었죠. DQ와 마찬가지로 2편은 70만 장, 3편은 100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성장하는 시리즈로 스퀘어의 간판 타이틀이 됩니다.
마지막 환상이 될 뻔했던 ‘파이널 판타지’의 성공은 드래곤 퀘스트 성공과는 꽤 다른 방향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시장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성공 이후 액션 플랫포머가 우후죽순 쏟아졌던 것처럼 ‘드래곤 퀘스트’ 이후 그 영향을 받은 타이틀이 주를 이뤘습니다. 앞서 언급한 독창성을 가지고 성공한 타이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게임도 많았죠.
‘파이널 판타지’는 그간 빛을 보지 못한 스퀘어의 노력. 즉, 그래픽과 시나리오에 대한 투자가 빛을 본 타이틀로 꼽힙니다. 주인공과 플레이어를 동일시하지 않는 영화적 연출은 소규모로 분산되어 있던 팀에서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지만, ‘파이널 판타지’에 온전히 힘을 쏟았을 때 비로소 만들어 낼 수 있었죠.
그래서 ‘파이널 판타지’는 당대 일본에서도 ‘드래곤 퀘스트’의 아류 중 하나로 혹평받기도 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주는 게임 디자인의 개성이 더 주목받았습니다.
슈퍼 패미컴과 JRPG 흥성기
FF의 성공은 스퀘어가 타이틀 개발에 다시 뛰어들 수 있는 자금과 자신감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타이틀 전개는 FF의 이름을 걸고 나갔죠.
반숙 영웅이 중간에 출시되기는 했지만, 스퀘어는 FF 본가 시리즈보다 먼저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사가 시리즈의 시초, ‘마계탑사 사가’를 북미 시장에 발매 당시 ‘파이널 판타지 레전드’라는 외전 형태의 이름을 달고 출시했습니다. 독보적인 프랜차이즈가 되는 성검전설의 첫 작품 역시 ‘파이널 판타지 외전’이라는 부제를 달았죠.
이들 작품은 파이널 판타지와의 직접적인 연계를 두고 개발된 타이틀은 아니지만, FF 팬들의 관심이 쏠리자 그 이름을 더하게 됐습니다. ‘성검전설 파이널 판타지 외전’의 경우에는 개발 도중 FF 시리즈의 마법이나 비공정 개념 등이 실제 게임에 추가되기도 했죠.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통한 성공을 맛본 스퀘어는 닌텐도의 차세대 콘솔 슈퍼 패미컴 시대에 더욱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습니다.
슈퍼 패미컴은 경쟁 콘솔과 비교해 처리 능력은 뒤처진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슈퍼 패미컴의 낮은 처리능력을 비판하는 광고가 대대적으로 실릴 수준이었죠. 하지만 능력을 충분히 활용한 훌륭한 그래픽 구현, 색 표현, 개발 노하우가 필요하긴 했지만 잘 다루면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훌륭한 사운드 구현력 등에 슈퍼 패미컴은 시장 우위 콘솔로 자리매김합니다.
스퀘어, 에닉스 모두 FF와 DQ 4, 5, 6 각각 세 작품을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차례로 슈퍼패미컴을 통해 선보였습니다. 넉넉해진 카트리지 용량에 향상된 그래픽, 음원, 볼륨으로 두 시리즈는 또 한 번의 큰 진화를 해냅니다. 카트리지에 특별한 칩셋을 가격은 1만 엔을 넘었지만 ‘파이널 판타지6’, ‘드래곤 퀘스트6 몽환의 대지’는 각각 일본에서만 250만 장, 320만 장이 팔리며 성공 신화를 이어갔습니다.
FF의 성공이 이어지면서 스퀘어는 보다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게 됩니다. 특히 슈퍼 패미컴이 그래픽 연출력과 사운드의 장점은 좋지만, 처리 능력 자체가 낮은 점도 자신들의 장기를 살리기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아케이드에서 인기 있는 액션, 대전 게임 등은 처리 능력 탓에 제대로 된 이식이 어려웠지만, 처리 능력보다는 훌륭한 그래픽 자체가 중요한 RPG는 호황을 맞았죠.
스퀘어는 슈퍼 패미컴으로 로맨싱 사가, 성검 전설, 반숙 영웅, 알카에스트, 라이브 어 라이브, 프론트 미션, 크로노 트리거, 바하무트 라군, 루드라의 비보, 트레저 헌터G, 슈퍼 마리오 RPG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RPG를 다수 제작했습니다. 사가 시리즈와 성검 전설은 슈퍼 패미컴 시절 전성기를 맞았죠.
특히 미야모토 마사후미를 이어 1991년 스퀘어의 키를 잡은 2대 대표인 미즈노 테츠오는 슈퍼 패미콤 시절 출시된 명작들을 프로듀서로서 총지휘하며 스퀘어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에닉스 역시 소울 블레이더, 가이아 환상기, 마법진 구루구루, 미스틱 아크 같은 RPG에 천지창조처럼 준수한 평을 받을 게임들을 출시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는 스타오션 역시 슈퍼 패미콤 시절 처음 선보인 작품이죠.
이후 32비트 시대에 접어들며 닌텐도, 세가 중심의 게임기 시장에 소니가 뛰어들었습니다. 공고했던 닌텐도와 스퀘어와의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연이은 FF의 성공은 되려 스퀘어에게 잘못된 선택을 부추기는 상황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닌텐도 대신 소니, PS 독점 출시 ‘파이널 판타지7’
닌텐도와 세가가 주도하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든 소니는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출발이 뻔해 보였죠. 하지만 스퀘어의 소니 합류라는 대형 뉴스가 터지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스퀘어가 닌텐도를 떠나 소니 독점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는 여러 논란과 뒷이야기들이 야사처럼 번져왔습니다. 훗날 당대 핵심 인력들이 그 사정을 순한 맛으로 풀어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기억과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고 분명한 건 한동안 스퀘어와 닌텐도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져 왔다는 것이죠.
FF 시리즈 신작인 ‘파이널 판타지7’ 개발에 있어 닌텐도64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부분이 많았습니다. 영화 같은 시나리오와 그것을 표현하는 그래픽 연출. 대용량의 광학 디스크 CD를 매체로 선택한 플레이스테이션은 스퀘어의 개발 방향에 적합한 기기였죠. 여기에 CD는 카트리지보다 제조 비용도 낮았고 소니에 낼 로열티 역시 적었습니다. 그래서 1만 엔이 넘었던 ‘파이널 판타지6’과 달리 ‘파이널 판타지7’은 6,8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할 수 있었습니다.
소니와 손잡고 1997년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7’은 전에 없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일본에서만 400만 장이 팔렸습니다. 글로벌 흥행은 더 커 1천만 장 이상이 팔리며 FF를 본격적으로 해외 팬들에게 알린 타이틀이 됐죠.
‘파이널 판타지7’의 성공은 업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임 매체는 카트리지 대신 CD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3D 아트 게임이 본격적으로 개발됐습니다. 오늘날처럼 게임을 구하기도,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았던 만큼 소니의 킬러 타이틀로서 기기 판매를 견인했고 닌텐도-세가 중심의 시장을 무너트리는 핵심 타이틀이 됐죠. 게임 전문점 대신 편의점에서 예약하고 판매하는 식의 유통으로 기존 게임 유통 방식에도 다양화를 일으켰습니다.
닌텐도와의 관계는 다시는 닌텐도 기기로 게임을 내지 못할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전에 없던 흥행에 감당 못할 수익을 보기도 했습니다.
에닉스 역시 ‘드래곤 퀘스트7: 에덴의 전사들’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됐습니다. 해외에서는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7’에 밀리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400만 장 이상이 팔리며 FF 이상의 흥행 기록을 냈습니다. 디스크 2장의 방대한 이야기 역시 전에 없을 호평을 받았고요.
에닉스가 스퀘어와 다른 점이라면 DQ 신작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함에도 닌텐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최다 보급 게임기로의 출시라는 DQ 개발 방침이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이유로도 꼽히는데요. 에닉스는 닌텐도와의 관계를 위해 계속 닌텐도 쪽 게임을 출시했고 여러 DQ 리메이크, 외전 등을 닌텐도 기기로 출시했습니다. 1999년 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될 예정이던 ‘드래곤 퀘스트7: 에덴의 전사들’ 역시 닌텐도 주력 타이틀 출시를 배려해 반년 넘게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믿을 건 파이널 판타지 뿐? FF 시프트와 떠나는 스퀘어맨
‘파이널 판타지7’의 성공은 스퀘어가 RPG를 넘어 보다 다양한 타이틀에 도전하는 배경이 됐습니다. 물론 대작 RPG의 성과가 좋았는데 사가 시리즈의 플레이스테이션 첫 작품인 ‘사가 프론티어’. 이제는 닌텐도의 대표 프랜차이즈가 된 제노 시리즈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제노기어스’, 시대를 넘은 명작 ‘크로노 트리거’의 후속작인 ‘크로노 크로스’가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립니다. 기존과는 다른 분위기의 ‘패러사이트 이브’나 ‘성검 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 역시 밀리언 셀러 타이틀이 됐고요.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7’의 거대한 성과와 비교하면 그다지 와 닿는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370만 장, 글로벌 860만 장을 판매한 ‘파이널 판타지8’의 흥행은 개발 역량을 FF에 집중시키는 속도만 높였습니다.
회사 내에서 FF가 아니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시기 1년에 10개 이상의 타이틀을 기본으로 내며 다작을 이어가던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9’ 이후로는 파판, 킹덤하츠 정도를 제외하면 출시된 프랜차이즈가 손에 겨우 꼽을 수준이었죠.
사내에서는 FF를 중심으로 개발 사업부의 통폐합이 이루어지는 FF 시프트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일었습니다. 일찌감치 스기우라 히로히데와 ‘제노기어스’를 만든 다카하시 테츠야, 혼네 야스유키가 스퀘어 퇴사 후 모노리스소프트를 설립해 ‘제노기어스’의 정신적 후계작, 제노사가를 개발합니다. 모노리스소프트는 이후 닌텐도에 합류해 제노블레이드 시리즈를 개발했죠.
또한, 성검 전설 주력 개발진은 브라우니 브라운을 설립. 이후 ‘마더3’, ‘슈퍼마리오 3D 월드’, ‘젤다의 전설 트라이포스 삼총사’ 개발에 참여하고 1-업 스튜디오로 개발을 이어오고 있죠. 먼저 퇴사한 전 스퀘어 대표 미즈노 테츠오, 슈퍼 마리오 RPG의 후지오카 치히로가 합류한 후 게임 회사로 재탄생한 알파드림은 여러 마리오 RPG 타이틀을 개발하게 됩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스퀘어와 닌텐도의 사이가 가장 나쁜 시기, 스퀘어 퇴사자들이 닌텐도와 손을 잡고 개발 역량을 펼친 셈이 되었죠. 특히 모노리스 소프트는 스플래툰, 동물의 숲,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와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등 닌텐도 핵심 타이틀을 개발을 지원하며 닌텐도에서 가장 중요한 개발 스튜디오가 됐습니다.
타이틀 개발 연기가 있긴 했지만, 개발 역량을 FF 한데로 모았던 만큼 ‘파이널 판타지8’부터 ‘파이널 판타지11’까지 4개의 타이틀은 1999년을 시작으로 매해 출시됐습니다. 개발 비용, 필요 인력이 기존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진 걸 생각하면 세계적 대작의 굉장히 이례적인 발매 속도였죠.
대신 파이널 판타지의 성과에 스퀘어의 모든 것이 걸려있게 됩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시도한 영화 ‘파이널 판타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영화, 파이널 판타지
파이널 판타지7, 8을 통해 선보인 수준 높은 CG 연출은 스퀘어가 일찌감치 해당 분야에 더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비디오 게임의 미래로까지 꼽힌 FF의 연출력은 스퀘어가 CG 영화에 도전하도록 부추겼죠.
1999년 스퀘어는 자사의 CG, 사운드, 그리고 전문적인 품질 관리 관리를 맡을 스퀘어 비주얼웍스, 스퀘어 사운드, 스쿠아츠 등에 나눠 맡겼습니다. ‘파이널 판타지7’과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 2 : 잃어버린 세계’의 그래픽 표현력을 보고 충격을 받은 FF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일찌감치 할리우드 스탭과 손을 맞잡았죠.
제작비는 1억 3,700만 달러. 당대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블록버스터를 훨씬 웃도는 제작비가 스퀘어에닉스 영화 개발을 위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2001년 개봉한 풀 CG 영화 ‘파이널 판타지’는 먼저 개봉한 미국, 그리고 지연 개봉이 이루어진 일본에서 모두 혹평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흥행 기록은 8,510만 달러였으니 마케팅비 등 추가적인 비용을 따지면 턱없이 부족한 수익이었죠.
영화 개봉에 앞서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9’ 역시 시리즈 원점으로의 회귀를 선언하며 야심 차게 출시됐지만, 글로벌 550만 장 판매에 그칩니다. 훌륭한 판매 기록이지만, 이전 작품의 성공, FF에 집중한 사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부족한 성과였습니다.
FF 시리즈를 이끈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9편의 발매 연기를 이유로 2001년 사임, 2000년 대표가 된 스즈키 히사시 역시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사임합니다.
2001년 적자가 찍힌 성과를 받아든 스퀘어는 소니로부터 지원을 받아 겨우 회생할 수 있었습니다. 소니와 함께 닌텐도에도 구제를 위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 사업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닌텐도와의 협상은 결렬됐고요.
그리고 2002년 11월, 스퀘어와 에닉스는 합병을 공식 발표합니다. 주식 교환비율만 봐도 에닉스 쪽이 더 높은 가치를 받았고 에닉스가 스퀘어를 합병하는 형태였죠. 그렇게 2003년 4월 FF와 DQ, 일본 국민 RPG 개발사 둘이 스퀘어에닉스로 합병하게 됩니다.
영화가 정말 잘못이었나
일견 스퀘어와 에닉스의 합병은 비슷한 RPG 개발사의 합병으로 서로 충분한 시너지를 내기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사의 분위기, 개발 방향 등을 조금 더 꼼꼼하게 살펴보면 합병 이전의 성장 과정이 대작 RPG 하나 외에는 꽤 다르다는 것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영화 ‘파이널 판타지’는 스퀘어 쇠락의 시초로 보이지만, 사실 스퀘어가 내외로는 썩 좋지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는 것 역시 여러 상황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RPG 중심으로 성장해온 스퀘어는 1990년대 중반, 이러한 RPG 집중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에 스포츠, 격투 게임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던 시기 매년 10~15개 타이틀을 쏟아내며 이를 시도했죠.
하지만 이때의 스퀘어 작품은 훌륭한 작품과 괴작을 오가는, 편차 큰 퀄리티를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장르 도전이 매출 다각화에 도움을 줄 시도였겠지만, 정작 새 장르에 노하우가 없던 개발자들이 만드는 작품 모두의 만듦새가 좋을 수 없었죠.
여기에 당시 새로운 개발자를 뽑기보다는 유명한 타이틀을 개발한 개발자를 스카우트해 게임을 만드는 분위기도 팽배했습니다. FF로 이름을 알린 스퀘어의 개발자는 스카우트할 만한 좋은 타깃이었고요. 스퀘어의 인력 유출은 완벽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다고 계속 RPG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FF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비슷한 RPG가 주목받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당장 슈퍼 패미컴 시절 출시된 많은 RPG를 훌륭한 명작으로 회자하지만, 당대 판매량은 그런 명성에 걸맞지 못했습니다.
스퀘어도 잘하는 RPG, 그것도 FF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CG 능력을 살려 영화화에 도전하는 그림이 100% 잘못됐다고 보기 어려웠던 겁니다.
만드는 스퀘어와 파는 에닉스
반대로 에닉스는 직접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회사에 가깝습니다. 패미컴 시절부터 춘소프트가 에닉스 게임의 실질적인 개발 부분을 맡았습니다. 슈퍼 패미컴 시절에는 퀸텟, 기브로, 게임아츠 등이 만든 게임을 유통했죠. 가정용 게임기 외에도 PC 게임 역시 꽤 오랜 기간 서비스했고요.
DQ가 되레 이례적으로 에닉스의 손이 많이 간 타이틀로 꼽히죠. DQ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리이 유지가 시나리오와 게임 디자인을 맡았지만, ‘드래곤 퀘스트1’부터 ‘드래곤 퀘스트 V 천공의 신부’를 줄곧 만든 춘소프트의 나카무라 코이치의 역량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고 평가받기도 하고요. 에닉스는 이후에도 하트비트, 레벨파이브 등에 DQ 개발을 맡겼습니다.
오히려 에닉스는 DQ 하나에 의존해 안정적이지 않은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판 사업을 일찌감치 전개했습니다. 에닉스의 월간 만화 잡지인 소년 간간은 만화 ‘마법진 구루구루’가 연재돼 에닉스를 통해 게임화된 바 있습니다. 소년 간간은 ‘강철의 연금술사’ 연재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드래곤 퀘스트 기반 만화들이 연재되기도 했죠. 잡지 사업 외에도 완구, 비디오, 음악 제작에도 나섰고요.
스퀘어와 에닉스가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었죠. 특히 2000년대 초반 콘솔 기반 게임을 넘어 온라인 게임으로의 가능성을 함께 봤다는 것 역시 합병에 큰 이유로 꼽힙니다.
그렇다고 FF와 DQ가 라이벌로 불리며 한창 전개되던 시기라고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닙니다. ‘크로노 트리거’는 사카구치 히로노부, 키타세 요시노리, 미츠다 야스노리, 토키타 타카시, 카토 마사토, 노무라 테츠야, 타카하시 테츠야 등 이제는 어떻게 한 게임에 다 모였나 싶을 개발자들이 함께한 작품입니다. 여기에 에닉스의 호리이 유지가 초기 플롯과 시나리오 감수를 맡았고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DQ에 이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화제가 됐죠.
실제 사업에서도 이러한 협업이 빛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합병 이후 여러 중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지만, 스퀘어 출신들이 부서를 나눠 게임 개발을 하는 사업부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에닉스와 관계를 맺은 개발사들이 여러 외전 작품을 위탁 개발했고 출판 사업은 확장됐습니다. 스퀘어에닉스 IP를 활용한 2차 창작 굿즈 등 머천다이징을 전문적으로 다뤄지기도 했고요.
부진, 쇠퇴, 구(舊) 파이널 판타지14
합병 후 순탄대로를 걸을 것처럼 보인 스퀘어에닉스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자랑하던 게임 개발이 그다지 힘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검전설4’는 시리즈의 종말을 불러온 처절한 퀄리티로 혹평을 받았고 PS3로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13’은 그래픽은 훌륭했지만, 일본식 RPG라는 명칭을 아쉬움에 가깝게 표현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됐습니다.
2009년 닌텐도 DS로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9 별하늘의 수호자’가 엇갈림 통신을 활용한 참신한 플레이로 시리즈 최고의 흥행 수익을 새로 쓰며 체면을 세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스퀘어에닉스는 닌텐도 DS, PSP 등 휴대용 콘솔 중심의 타이틀, 리메이크 등에 주력하며 과거의 명성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실적 부진은 계속됐고 엄청난 개발비와 함께 기대를 모았던 온라인 게임 ‘파이널 판타지14’는 신생 에오르제아를 통해 부활할 때까지 수많은 문제점과 혹평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14’의 실패에 회사 평가도 함께 주저앉았고 주요 타이틀 개발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죠. 이에 2013년 마츠다 요스케가 신임 대표로 취임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등의 인사 변화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2014년 출시된 ‘브레이블리 디폴트’가 호평을 받은 이후 스퀘어에닉스가 코어 팬층을 다잡을 게임 개발을 재차 선언하며 RPG 중심으로 주요 프랜차이즈를 재정비했습니다. 동시에 스마트폰 타이틀에 집중하며 2010년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팬들의 원하는 타이틀 + 미래사업 블록체인
2020년 들어 인수와 재정비를 통해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혀가던 스퀘어에닉스 유럽을 정리한 스퀘어에닉스는 핵심이 되는 FF, DQ의 리메이크와 신작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동시에 과거 프랜차이즈들의 후속작을 꺼내들고 있습니다.
FF는 새로운 전개로 다음 파트를 기다리고 있고 ‘파이널 판타지7 리메이크’와 ‘파이널 판타지16’으로. DQ는 10, 12의 온라인 게임 오프라인화와 신작 모두 준비하고 있습니다. 발키리 프로파일, 스타오션 등의 프랜차이즈 신작에 HD-2D를 활용한 고전적 감성의 RPG 전개 역시 새롭게 이뤄내고 있고요.
그리고 그다음 발걸음은 NFT,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입니다. 2022년에 이어 2023년 신년 인사를 통해 NFT, 암호화폐 기술과 게임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이야기가 마츠다 요스케 대표를 통해 나왔죠. 2022년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에 부정적인 뉴스가 많았던 데 대해서도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경험, 감동을 전해야 한다는 목적을 다시금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이야기했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부침이 있었던 스퀘어에닉스의 2020년대 중후반. 그 모습이 아래로, 혹은 위로 향할지는 합병 20주년을 맞은 2023년의 스퀘어에닉스에서 시작될 겁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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