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여 년 쯤전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그저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무작정 들었던 수업의 첫 번째 과제가 ‘레고’를 활용한 비디오게임을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거창한 수업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교수님은 레고라는 브랜드가 가진 특징을 게임이라는 매체에 녹여내는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약간 뜬금없던 그 과제는 데스크탑 컴퓨터와 떨어진 생활을 하며 게임이 몹시 고팠던 제게 큰 흥미로 다가왔고, 기숙사 구석에서 종이를 오려가며 엉성한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게 지금까지도 기억이 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크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없었지만, 레고로 만들어진 넓은 오픈월드에서 여러 활동을 한다는 것을 키워드로 삼아 과제를 제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2K가 최근 출시한 ‘레고 2K 드라이브’를 처음 접했을 때, 잊고 있던 그날의 수업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맘대로 만드는 자동차를 타고, 오픈월드를 누비며, NPC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은 20대의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이상적인 레고 게임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었죠. 거기에 의외로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 경험은 뜻밖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재미 또한 갖추고 있었습니다.
게임명: 레고 2K 드라이브
장르명: 레이싱
출시일: 2023.5.19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Visual Concepts
서비스: 2K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한국어 풀 더빙이 반겨주는 활기찬 브릭랜디아
해외에서는 20여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레고 레이서’ 시리즈의 부활이라며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국내에 한정하면 ‘레고 2K 드라이브’는 출시 시점까지 게이머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레고’ 게임 시리즈 대부분이 그렇듯, 특정 팬층 사이에서만 소비되는 경향이 강한 편입니다. 주로 ‘스타워즈’나 ‘마블’, ‘해리포터’ 같은 대형 IP와 협업한 레고 게임은 사정이 나은 편인데, 오리지널 작품들은 더더욱 주목 받기 힘든 시장 환경이기도 하고요.
가장 최신작인 레고 2K 드라이브 또한 이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는 사람만 하는’ 장르로 익히 알려진 레이싱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국내의 입지는 더더욱 좁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였을까요.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어 음성은 꽤나 신선한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레고 2K 드라이브’의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에는 여러 모드가 존재하지만, 스토리 모드에서는 오픈 월드인 ‘브릭랜디아’를 탐험하며 스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맵 곳곳에 위치한 각종 콘텐츠를 플레이하게 됩니다. 플레이그라운드의 레이싱 게임 시리즈 ‘포르자 호라이즌’을 생각하면 꽤나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브릭랜디아는 저마다 다른 풍경을 가진 네 개의 구역을 나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스토리를 진행하며 다음 구역들을 방문하는 형태로 탐험의 폭을 넓혀갑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터보 에이커스는 푸르른 들판과 거대한 버섯, 쨍한 건물들이 반기는 곳이라면, 이후에 방문하게 되는 빅-궁둥국(이런 말장난도 게임의 특징입니다)은 미 서부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황토색 암반들이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밖에도 공포 콘셉트의 헌티드 버러 등 각기 다른 테마의 장소와 서킷을 통해 레이싱의 재미는 물론 월드를 구경하는 재미까지 전달하고 있습니다.
레고를 활용해 지어진 월드라는 특성 상, 거대 건물이나 랜드마크를 제외하고는 모두 차로 부숴버릴 수 있다는 것도 ‘레고 2K 드라이브’의 특징입니다. 심지어는 NPC들까지 차로 치어 저 멀리 날려버릴 수도 있죠. 예상외로 이런 건물 부수기는 게임 플레이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데, 적의 공격이나 야생 동물의 습격으로 잃어버린 차체 부품을 다른 건물을 부숴서 수급할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월드에서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는 라이벌과의 대결을 통해 깃발과 우승컵을 쟁취하는 것 외에도, 도움이 필요한 NPC들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도로 별 도전 과제 등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 격인 라이벌과의 대결만 진행하면 레벨 제한 등과 같은 이유로 진행이 막히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틈틈히 이전 지역으로 되돌아가 서브 콘텐츠를 진행해 레벨을 맞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스토리는 여느 레이싱 게임과 같이 주인공인 플레이어가 브릭랜디아 레이서의 정점의 도달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립니다. 지역마다 다양한 라이벌 레이서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실력을 겨루며 레벨과 라이센스, 그리고 돈을 얻게 되죠. 전반적인 스토리의 분위기는 매우 가볍고, 익살스러우며, 때때로는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네이밍 센스나 대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조작감에 박진감을 더하다
레고 특유의 활기와 색채로 장식된 오픈 월드 외에도, 레이싱 장르로서 내세우는 레이싱 경험 또한 수준급입니다. 레고 2K 드라이브의 레이싱은 네 개로 나뉜 월드만큼이나 다채로운 지형에서 펼쳐지며, 도로와 비포장도로, 거기에 수상 레이싱까지 조합된 맵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레이싱 규칙은 마리오카트나 카트라이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캐주얼 레이싱의 문법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경주를 진행하는 도중 다양한 소비성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해 적의 주행을 방해하며 결승선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다른 캐릭터들도 아이템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컨트롤러로 차량을 주행하는 감각 또한 캐주얼 레이싱 게임들과 많이 닮아 있는데, 조작감도 보다 훨씬 만족스러웠습니다. 그간 비주얼 콘셉트가 레이싱게임이 아닌 스포츠 장르 게임들을 개발해 왔다는 것에 걱정을 가진 게이머라면 일단은 안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행은 카트 레이싱류와 비슷한 수준의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는 편이며, 엑스박스 컨트롤러 기준 LT를 눌러 사용할 수 있는 드리프트 메커니즘 또한 다른 레이싱 게임과는 다르게 너그럽습니다. 엑셀러레이터와 드리프트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거의 무한정 드리프트가 가능해 조작에 능숙하지 않아도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죠.
거기다 ‘레고 2K 드라이브’는 드리프트보다도 차체를 빠르게 돌릴 수 있는 버튼이나 부스터, 점프 등 일반적인 레이싱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캐주얼한 기능들이 추가되어 색다른 박진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적 차체를 박살내버릴 수 있는 아이템들이 한 데 섞여 즐거운 볼거리를 연출하고요.
또 하나 설명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면의 상태에 따라서 차체가 바뀌는 기능인데, 대부분의 상황에서 꽤나 만족스러운 주행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차체는 크게 도로용 차량, 오프로드 차량, 물 위에서 사용하는 보트로 나뉘며, 노면에 따라 자동으로 차체가 변경되는 옵션이 기본으로 할당되어 있어 순간순간 조작하는 차량이 달라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각 노면의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조작감을 다르게 해 레이싱 도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레벨 디자인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스토리 모드에서 부서진 차체를 수리하기 위해 여러 오브젝트를 파괴해야 하는 것은 레이싱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레고로 만들어진 차량은 주행 도중이나 적의 공격에 의해 부품이 하나둘씩 파괴되고는 하는데, 일정 이상 파괴될 경우 ‘번아웃’에서나 볼 법한 연출과 함께 일정 시간 주행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로 주변 오브젝트를 파괴해 차량을 수리하거나, 스피드를 일정 부분 희생하면서 보다 큰 차체를 가진 차량을 선택하는 방법 등이 주어집니다.
레고 2K 레이서 또한 레이싱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차량을 수집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는 스토리 모드에서 격파한 라이벌의 차량을 해금하는 것부터 시작해, 게임 플레이나 과금을 통해 얻는 재화로 구매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다만, 차량 별 성능은 레고로 만드는 차체 특성 상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 편입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레이싱 도중 파괴가 가능하다는 것에서 착안해, 모든 노면에 사용되는 차량들은 스피드를 중시한 차체와 내구성을 중시한 차체 등으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자동차가 크면 클수록 파괴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지만, 날렵한 차체에 비해서는 스피드가 덜 나오는 식이죠. 좀 더 멀리 생각해 보면 한 번의 경주 동안 세 대의 차량을 모두 사용하게 되니, 자신 있는 구간에 따라 차체의 유형을 다르게 가져가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물론, 레고 2K 드라이브가 강조하는 나만의 차량 만들기는 아예 메인 메뉴에 별도의 콘텐츠로 나뉘어 있습니다. 성능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덜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하는 형태죠. 마치 어린 시절 방바닥에 펼쳐 놓은 레고를 가지고 놀듯 말입니다.
레고의 참맛 보여준 나만의 차량 만들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기도 했던 ‘레고 2K 드라이브’의 차고는 레이싱, 오픈월드와 함께 레고 브랜드의 한 축을 이루는 ‘창의적인 조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주어지는 여러 브릭을 활용해 나만의 차량을 제작할 수도 있고, 그게 너무 어렵다면 이미 존재하는 차체에 수정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조립은 결과물의 성능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차체 프레임을 선택하고, 그 위에 원하는 색상과 모양의 브릭을 올려 쌓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메뉴에서 원하는 모양의 브릭을 선택하고, 조립 화면으로 가져와 하나씩 꼽아보는 것이죠. 꽤나 다양한 모양과 효과를 지닌 브릭을 지원하고 있기에 상상력만 충분하다면 만들지 못할 차량이 없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 상상력이 없는 경우인데,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설명서 없이 블록 조각을 끼워 차량을 조립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비주얼 콘셉트에서도 잘 알았는지, 창의성 없이 블록 조립만 원하는 이들을 위한 요소도 넣어두었습니다. 바로 ‘설명서’ 모드입니다.
설명서는 보유하고 있는 완성된 차량을 하나하나 분해한 뒤, 게임에서 안내하는 순서에 따라 블록을 제자리에 끼워가며 차량을 완성하는 시스템입니다. 결과물은 이미 완성된 차량이니 큰 의미가 없을 수는 있겠지만, 설명서를 보며 레고를 조립하는 특유의 재미를 게임 내에서 충실히 구현하고자 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취향만 맞는다면, 레이싱 대신 조립에만 몇 시간이고 시간을 쏟을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접 조립한 차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약 사항이나, 성능에 대한 패널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차량 성능의 대부분은 차체 프레임이 결정하며, 직접 디자인한 차량의 모양은 블록의 수나 부피에 따라 내구도와 스피드를 결정할 뿐입니다. 더구나 의자나 스티어링 휠처럼 차량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부품을 굳이 추가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니, 차량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상상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완성한 차량은 시험 주행을 통해 미리 운전해볼 수 있으며, 시범 주행 후 마음에 들지 않는 부품을 교체해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가 만든 차량을 불러오는 것도 지원하지만, 2K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창작물이 배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차량을 공개하기 전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주의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브릭을 활용해 차량을 조립하는 전반적인 조작감이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스크린에서 방바닥에서 레고를 집는 것과 같은 직관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브릭 하나를 제자리에 꼽는 데에도 이리저리 돌리고 옮기고 하는 시간이 크게 소요되는 느낌을 줍니다. 설명서 모드처럼 일종의 메뉴얼이 주어질 경우에는 괜찮지만, 상상력을 바탕으로 차량을 제작하는 경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큰 기대 없이 게임을 접했기 때문일까요? ‘레고 2K 드라이브’는 레이싱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조작감의 측면에서, 또 레고 IP 특유의 익살스럽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 꽤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불편함 없는 조작감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박진감 넘치는 경주 또한 상당한 몰입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어 풀 더빙으로 제공되는 스토리와 성우들의 연기도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여느 스포츠 게임처럼 구색만 갖춘 수준도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월드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분배도 인상적이었죠. 평소 레고 시리즈를 즐겨 해 온 팬이라면, 분명 한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게임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레이싱 팬의 입장에서는 레고 IP 자체가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 측면이 강조되는 추세인 레이싱 장르와는 다르게 상당히 캐주얼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으며, IP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캐릭터들의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말장난들 또한 사뭇 유치하게 다가올 가능성도 높습니다.
큰 부담 없이, 자녀나 조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게임으로도 충분히 손색이 없는 게임플레이를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6만7천800원이라는 풀 프라이스에 더한 소액 과금 요소는 구매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도 유료 재화를 수급할 수 있도록 해 두었지만, 얻는 양이 미미한 경우가 많아 원하는 브릭이나 테마를 가진 차량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유료 재화를 구매해야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게임은 출시와 함께 드라이브 패스와 스타터 번들, 연간 이용권 등을 DLC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차고에서 활용 가능한 재료들도 추가 구매해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차체 외에는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이러한 측면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게이머라면 분명 한동안은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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