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모두가 명작이라 부를 만한 게임이 있다.
빼어난 스토리와 훌륭한 그래픽, 매끄러운 게임 디자인, 박진감 넘치는 전투까지. 하지만 딱 하나. 게임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높은 PC 사양이 필요하다. 권장 사양을 아득히 넘어서는 최고 수준의 PC에서도 끊기고, 튕긴다면 이건 정말 명작이 맞을까?
수많은 게임이 게임 최적화에 노력을 들이고, 때때로 그 성과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차세대 게임 시장이 도래하며 이러한 최적화 이슈는 그야말로 게임의 평판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일부 게임은 심각할 정도의 최적화를 보였음에도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 타이틀이라는 점이다.
몇몇은 부실한 최적화가 애초에 있던 게임의 여러 단점과 함께 혹평 한술을 얹는 수준에 불과하기도 했다. 반대로 호그와트 레거시,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등은 게임 자체의 평가는 훌륭했지만, ‘아쉽다’ 수준을 넘어선 최적화가 출시 초기 고평가에 발목을 잡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해리포터 게임, 혹은 삼국지를 주제로 한 소울-세키로 라이크 게임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대체제를 찾기 어려운 타이틀이다. 지난해 주요 게임 시상식을 휩쓴 엘든 링 역시 출시 초기부터 PC 최적화 논란이 컸던 작품이다. PS5, Xbox Series X 등 콘솔이 있다면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되지만, PC 유저는 수시로 끊기는 게임을 참고 즐기거나, 혹은 게임 자체가 고쳐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프레임 폭락, 최고 사양에서도 발생하는 스터터링
근래 커지는 최적화 이슈는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최근 게임에서 흔한 최적화 이슈는 플레이스테이션, Xbox 등 콘솔 기기에 없던 것이 PC에서만 일어나며 발생한다. 이에 고정된 사양을 가진 콘솔과 달리 수많은 사양, 시스템 환경이 끊김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있다. 정확히는 다양한 시스템에 따른 셰이더 컴파일 작업이 게임 진행 중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기술적인 이야기를 살짝 더해보자. 셰이더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렌더링되는 그래픽의 여러 요소를 측정하고 연산하는 프로그램이다. 조명이 어디서 비출 때 픽셀의 색상이 어떻게 바뀌고, 빛의 반사, 밝기 등도 여기서 결정된다. 텍스처 매핑, 다른 셰이더를 위한 값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작성된 코드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코드로 변환하는 컴파일 작업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셰이더가 화면에 보이는 렌더링 결정을 담당하면 그걸 기계가 처리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작업이 컴파일인 셈이다. 보통은 GPU가 처리할 수 있도록 셰이더 컴파일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GPU의 모델, 드라이버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진다.
콘솔의 경우 모델이 같다면 처리 하드웨어는 동일하다. 수백, 수천만 대가 팔려도 PS5는 기본적으로 모두 같은 GPU를 가진다. 운영체제의 드라이버 업데이트도 적다. 변수가 적으니 게임 전 모든 셰이더를 미리 컴파일할 수 있다.
하지만 PC는 GPU 모델도, 시스템 환경도 이용자마다 천차만별이다. 결국, 셰이더를 게임 실행 도중 변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셰이더 자체가 적은 과거에는 이를 로딩 시간에 모두 컴파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게임의 규모가 커지고 비주얼적인 제한 없이 많은 수의 셰이더가 담긴다. 이를 로딩 과정에서 모두 처리하고자 한다면 로딩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 이에 컴파일 과정이 게임 안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화면 이동, 전투, 새로운 장소 이동 등 순간순간 셰이더 컴파일이 이루어진다. 그 순간은 몇 프레임 정도로 매우 짧지만, 이 기간 프레임이 급격히 낮아지기에 게임이 끊기듯 표현된다. 적의 공격을 반격해내는 소울라이크 게임이라면 이러한 몇 프레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프레임 드롭이 간헐적으로 반복되어 말더듬을 뜻하는 스터터링(Stuttering)이라고 흔히 부른다.
수많은 PC 사양에 맞는 사전 준비를 모두 하기는 어려우니 짐짓 PC 게임의 스터터링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그래픽카드사나 스팀 등의 플랫폼 사의 고민도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분명히 나아질 여지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터터링 문제가 대두하자 해결책으로 나온 게 사전 셰이더 컴파일이다. 게임을 실행하면 셰이더 컴파일이 먼저 실행되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셰이더 컴파일이 미리 진행되는 만큼 게임 중 컴파일로 인해 발생하는 스터터링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사전 로드는 근래 대형 게임들의 경우 수분, 길게는 10~20분이 걸리며 낮은 사양의 GPU일 경우 필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게임을 실행하고 긴 시간을 아무런 PC 사용도 못 하게 막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전 셰이더 컴파일을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는 경우는 더욱 적다.
그나마 이러한 방식이 게임 중 스터터링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고 평할 수 있는 만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게임 중 셰이더 컴파일이 발생하는 타이틀과 비교하면 나은 편이다. 특히 아무런 제한 없이 셰이더 컴파일이 생겨 프레임 드롭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잘못 떨어지면 게임 오버가 되는 플랫포머, 수많은 탄환이 쏟아지는 로그라이트 슈터, 패링 타이밍을 잡는 소울라이크에서 중요한 순간 프레임이 푹 꺼진다면? 이는 분명 그저 잠시만의 프레임 드롭으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반대로 셰이더 컴파일을 영리하게 다루는 경우도 많다. 프레임이 게임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FPS인 콜 오브 듀티의 경우 메뉴 진입이나 비교적 프레임 드롭이 게임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컷신 상황에서 셰이더 컴파일을 진행한다. 실제 플레이어가 느끼는 프레임 드롭은 최대한 줄였다. PC로 이식된 마블 스파이더맨 역시 로딩 사이사이 사전, 게임 진행 중 이용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백그라운드 셰이더 컴파일을 동시에 진행해 스터터링을 막았다.
여러 번의 패치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스터터링 현상을 확실하게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호라이즌 제로 던의 PC 패치는 마블 스파이더맨 이식을 맡은 Nixxes를 통해 이루어졌다. 소니가 여러 게임사 인수 루머를 뒤로하고 왜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유를 알아도 스터터링을 막기 위해 이용자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미리 셰이더 컴파일이 가능한 게임을 하거나 업데이트를 기다리기, 콘솔로 플레이하기, 혹은 스터터링 원인을 찾아낸 유저 패치를 설치하는 정도가 전부다. 개발자의 근본적인 해결 노력이 핵심이란 뜻이다.
뭔지 모를 옵션 아무리 만져도 변화 없는 프레임
스터터링과 함께 최적화 이슈와 관련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문제는 다양한 사용자화의 부재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가격, 전력 사용 등의 이슈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근래 GPU의 성능은 분명 사용자의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DLSS, FSR, XeSS 등 부족할 수 있는 부분마저도 채우는 업스케일링 기술 역시 대중화되고 있다. 사양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스터터링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게임을 무겁게 만들어도 구동되는 상황이 기술적으로 마련됐다.
기술 혁신에 따라 다양한 최고 수준의 그래픽 효과를 최종 단계인 이용자 화면에 뿌려줄 수 있게 됐다. 다만, 담아내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중요한 ‘덜어내는 것’에는 소홀하기도 하다.
PC는 유저마다 다양한 사양 조합이 존재한다. 개발사는 그에 따른 적절한 옵션을 제공하고, 또 유저가 이를 자신의 사양과 시스템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여러 PC에서의 게임 구동을 약속할 수 있다. 사실 옵션의 자유로움은 다양한 시스템 환경에서 게임 실행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 이하로는 옵션을 낮춰도 변화가 없다면 옵션 설정의 장점은 퇴색된다. 결국은 개발사가 어느 정도 정해둔 기준치 이상에서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다양한 GPU, CPU 모델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해상도, 프레임, 창모드 정도를 설정하던 2D 게임 시대는 일찌감치 지났다. 수많은 상황, 눈에 보이는 모든 연출이 프로그래밍으로 처리되어 연산되고 출력되는 만큼 이를 담아내는 옵션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사용자화가 중요하다.
옵션 제공의 경우 타협이 필요 없다. 흔히 높은 PC 자원 점유율을 보이는 레이 트레이싱의 경우만 하더라도 보다 최고 수준의 사양, 혹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사양을 가진 이들을 위한 세부적 변경점이 제공되어야 한다. 빛에 의한 반사 정도와 퀄리티, 반사 밀도, 어느 정도 거리의 물체까지 적용되는지에 따라 요구 사양 역시 크게 다르다. 그저 RT 울트라, RT 하이 정도로 뭉뚱그릴 내용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고급 사양의 레이트레이싱만이 아니라 낮은 사양을 위한 텍스쳐 품질, 그림자부터 다양한 옵션 하나하나에 큰 편차를 두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여러 옵션들이 정확히 어떻게 구현되고, 또 얼마만큼의 성능을 차지할 수 있는 지도 표시돼야 한다. 사실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옵션 좀 만져봤다 하는 플레이어라도 앰비언트 오클루전, 이방성 텍스처, 볼류매트릭이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실제 게임에서 대략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이미 널리 사용 중인 명칭을 바꾸면 그에 따른 혼란 역시 생길 법하다. 답은 실제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방식 제공이다.
콜 오브 듀티가 각각의 메뉴 변경이 어떤 방식의 변화를 줄지 간략한 이미지 비교를 통해 게임 안에서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데이즈 곤은 실제 인게임 화면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화면 옵션을 켜도 인게임 장면은 멈춰진 상태로 그대로 표시되고 여기서 바꾼 설정이 곧장 배경 인게임에 적용되는 식이다. 실시간 프레임 변화, GPU 사용량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명칭을 쉽게 바꾸지 않아도 옵션 설정에 따른 눈에 보이는 게임 변화가 더욱 직관적으로 옵션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유저 스스로 사양과 퀄리티의 타협점을 쉽게 찾게 된다.
콘솔 최적화에 자주 활용된 가변 해상도 옵션, 그리고 PC만의 업스케일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도 옵션 개인화에 효과적인 기능이다.
가변 해상도는 콘솔 게임들이 프레임 저하 구간에서 안정적인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화면 해상도를 임시로 낮추는 기술이다. 물론 고정된 해상도로 안정적인 프레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변 해상도는 낮은 사양의 PC, 혹은 순간적인 점유율 증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많은 플레이어가 해상도 자체를 민감하게 고민하고 설정하는 만큼 가변 해상도 적용 자체를 옵션으로 켜고 끌 수 있음 역시 함께 지원해야 한다. 보통 PC에서는 기준 프레임을 설정하고 이 수치 미만에 다다르면 가변 해상도가 적용되도록 설정하는 식으로 적용된다.
AI 기술 기반의 DLSS와 XeSS, 그리고 AMD의 업스케일링 기술인 FSR은 이미 대형 게임에 두루 쓰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낮은 해상도에서 렌더링을 해 프레임 속도를 높이고 설정된 해상도에 맞춰 어울리게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720p로 랜더링을 한다 가정하면 1080p에 랜더링 하는 것보다 4K인 2160p 해상도로 올릴 때 상대적 프레임 향상치가 큰 만큼 고사양이 요구되는 게임에서 더욱 많이 사용된다.
다만, 업스케일링 기술은 활성화 여부와는 별개로 각각의 메인 하드웨어에서 더 우수한 효과를 낸다. 텐서 코어가 달린 RTX 그래픽카드에서는 DLSS를 활성화할 수 있고 FSR의 경우 라데온 그래픽카드와 구형 엔비디아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인텔 XeSS 역시 타사 그래픽 카드 사용이 가능하지만, 인텔 ARC에서 더 좋은 품질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많은 게임이 특정 그래픽카드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해당 회사의 업스케일링 기술을 담는다. 다만 그래픽카드에 따라 업스케일링 기술의 효과도 다른 만큼 일반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타이틀이라면 다른 기술 적용 역시 함께 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기술 활용이 기본적인 최적화 노력 자체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이용자가 가지고 있는 기기에서 최고의 그래픽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데 집중하고 위 기능은 보조적 역할로 부족한 성능을 메우는 데 활용해야 한다.
나아가 설정 편차를 이용자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권장 사양 표기 역시 어느 정도 개편이 필요하다. 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등 PC 스토어에는 각 게임의 최소, 권장 사항을 개발사가 입력할 수 있다. 스팀의 경우 윈도우, 맥 등 OS 설정 이후 시스템 요구 사항을 입력한다.
현재의 입력 체계는 최소 사양에서 기기를 구동하면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내는지, 권장 사양에서는 어느 정도 옵션으로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지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사양 정보를 게임사가 간혹 공식 홈페이지나 SNS에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 구매가 직접 이루어지는 마켓에서는 볼 수 없다.
각 사양 구조에서 기대할 수 있는 플레이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최저 사양에서 FHD, 30fps 정도마저도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없다면? 여기에 시스템 요구 사항의 사양 조건을 만족했음에도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이용자는 눈에 보이는 시스템 요구 사항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개발사도 자연스레 필요 사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데 망설일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적어도 특정 사양을 입력했다면 그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기입하고 요구 사항 역시 특정 기준을 맞춰 제공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최적화 부족, 상품으로서 필요한 QA 부족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졌지만, 차세대 콘솔, 레이트레이싱의 대중화 등과 맞물려 최적화 이슈는 게임사가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출시일 연기가 이용자에게 공감받지 못하고, 부풀어가는 개발비에 모든 PC 최적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 발매 후 최적화를 다잡아나가겠다는 멘트도 식상해질 따름이다.
하지만 게임의 연기 발매가 아쉬움에서 분노로 바뀌는 건 그렇게 연기로 시간을 벌었음에도 만족할 퀄리티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목 시즌, 혹은 비슷한 장르의 대작을 피하기 위해 출시일을 앞당기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회사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출시를 앞두고 이어지는 크런치에 여러모로 어렵다는 상황에서도 훌륭한 최적화를 보여준 회사도 있고, 문제점을 확실하게 다잡은 곳 역시 존재한다. 그저 확인하지 못했다, 고칠 예정이다라는 말이 언제까지 통할까? 게임을 개발하는 것만큼 다양한 기종, 다양한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 역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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