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 장르에는 하위 분류인 ‘스타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스타크래프트의 블리자드 스타일이 있고, 지금은 쇠락한 C&C로 대표되는 웨스트우드의 RTS 스타일이 있죠. 그리고 캐나다의 개발사 ‘렐릭’ 역시, 자기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개발사입니다.
하지만, 요 몇 년 ‘렐릭’은 조금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극도의 병력 간 상성과 은,엄폐 시스템, 다양한 전장 외적 지원 기술 등 그 어떤 RTS보다 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로 유명한 렐릭이지만, 게임의 성과가 썩 좋지 못했습니다. 전작들의 흥행을 이어갈 타자로 내세운 ‘워해머 40K: 던오브워3’가 이른바 ‘존재한 적 없는 게임’ 취급을 받아버렸거든요.
이렇게 되어버리자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3(이하 COH3)’는 어쩔수 없이 렐릭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전작으로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 2차대전 서부전선을 그린 1편과 동부전선을 무대로 삼은 2편에 이어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전선을 삼은 COH3가 출시를 목전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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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에서는 전작 대비 가장 크게 달라졌다 할 수 있는 ‘캠페인’과 게임 내적 요소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선행 빌드로 게임을 플레이한 만큼, 멀티플레이 경험은 리뷰를 할 정도로 축적하기 어려웠고, 세부적인 밸런스 관련 내용은 출시 초기 언제든 바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캠페인이 아닌 ‘그랜드 캠페인’
‘COH3’의 주 무대는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이탈리아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일부를 다룹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서부 전선이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설명 가능한 동부전선에 비하면 비교적 주목을 덜 받는 전역이긴 합니다만, 이쪽 역시 나름대로 유명한 전투와 전훈들이 가득한 격전지였습니다. 그 유명한 사막의 여우 ‘롬멜’과 영국의 고집쟁이 몽고메리 장군이 활약한 곳이 이곳이었고, 엘 알라메인 전투와 토브룩 전투 등 전사에 깊은 획을 새긴 전투들이 벌어졌던 곳이죠.
약간 더 설명드리자면, 당시 이탈리아는 혼돈의 도가니였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나라 전체를 휘어잡기엔 설득력이 부족해 저항군이 존재했고, 당시 이탈리아군은 유럽 최약체에 속했기 때문에 지중해 패권을 지키기 위한 독일군이 진주해있는 상황이었죠. COH3의 ‘그랜드 캠페인’은, 이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 영국군과 미군의 입장에서 진행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도 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했던 바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그랜드 캠페인’의 핵심을 이루는 시스템입니다.
COH 전작들의 싱글 플레이 캠페인은 몇 개의 미션으로 이뤄진 묶음이 여럿 존재하는 형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COH1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주제로 한 몇 개의 미션과 ‘마켓 가든’작전을 다루는 몇 개의 미션, ‘캉 전투’를 소재로 삼은 몇 개의 미션이 묶음 형태로 존재했고, 독일군의 시점에서 진행하는 ‘티거 에이스’ 미션은 굉장히 호평받은 미션 묶음입니다. COH2도 동부 전선을 다루는 14개의 미션으로 구성된 캠페인 줄기가 있었고, 확장팩에서는 아르덴 대공세를 소재로 미션 묶음을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COH3’의 그랜드 캠페인은 미션 묶음이라기엔 덩치가 너무 크고, 선형적 진행도 아닐 뿐더러, 큰 대전제만 있을 뿐 캠페인 수행 과정은 플레이어가 직접 설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실시간 전투 외에도 RTS라는 장르와 맞지 않게 턴제로 이뤄진 대전략 페이즈가 존재하죠. 제가 상단에 장르 구분을 RTS와 대전략을 모두 적어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랜드 캠페인의 화면 구성은 같은 세가 식구인 CA(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대표작인 ‘토탈워’ 시리즈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거점을 점령하고, 새로운 중대를 투입하고, 매 턴 이 여단들을 조작해 전투와 점령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전역을 점령해 연합군의 치하로 만드는게 그랜드 캠페인의 주된 목적이죠.
‘대전략’ 페이즈에서는 실시간 전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말 그대로 ‘전략’ 단위의 행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항공 정찰을 통해 적 중대의 위치와 주둔지, 요새 등을 미리 파악한다거나, 함포, 자주포 사격 등의 포격 지원을 통해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한편, 새로운 중대를 소집하고 보급선을 만들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어떤 참모의 의견을 따를지 선택하거나, 특정 중대를 강화해 전문화하는것도 가능합니다. 전작부터 이어진 ‘독트린’ 시스템의 확장에 가까운데, 대전략 단위에서 이를 수행함으로서 자신만의 교리 구축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포병 중대를 집중 강화해 직접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쑥대밭을 만들고 시작할 수도 있으며, 기갑 중대를 강화해 시원한 종심돌파를 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전략 시스템은 COH라는 시리즈와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립니다. 전작까지 일선 중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해 왔다면, 이번에는 사령관을 겸임하는 셈인데, 애초에 2차대전이라는 소재를 게임으로 풀이한 경우 주인공의 시점이 병사, 지휘관, 사령관 중 하나였다는 걸 감안하면 한번에 두 가지 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꽤 좋은 발전이라 볼 수 있죠. 무엇보다, 새로운 캠페인 시스템에 걸맞는 재미를 줍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전작의 캠페인 시스템을 선호하는 게이머들에게 화답하듯, COH3의 캠페인은 ‘그랜드 캠페인’이 끝이 아닙니다. 독일군 아프리카 전단과 영국군이 맞붙는 아프리카 전선의 경우 그랜드 캠페인이 아닌, 이전과 같은 스테이지형 연계 미션으로 진행됩니다. 연합군 시점에서 진행되는 그랜드 캠페인과 달리 추축국 진형인 독일군의 시점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되죠.
이 북아프리카 캠페인은 분명 그랜드 캠페인에 비하면 스케일 면에서 모자랍니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보다 디테일한 상황 묘사와 치밀한 서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전략의 맹점을 서사를 본인이 만들어가는 만큼, 미리 준비된 서사를 즐기기는 다소 어렵다는 부분인데, 북아프리카 캠페인은 전통적인 캠페인 모드로서 제 기능을 확실히 하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여전한 COH의 핵심
조금 더 디테일한 게임 속 요소에 대해 말해 봅시다. COH는 렐릭의 게임이며,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렐릭은 자신들만의 RTS 스타일을 정립한 개발사입니다. 렐릭의 스타일을 요약하면, 극도의 상성과 땅따먹기, 소규모 전투로 정리됩니다.
COH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전장을 여러 단위로 나눠둔 ‘거점’을 점령하는 형태이며, 각 거점을 점령할 때마다 탄약과 연료, 맨파워의 지속 수급량이 늘어납니다. 탄약은 특수 행동(수류탄이나 폭탄 가방 투척 등)과 병종 업그레이드 등에 쓰이고 연료는 전차 생산이나 건물 증설에, 맨파워는 보병 전력 확보를 비롯해 생산 전반에 활용되죠.
때문에, 거점 쟁탈을 앞두고 ‘전선’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으며, 렐릭의 RTS는 이렇게 전선이 형성될 위치에 지형의 고저차나 여러 엄폐물, 중립 건물 등의 시설물을 뿌려 두기 때문에 전선이 고착화되기 쉽습니다. 고착화된 전선은 대규모 포격 지원이나 전차 돌파 등의 어떤 계기 없이는 쉽사리 뚫기 어렵죠.
또한, 전체적으로 다루는 단위 부대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중대’를 지휘한다는 컨셉답게 100인이 채 안되는 인구수만 가용할 수 있으며, 전차처럼 강력한 유닛은 한 대가 8명, 12명씩 인구 수를 소비하기에 스타크래프트처럼 수십 대의 탱크를 뽑거나 보병으로 웨이브를 쳐버리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병 유닛도 한 명 단위가 아닌 분대 단위로 다루기 때문에 2인~6인 규모의 보병들을 하나의 유닛으로 다루고, 모든 유닛이 대부분 한 개 이상의 특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규모로 몰아치는 컨트롤보다는 유닛 하나하나를 아끼고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얼핏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장점이나 단점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렐릭의 고유한 RTS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하면서도 작은 전투를 반복하는 과정이 렐릭 스타일 RTS의 진정한 재미라고 할 수 있죠.
‘COH3’의 전투는 이러한 렐릭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림과 동시에 더 강화된 형태입니다. 점령을 통한 자원 수급과 은, 엄폐의 중요도, 제압 사격과 후퇴 기능, 딱총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기갑 병력과 목적이 딱딱 나뉘어져 있는 전차 등 기존의 시스템을 모두 계승했으면서, 동시에 조금 더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전투가 가능해졌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보병들의 AI가 보다 좋아져 이제 낮은 벽을 돌아가거나 하는 일 없이 바로 뛰어넘어 들어갑니다. 본작에 새로 추가된 ‘브리칭’기능은 화염방사기나 수류탄을 소지한 보병대로 수행할 수 있는데, 중립 건물을 점령한 적 보병을 일소해 보병들로도 충분한 적대지역 개척이 가능하게끔 바뀌었죠.
전차를 다룰 때도 보다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전까지 존재하던 전면, 후면 장갑 외 측면 장갑 판정이 생겼는데, 당연히 전면 장갑보단 얇기 마련이라 월드오브탱크에서나 쓰던 티타임 전술이 유의미한 수준의 전술적 컨트롤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탱크 데샨트’로 불리는 보병의 전차 승차 기능도 새로 생겨 기보합동전술을 시행할 때 병종 간 기동력 차이도 좁힐 수 있게 바뀌었죠.
‘COH’다운 디테일한 전장 구성도 여전합니다. 포격으로 다리를 끊어낸다거나,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려 평지로 만드는 한편 공병들로 엄폐물과 철조망, 전차방지턱을 만들어내거나, 역으로 이를 파괴하면서 진격하는 등 전투가 길어질수록 평화로운 마을이 격렬한 전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COH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죠. 이번 작품 또한, 이와 같은 COH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최초, COH3가 이탈리아 전역을 무대로 한다는 정보가 퍼졌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탈리아 전선이 비교적 덜 알려진 전선이기에 인기가 저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고, 두 번째는 공개된 타이틀샷이 전쟁 소재 게임 치곤 너무 발랄한 것 아니냐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해 보면 이런 감상은 별로 느낄 새가 없습니다. 발랄한 색감은 지중해 날씨가 그냥 그럴 뿐이고,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결국 다 무너져서 폐허만 남습니다. 적어도 게임은, 이 무너져가는 문명의 잔재를 그럴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COH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UI만 좀 더 편해지면 참 좋을 텐데
정리하면, COH3는 전작의 재미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좀 더 발전시킨 시스템에 ‘그랜드 캠페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재미까지 갖춘, 그간의 우려를 불식하는 작품입니다. 2편에서 뜬금 빠져 버렸던 공식 한국어화도 완벽히 갖춰져 있기에 게임을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죠. 폰트가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COH3도 완벽한 게임은 아닌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점은 조작이 너무 불편하다는 점이죠.
조작의 어려움과는 다소 다릅니다. 말 그대로 ‘불편함’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일단 화면 전환부터가 문제입니다. 주요 단축키는 키보드 좌측에 쏠려 있는데 화면 이동 단축키는 전통의 화살표이기 때문에 키보드를 통한 화면 이동은 격전 중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다 마우스 이동은 화면 전환이 너무 느립니다. 미니맵을 찍고 가자니 3D 전장 때문에 미니맵 카메라가 영 애매해서 마음먹은대로 전환하기가 꽤 답답하죠.
또한, 유닛의 디테일한 정보도 알기 어려워 보다 섬세한 전략을 추구하는 이들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알보병으로는 대전차 무기 없이 전차 상대가 어렵다거나, 대전차포가 보병 상대로 효용성이 떨어지는 등의 개념적 차원의 상성 단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나, 보병 전원을 SMG로 무장시켰을 때 근접 화력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엄폐 단계 따른 피해 감소 보정이 얼마나 되는지, 적정 사정거리를 넘어설 때의 화력 감소량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블리자드식 RTS의 경우 스컬지를 두마리씩 짝짓는다거나, 질럿 공격력을 업그레이드해 저글링 두방컷을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디테일한 숫자 놀음이 가능하지만, COH는 이런 세부적인 전략 구축은 어렵습니다. 물론 COH 시리즈와 스타크래프트는 애초에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고, 스타크래프트보다 훨씬 전장 변수가 많은 COH 시리즈는 개념적 수준의 인지만으로도 전술 수행을 해나갈 수 있지만, 그래도 정보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전략의 폭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COH3’는 공식적으로 스팀의 ‘창작마당’을 통한 유저 제작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난점은 이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전역 자체는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련군의 기갑을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습니다만 모드 제작이 자유롭다면 2편의 어셋을 가져다 재활용하는 모더들도 존재하겠죠.
단점으로 언급한 ‘그래픽 비주얼’도 사실 큰 문제는 안 됩니다. 애초에 RTS는 다른 장르 대비 그래픽의 중요도가 높지 않기도 하거니와,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딱 평균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RTX 3080정도의 GPU라면 최대 옵션 QHD 기준으로 프레임 드랍도 없었습니다. 최적화는 아직 전부 살펴보진 못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다만, 최신 게임 치고는 다소 수준에 못미치는게 사실이기에 단점으로 꼽았을 뿐입니다. 솔직히 폰트만 좀 바꿔 주면 그래픽은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정리하자면, COH3는 재미있습니다. 멀티플레이 밸런스까지 훌륭하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리뷰 빌드는 플레이 인원이 제한되어 충분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신한 캠페인과 세밀해진 전장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며, COH의 팬들에게는 가히 선물과도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2차 대전 소재의 게임을 좋아하지만, 기존 시리즈의 팬층이 아니었던 게이머 분들에게도 COH3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타이틀입니다. 다소 느린 페이즈로 진행되는 대전략과 전투 중 언제나 일시 정지가 가능한 전략적 일시 정지 기능은 RTS의 빠른 페이즈에 적응하기 어려운 초심자들도 게임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줄 테니 말이죠.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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