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드 에코즈(CHAINED ECHOES) 리뷰

고전적인 JRPG는 팬층이 생각보다 두텁다. 흔히 ‘명작’이라고 부르는 게임들이 고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작지 않은 비중이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한 왕도물인 RPG, 이러한 JRPG들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오늘날에도 이를 기리며 영향을 받은 게임이 적지 않고, 현대적인 기술을 가미해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한 게임은, 그런 고전 JRPG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낸 게임이다. 지난해 말, 조용히 지나가서 놓친 JRPG들의 팬들에게는 꼭 추천해주고 싶을 만한 작품, ‘체인드 에코즈’다.



게임명: 체인드 에코즈 (Chained Echoes)

장르명: RPG

출시일: 2022. 12. 8.

리뷰판: v1.052

개발자: Matthias Linda

서비스: Deck13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 성장의 묘미


체인드 에코즈는 다수의 캐릭터가 복잡한 이야기에 얽히면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형적인 JRPG 스타일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인 주인공인 글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여러 국가에 걸친 빌런과 동료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점차 복잡해지는 구조를 띤다.

이 중심에는 ‘마법서’가 있다. SF와 판타지가 섞인 세계관 속에서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의 힘인 마법서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주인공인 글렌이 있다. 그렇지만 글렌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고 해결해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여러 국가와 이익이 얽힌 거대 집단들의 사이에 낀 주인공의 불운한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은 느낌.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한 캐릭터들. 동료들만 해도 엔딩 시점에는 12명에 가깝고, 각 메인 챕터라고 할 수 있는 부분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빌런들이 등장한다. 또한 동료 캐릭터들도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이 뚜렷하고 신념도 갖고 있다. 이들의 심리까지 복잡하고 세심하게 묘사되지는 않으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점차 복잡해지게 되고, 한 번 꼬이고 얽힌 매듭을 풀면서 또 다른 꼬임이 일어난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각자의 목적과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좋은데, 뭔가 좀 뻔한 전개를 피하고자 억지스러운 전개가 느껴지기도 한다. 초중반에는 그런 느낌이 적으나 가끔은 주인공인 글렌이 너무 줏대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개인에 성향에 따라서 나름대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엔딩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는 이 부분이 다소 불쾌하게 느껴지고 어긋난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 뭐 그래도 어딜가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남탓하는 뻔뻔한 악역도 있다.

▲ 챕터마다 세계관 설명이 있긴한데…좀 부실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체인드 에코즈의 백미는 전투와 성장이 아닐까 싶다. 간단한 턴 베이스 구조의 전투에 여러 요소를 섞으면서 전투와 성장 요소들이 깊고 완성도 있게 구현됐다. 캐릭터들마다 직업이 있고, 그들의 개성을 증폭시켜줄 수 있는 ‘클래스’가 따로 존재한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레벨 개념이 없다는 점. 시나리오상으로 특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캐릭터들이 새로운 스킬을 배우며 성장하는 식이라, 반복적인 레벨 노가다를 거의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렇게 배우는 스킬들에 의해서 캐릭터의 능력치가 달라지며, 배운 패시브 및 액티브 스킬들을 ‘모두’ 사용할 수는 없고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이 캐릭터가 어떤 기술을 쓸지 결정해줘야 한다. 그렇지만 캐릭터들이 배우는 스킬에 따라서, 언제 더 활약할 수 있는지가 정해질 뿐 컨셉 자체가 변화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예를들어 주인공인 글렌은 단단한 탱커이면서도 든든한 대미지 딜러를 수행할 수 있지만, 마법 공격이 없어서 그때는 서포팅을 해주는 정도가 끝이다. 또 다른 동료인 레느의 경우는 3개의 속성을 극한으로 강화하는 전사의 컨셉으로 때때로 엄청난 누적 딜링을 보이기도 하고, 바스라즈도 비슷한 성향이지만 이쪽은 빛, 어둠, 물리를 사용하는 점이 좀 다르다. 시에나와 롭 같이 언제나 누적딜량이 좋은 DOT 딜을 가진 캐릭터도 있고, 아군 버프에 특화된 빅터, 회복에 특화된 아말리아 등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두드러진다.

▲ 캐릭터마다 배우는 스킬, 패시브가 뚜렷해 정체성이 확 두드러진다.

한 가지 더 나아가서 캐릭터들이 배운 기술은 전투와 SP를 통해 3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으며, 배울 수 있는 기술과 무관하게 크리스탈을 장비해서 특성을 취득하거나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들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방어구도 정해져 있어서 컨셉의 한계에서 잘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스토리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스카이아머는 또 다른 거대 규모의 전투다. 기존 캐릭터의 성장과 전혀 무관하게 새롭게 ‘스카이아머’를 전용으로 성장시키게 되며, 이는 해당 스카이아머가 들고 있는 장비의 숙련도를 기반으로 삼는다. 대신 맵 혹은 기믹상으로 스카이아머로 상대해야 하는 적들은 바로 티가 나고 전투의 대미지 단위 자체도 크게 다르다기에, 결과적으로 또 다른 새로운 전투 요소를 키운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편하다.

▲ 레벨업 개념이 없어서, 시나리오를 하면서 차근차근 스킬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구조다.

오버 드라이브 등 전략이 듬뿍 담긴 전투, 방대하고 깊은 맵

▲ 전형적인 턴제 방식. 대신 다음에 누가 움직이는지는 알 수 있다.

이런 성장을 기반으로 캐릭터들이 전투에 들어가면, 또 다른 요소들이 섞이면서 한층 더 전략에 심층적인 역할을 한다. 기본적인 스킬의 효과인 버프, 디버프 효과는 물론이고 추가로 체인드 에코즈만의 독특한 시스템인 ‘오버 드라이브’가 있다. 화면 좌측 상단에는 오버 드라이브 게이지가 있는데, 이를 전투 내내 신경을 써야 한다.

각종 스킬과 행동(공격, 방어 등)을 통해 게이지를 적절한 구간에 두면, 받는 대미지가 감소하고 주는 대미지가 상승하는 ‘오버 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한다. 이를 잘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적의 공격을 받으면 자연적으로 게이지가 늘어나고 공격을 하거나 스킬을 써도 늘어난다. 이러한 게이지가 넘치게 되면 ‘오버히트’ 상태가 되어 받는 대미지가 많이 증가하고 주는 대미지가 낮아진다.

이를 위해서 적절한 시점에 방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떄로는 스킬 사용이 이러한 방어 행동에 들어가서 게이지를 감소시키기도 하고, 궁극기 사용이나 방어를 통해서도 낮출 수 있다. 또한 여기에 가연, 젖음, 무거움 등 다양한 ‘상태’가 존재하고 이 타이밍에는 특정 기술들이 큰 위력을 낸다. 아군은 물론 적군도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므로, 이에 잘 대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쓰러져있는 캐릭터들을 볼 수 있다.

▲ 오버히트가 되면 진짜 순식간에 캐릭터가 누워버리니 조심해야 한다.

또한 캐릭터는 한 전투에서 최대 8인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8명 모두 한 번에 조작하는 것이 아닌 태그를 통해 교대하는 식이다. 교대하자마자 교대한 캐릭터는 행동할 수 있고, 대신 교대를 하게 되면 오버 드라이브 게이지가 감소한다. 적의 속성과 정보를 확인하고 교대를 해주면서 최대 효율을 발휘하는 것이 전투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는 DOT딜링의 누적 딜량이 뛰어난 편이지만, 여기에 공격/마법의 속성을 맞추고 아군의 버프 및 적군을 약화시킨 상태에서는 확연히 큰 차이가 나므로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버티기 힘든 상황이나 순식간에 상황을 역전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궁극기의 활용도 중요하고, 캐릭터에 따라서 이런 궁극기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컨셉이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전투는 스카이아머 상태에서도 적용되는데, 이쪽은 기어의 단계를 올려서 게이지를 조절하는 식이다. 1단 기어의 경우는 오른쪽으로 게이지가 이동하고, 2단 기어는 왼쪽으로 이동하는 형태다. 보스에 따라서 오버히트 구간 및 오버 드라이브 구간을 조절하는 때도 있으니 전투가 점차 후반부로 갈수록 다채롭고 생각할 일이 많아지게 된다.

▲ 스카이아머 전투는 궁극기가 없는데, 대미지 자체가 단위가 다르다. 이상하게 잡몹이 더 힘들다.

체인드 에코즈는 여러 국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맵과 셰계가 생각보다는 큰 편이다. 스카이아머를 획득하고 비행선을 타는 중반부 이전에는 맵이 지나치게 넓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숨겨진 요소들과 수집해야 하는 요소들이 매우 많은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메인 퀘스트를 하다가 여기저기 길을 새서 다른 짓(?)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맵에는 숨겨진 영역과 보물상자, 그리고 숨겨진 상자들과 유니크 몬스터 및 전리품들이 존재한다. 이를 일정 이상 획득, 혹은 수집하면 보상을 얻을 수 있고 이러한 보상이 캐릭터의 성장과 장비 획득 등에 꽤 큰 역할을 차지해서 보람이 꽤 있는 편이다. 여기에 각종 서브 퀘스트들이나 퀘스트로 기록은 안되지만 보상으로는 기록되는 숨겨진 퀘스트 및 진행 요소들도 있는 편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대화를 유심히 기억해두거나, 모험가 길드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잘 기억해둬야 한다.

유니크 몬스터는 각 지역마다 몇 마리씩 존재하고 이를 처치하는 미션도 있고, 보상도 쏠쏠한 편이다. 숨겨진 길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맵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찾아다니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방향 단서를 조합해서 맞추는 숨겨진 보물은 초중반은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고 느껴지나 누적되어 중후반부로 가면 영향력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 각종 수집, 서브 퀘스트, 유니크 몬스터 처치등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

향후 클랜 기지를 꾸미고, 동료를 찾아다니고 여러가지 사이드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 자체도 생각보다는 매끄럽게 들어가 있고, 이 과정에서 이곳저곳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이 즐겁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얻는 몇몇의 캐릭터들은 메인 스토리에 참여하거나 과감하게 개입되는 느낌은 아니라, 그냥 ‘팬들’을 위해 추가된 여러가지 요소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필수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적당히 돌아다니다 보이는 보물상자만 까도 노멀 난이도로 난이도가 극강으로 차이날 만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획득하는 여러가지 장신구나 장비들, 그리고 전리품을 팔아서 열리는 ‘거래’에서 획득하는 요소들이 꽤 쏠쏠하고 보람차다. 맵이 방대한 만큼 몬스터의 배치 자체는 많지 않은 편이나, 주요 이동 길목에는 거의 확실하게 배치가 되어 있고 특징도 여러가지이므로, 가끔은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체인드 에코즈가 마련한 수집, 탐험 등의 요소는 메인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고 필수적인 숙제로 남은 것이 아닌, 그저 ‘또 다른 즐거움’의 포지션을 충실히 지키므로, 플러스 요소라고 생각한다.

▲ 크리스탈을 통해 장비도 강화하는데, 꽤 효과가 쏠쏠하다.

JRPG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스토리, 세심하고 깊지만, 개성을 살린 성장 시스템과 독특함이 가미된 턴제 전투. 거기에 다양한 탐험 요소들과 부가 파고들기 요소들까지. 거기에 16비트 복고풍 도트 그래픽은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잘 살아있어서 생동감이 있다.

훌륭한 픽셀 아트로 마련된 다양한 컨셉의 맵들도 뚜렷한 개성을 가지며, 이를 뒷받침하는 OST들도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그래, 그냥 정말로 ‘이만큼 잘만든 JRPG’는 드물 것 같다. 이것저것 진짜 많고, 잘 만들었다고 하기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뭐 단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픽셀 아트 그래픽은 훌륭하지만, 스토리 상 연출은 현대적이지 않고 극히 고전적이다. 컷신 혹은 일러스트 등을 통한 연출의 극적임을 살리지는 못한다. 캐릭터의 초상화들도 하나로 고정이며 표정 변화로 심정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가끔 변화가 있는 캐릭터가 있기는 한데, 메인 주인공들은 다 첫 표정에서 안 바뀐다.

스카이아머는 꽤 독특한 시스템이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름대로 매력을 갖고 잘 만들어둔 것 같은데 여기서 정체모를 지루함, 루즈한 느낌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쉬울 게 없는데 갑자기 호불호가 요소가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래도 워낙에 기본 전투와 시스템 등이 잘 만들어져서 게임을 포기할 정도로 강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가장 호불호가 갈릴 요소는 아무래도 스토리라고 본다. 전개가 완벽히 매끄럽다고 하기는 무리인 편이라서, 수긍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연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이라면 절대 용납하지 못하게 불쾌하게 넘어갈 수 있다. 게다가 스크립트 자체가 좀 아쉽거나 캐릭터의 성격과는 매끄럽게 매칭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아쉽고, 끝까지 봉합되지 않은 문제들도 남아있어서 찝찝함이 남는다.

시스템이 짜임새 있고 완성도가 높지만, 이를 통한 전투가 쾌적하다고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전투가 쉽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가, 이상할 정도로 보스전이 쉽게 느껴진다. 다수의 적이 화력을 몰기도 하는 상황이 더 버거운 쪽이 맞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이 꽤 자주 있다보니, 레벨 디자인이 기묘하면서 난이도가 간혹 펄쩍펄쩍 뛴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도 이정도의 볼륨으로, 이정도로 훌륭한 요소들을 잘 갖고 있는 JRPG를 최신 게임으로 찾기 쉬운 게 아니다. 더욱이 킥스타터를 통한, 1인 개발작이라고 할 정도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게임. 거기다가 풀 프라이스도 아니기에, 대작 게임 및 대형 개발사와의 작품들과는 좀 다른 시점에서 평가를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체인드 에코즈는, 고전적인 JRPG를 좋아하는 유저들이라면 필수로 구매해서 즐기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전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혹은 드래곤퀘스트, 크로노 트리거 같은 게임들을 좋아한 유저라면 꼭 구매해서 해보라고 하고 싶다. 체인드 에코즈는 고전 JRPG를 즐겨하는 유저들이라면 어지간하면 실망하지 않을, 고전 JRPG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난 게임이니까.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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