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보울3’ 리뷰

‘블러드 보울’은 꽤 특이한 설정의 게임입니다. 워해머 세계관이야 이미 꽤 유명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대충 개념 정도는 알고 있으며, 그 워해머라는 게임의 원본이 보드 게임이라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블러드 보울’ 시리즈는 이 개막장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리그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별개의 보드 게임이 원본입니다.

룰은 기본적으로 미국식 풋볼을 따라갑니다. 럭비의 기본을 따르지만 약간은 다른, 라인맨이 있고 쿼터백이 있고 터치다운을 통해 득점하는 그 풋볼 맞습니다. 물론, 세계관 꼬라지가 그 모양이다 보니 일반적인 풋볼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유기적인 패스플레이를 통해 상대 방어선을 돌파하고 터치다운으로 승리하는 ‘스포츠맨’다운 플레이도 가능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상대 라인맨의 강냉이를 털어버리고 돌파하는 ‘워해머식’ 승리도 가능한게 블러드 보울 시리즈의 룰이죠.

이번에 리뷰할 작품인 그중 최신작이자, 최초로 한국어화되어 출시된 ‘블러드 보울3’입니다.


게임명: 블러드 보울3(Blood Bowl3)

장르명: 턴제, 전략, 보드 기반

출시일: 2023.03.01

리뷰판: 리뷰어 선행 빌드

개발사: Cyanide Studio

서비스: Nacon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S5


스포츠는 곧 전쟁이야



먼 옛날, 그러니까 이제 성인 딱지를 단 어린 친구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 대한민국 만화계에는 박철호 작가의 ‘파이트볼’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철권부터 KOF까지 그 당시 유행하던 격투 게임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는데, 캐릭터 도용 문제가 있긴 했지만(당시엔 크게 상관 안했지만)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그걸 보고 나살문을 배웠을까요.

그 만화의 컨셉은 이렇습니다. 그 세계엔 ‘파이트볼’이라는 경기가 있는데, 공이 나오고 뭔가 스포츠같은 룰이 있긴 합니다만 공 다루는 실력보다는 주먹을 겨루어야 하는 경기입니다. 공은 내팽개쳐두고 상대를 줘패는가 하면, 공으로 상대를 패버리는 등, 사실 경기의 승패보다 그냥 캐릭터들 싸우는거 보는 맛에 본 만화죠.

그리고 나이가 들다 보면, 이 ‘파이트볼’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한 운동장에서 족히 대여섯개의 공이 왔다갔다 하는 남중남고 점심시간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군대 축구는 그 절정이라 할 수 있죠. 개인기로 병장 재껴 보셨습니까? 지금은 몰라도 제 때는 바로 뒤통수에 나살문 박혔습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면서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스포츠와 격투는 가까이 있었던 겁니다.


‘블러드 보울’은 이 폭력과 볼게임의 매력을 하나에 넣어 둔 컨셉의 보드 게임입니다. 기본이 ‘보드’인 만큼 남다른 피지컬과 잽싼 반사신경을 요하지는 않지만, 전략을 짜 승리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은 원래의 스포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불의의 희생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블러드 보울’ 시리즈는 ‘워해머’라는 막장 프랜차이즈에 속한 보드 게임 중 하나고, 보드 게임이 거진 그렇듯 주사위 의존률이 꽤 높기 때문에 주사위 굴림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결과에 따라 마주본 상대 선수를 밀쳐낼 수도, 넘어뜨릴 수도, 아예 이승에서 퇴출시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블러드 보울3’는 이 전략적 폭력 볼게임 ‘블러드 보울’의 가장 최신 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입니다.

▲ 막장 세계관에서 살짝 벗어나 유머를 곁들인게 포인트

보통, 보드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보드 게임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게임의 컨셉을 따오되, 비디오 게임에 맞춰 실시간으로, 보다 비디오 게임답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탈워: 워해머’가 이런 경우죠. 그리고, 보드 게임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되 그냥 좀 더 플레이하기 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워해머’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게임들(레지사이드나 상투스 리치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죠.

‘블러드 보울’ 시리즈는 후자입니다. 풋볼 컨셉의 게임이라 해서 실제 NFL처럼 박진감 넘치는 러닝이나 상대를 뛰어넘는 극한의 도약, 내가 맞으면 최소 갈비 세 대 나갈 자신 있는 태클 등을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주사위 굴림에 따라 상대를 두 번 다시 경기장에 못 나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의 근본은 보드 게임이라는 거죠. 상세한 설명 이전에, 일단 이 점을 알고 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컨셉만이 살길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일단 자신의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블러드 보울3에는 총 12개의 진영이 존재하는데, 각자 조금씩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죠. 쉽게 설명하면, 딱 생긴대로입니다. 두꺼운 친구들은 힘스탯이 높아 육박전에서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느리고 볼 핸들링이 서툴며, 반대로 얇은 친구들은 잽싸고 공도 꽤 잘 다루지만 수수깡처럼 부러져나가죠.

결국, 플레이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터치다운 전에 일단 상대를 다 인사불성으로 만들어놓고 여유롭게 득점을 할 것인지, 혹은 패스에 기초해 능수능란하게 적의 공격을 회피하며 점수를 벌어낼지 말이죠. 모든게 완벽한 팀이란 없습니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팀을 찾아 알맞게 팀을 꾸리는게 최선이죠. 설명에서 볼 핸들링이 미숙하다는걸 ‘상대적일거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친구들은 그냥 떨어진 공도 잘 못 줍습니다. 상대 턱주가리는 잘만 잡으면서 말이죠.

▲ 특색이 없는 팀일수록 다루기 힘들어지는 편

여차저차 팀을 구성하고, 경기에 나서면 게임 자체는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가끔 주사위굴림이 말려서 동등한 상대에게 선공을 걸고도 내가 실려나간다거나, 볼 핸들링이 모자라 공을 놓치고 허둥대는 등 사고가 벌어지긴 하지만, 주사위라는 운 이전에 블러드보울은 각 선수마다 능력치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승리 전략만 잘 짜면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제 풋볼하고는 꽤 차이가 있지만, 돌파할 라인을 지정하고 볼 운반과 득점 전략을 짜는 등 턴제 스포츠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승리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거든요.

문제는, 여기까지가 ‘블러드 보울3’가 가진 장점의 전부라는 겁니다. 아… 한국어화도 되어 있군요. 가끔 번역기 오류가 보이긴 합니다만 일단 이거도 장점이라고 칩시다.

그렇습니다. ‘블러드 보울3’는 판타지 세계에서의 폭력과 유혈, 그리고 풋볼이라는 재미없으면 이상한 키워드를 덕지덕지 발라 만들어진 매력넘치는 컨셉의 게임이고, 개성넘치는 캐릭터들로 팀을 구성해 무력 돌파와 패스 플레이라는 전략적 선택지를 조율해가며 승리를 거둔다는, 아주 명료한 게임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입니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 마저도 겨우 건졌습니다.

▲ 게임 자체가 재미없는건 아닌데…

룰 상으로 전작에 비해 나아진 점이 있지만, 이 부분은 크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한국어화가 이뤄지지 않은 전작까지 파고든 팬 분들이라면 어차피 이 리뷰와 관계 없이 게임을 구매하셨을 테니 오늘은 아예 블러드 보울이라는 게임을 시작해볼까 말까 고민중인 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죠.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그냥 게임 자체가 너무 엉성하게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유머러스한 오프닝 영상을 보고 첫 게임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그냥저냥 좋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게임에서, 저는 3턴만에 게임을 끄고 새로 시작했습니다. 별 이유는 없습니다. 버그 때문에 게임이 뻗어버렸거든요.

▲ 유머도 게임이 좋아야 재밌지 아니면 그냥 짜증 유발 헛소리일 뿐

어찌어찌 게임을 파악하고 이 게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인 멀티플레이를 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서버가 폭발해버려서요. 겨우 접속에 성공했으나, 멀티플레이 환경 자체가 너무 요상합니다. 뭔가가 서버에 과부하를 주고 있는지 스터터링과 부분적 롤백이 수시로 일어나는 등 도무지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략을 짜 두면 뭐합니까 전략을 생각할 짬이 안 나는데.

싱글 플레이는 뭔가 서사가 있는 느낌이지만 실상 별 내용이 없고, 몇몇 룰은 버그 유발때문에 자체적으로 봉인되며, 그래픽과 연출이 이전 대비 획기적으로 좋아지지도 않은데다 UI도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상 전작인 2편에 비해 좋아진 건 공식 한국어화와 최신 룰을 따라간다는 점이 전부죠.

▲ 그나마 흥미로웠던 고간 스톰핑…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더 고역입니다. 워해머 관련 보드 게임 자체가 진입 장벽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기에 블러드 보울이라 해서 쉬울리가 없습니다. 다양한 전략과 룰, 카드에 익숙해지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는데다 자신만의 전략을 짤 레벨까지 올라가려면 만만치 않은 플레이 경험이 필요한데,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게이머를 이끌 마일스톤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고 오히려 수많은 버그와 불편이 발을 겁니다. 저는 그래도 대충 어떤 게임인지 알고 있으니 몇 번의 착오 끝에 적응했습니다만, 잠깐 놀러온 김에 한 번 해보겠다던 동생은 3분만에 포기했습니다. 알면 재밌을거같긴 한데, 알아가는 과정이 전혀 재미가 없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어둠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웬만한 거물들도 혀를 내두를 과금

‘블러드 보울3’에는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습니다.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와 문제점의 발견을 라면 먹다 국물 몇 방울 튀는거라 치면, 이 게임은 아예 그릇을 엎어버린 느낌입니다. 게다가 잘 보니 설익었어요. 버그는 숱하게 튀어나오고 게임은 툭하면 멈추지, UI도 엉망인데 최신 룰을 따라갔음에도 몇몇 룰은 아예 사용이 안되는데다 서버도 불량합니다. 그럼에도 팬들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습니다. ‘블러드 보울’이라는 게임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똥같아도 이것 말고는 대체제가 없거든요.

하지만, 그들마저 입을 모아 선을 넘었다고 말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웬만한 악성 게임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독하게 짜인 게임 내 과금 요소입니다.

‘블러드 보울3’의 과금 요소는 기본적으로 커스터마이징 상품들입니다. 자신만의 팀을 꾸리고, 그 팀으로 멀티플레이를 하는게 주력 콘텐츠인만큼, 다른 팀과의 차별화를 만들어주는 커스터마이징은 매우 중요한 게임 요소라 할 수 있죠. 게임 내에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부위는 총 여섯 부위입니다. 머리, 왼팔, 오른팔, 왼어깨, 오른어깨, 그리고 몸통까지요.

▲ 일단 지금 나온 상품 수만 해도 150종 가까이

문제는, 이 각 부위에 대응하는 커스터마이징 상품이 ‘1인용’이라는 겁니다. ‘블러드 보울3’의 기본 팀 구성이 11명이니, 각 팀 멤버들에게 같은 헬멧을 씌워주려면 그 헬멧을 총 11번 사야 해요. 일반적으로 커스터마이징 상품은 한 번 사면 횟수 제한같은건 따로 없고, 같은 상품으로 여러 캐릭터가 사용하는거도 일반적이지만, 이 게임은 그 일반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만약, 하나의 팀을 풀 커스터마이징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낮은 등급인 일반 등급으로만 66개의 상품을 구매해야 합니다. 이 상품을 사는데 필요한 유료 재화는 ‘워프스톤’이고, 워프스톤의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1,000개당 1만 원이라 가정해도 상품 하나에 75워프스톤이 들어가니 거의 5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써야 하죠. 가장 높은 전설 등급의 상품은 워프스톤이 750개가 들어갑니다. 그것 또한 1인용이죠.

▲ 심지어 몇몇 상품은 아직 스프라이트도 없다…

물론 그래도 사는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자신있게 팔려면, 일단 게임이 훌륭해야겠죠. 하지만 ‘블러드 보울3’는 아무리 좋게 말하려 해도 완성된 게임이 아닙니다. 지금은 커스터마이징 건이 워낙 뜨거운 감자이지만, 데이터마이닝 결과 이미 완성에 가까운 7개의 진영이 더 존재한다는 것 또한 밝혀졌습니다. 다 만들어둔걸 게임에 내놓지 않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팔아야죠.

이럴거면 차라리 게임을 F2P로 돌리고, 기본 게임은 무료로 풀었어야 맞습니다. 그게 저 유료 상품으로 기울어진 양심의 저울추를 그나마 평행으로 맞출 만한 방법이겠죠. 하지만 ‘블러드 보울3’는 게임도 사야 합니다. 그나마 풀프라이스는 아니지만 3만원 대의 가격은 지불해야 해요.

▲ 이 분들의 분노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결론을 내자면,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이 게임을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블러드 보울’을 너무나 애정하는 빅 팬이고, 신규 룰이 적용된 최신 버전을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소수의 분들이라면 어차피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사실 테니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 기회에 시리즈 입문을 생각하시는 분, 그리고 그냥 지나가다 재미있어 보여서 ‘한 번 사 볼까?’ 하시는 분이라면 조용히 고개를 돌리시고 가던 길 마저 가시는게 속 편해지는 길입니다.

뭐, 언젠가 괜찮아지긴 할 겁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무기는 대체제가 없다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시리즈 팬들의 엄청난 피드백이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개발사가 쉬엄쉬엄 하고 싶어도 제대로 게임을 만들어 내라고 엄청나게 쪼일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블러드 보울3’의 최초 출시 예정일이 2021년 9월이었습니다. 1년 반을 미루면서 수많은 유저 피드백을 받아왔죠. 그리고 자신있게 만들다 만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이 게임이 고쳐지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개인적으로 짧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 심지어 치어리더도 못생겼어요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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