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엔씨소프트는 TPS 신작 ‘LLL’의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2017년 이래로 모바일 MMORPG 위주로 신작을 선보였던 엔씨가 오픈형 R&D ‘엔씽’을 발표하고 그 선봉으로 내세운 작품인 만큼, 어떤 작품인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9분 가량 게임플레이를 모아둔 트레일러가 발표되긴 했으나, 게임의 구성을 맛보기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해서 어떤 게임인지 확신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다만 배경이 근미래의 서울이고, 하이퍼 TPS와 현대 TPS의 요소가 섞여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뒤인 올해, 엔씨소프트는 7년 만에 지스타 참가를 결정하면서 ‘LLL’을 비롯한 3종의 신작을 현장에서 선보인다. 또한 지스타 참가에 앞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약 20분 가량 사전 체험할 수 있는 시연회와 배재현 부사장 등 개발진이 LLL의 게임플레이 디테일에 대한 질문에 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게임플레이 트레일러에서 소개된 것처럼 ‘LLL’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 MMOTPS다. ‘오크’라 불리는 적대적인 종족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 인류는 ‘방주’로 피신, 병력을 재집결해서 반격에 나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시연 버전에서는 트레일러에서 등장했던 무역센터-봉은사로 구역 일부가 작전 구역으로 등장하며,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나 지하 임무 구간을 제외하고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구간은 봉쇄되어있었다. 배재현 부사장은 시연장에서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다른 지역 그리고 건물 내부로 진입까지 100% 심리스로 구현할 예정이며, 현재는 개발 중이라 임시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시연 버전에서는 방주에서 캐릭터를 선택한 뒤, 각기 다른 특성을 보유한 택티컬 슈트 중 하나를 골라서 전장에 투입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녀 성별마다 각각 캐릭터가 하나씩 있었으나 시연 버전에서는 남캐만 선택이 가능했다. 또한 커스터마이징은 시연 버전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택티컬 슈트는 각각 특성과 스킬에 따라서 화력, 표준, 경량, 군중제어 특화 4종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 중 이번 시연에서는 화력형과 표준형 중 하나만 골라서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캐릭터와 기어 선택까지 마치면 컷씬과 함께 방주에서 투하된다. 일정 고도까지는 강하 포드에 탑승한 뒤, 포드에서 내려서 택티컬 슈트의 낙하 기능을 활용, 지상의 원하는 포인트를 선택해 착지한 뒤 작전에 돌입한다. 택티컬 슈트를 입고 싸우는 근미래 SF 슈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택티컬 슈트에서는 실드, 로켓 등 다양한 액티브 스킬과 함께 체력회복 등 패시브 효과가 붙어있었다. 종류 그리고 슈트에 작용한 파츠의 효과에 따라 그 스킬이 제각각 다르지만, 낙하 대미지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안 받는다는 점은 동일했다.
낙하 대미지가 없다는 점 그리고 택티컬 슈트에 ‘스킬’이 있다는 점 때문에 빠르게 건물에서 하강하고 뛰어다니고 쏘는 하이퍼 슈터 계열의 짜릿한 느낌이 연상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LLL’의 플레이는 전혀 달랐다. 우선 기본적인 이동속도가 트레일러에서 본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발로란트나 카운터스트라이크류에 가까운 슈팅 감각일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리고 적과 조우해서 사격을 했을 때 그 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 통상 근미래 슈터, SF 슈터류는 총기 반동이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LLL은 반동이 상당히 세서 제대로 조준하고 끊어서 쏴야만 조준점에 근접하게 맞았다. ‘근접하게’라고 한 이유는, 모든 총기류에 예외 없이 탄도학이 칼 같이 적용이 되어있어서 적과의 교전 거리에 따라 조준점에 바로 맞을 수도 있고 혹은 위나 아래 그리고 반동에 따라 우상탄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건 보통 줌을 땡겨서 그대로 스코프 한가운데로 조준하면 맞겠지 싶은 저격용 소총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무기가 미래적인 무기가 하나 없이 현대적인 돌격소총, 산탄총, 저격소총, 경기관총, 유탄발사기 그리고 탄환 구경에 따라 나뉘어진 것을 보고 이걸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점프했을 때 뭔가 갑자기 최고 높이로 훅! 뛴 뒤에 잠시 중력을 거스른 것마냥 체공 시간이 어정쩡하게 긴 걸 보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더블 스텝으로 빠르게 회피하는 것도 뭔가 휙휙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운 느낌이라, 그렇게 슈팅이 묵직할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총기가 반동도 있고 탄도학도 적용된 것에 비해 무빙샷의 정확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 몇 번 사격을 하다보면 적응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기존 게임과는 조금 다르게 수치를 조정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탄도학과 반동이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설계된 데다가 아예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슈팅 게임을 좀 해본 유저라면 금방 적응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뭔가 2% 부족한 느낌은 있었다. 사전 설명에서 ‘리얼리티’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그 요소 때문에 겉돈다는 게 정확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워프에 가깝게 뛰어오르고 심지어 이단점프까지 되는 SF 슈터에서 무기들이 조금 심심한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화염과 연기가 자욱한 전장에서 5mm 구경의 돌격소총 한 자루는 초라한 무기이긴 하겠다. 그리고 몰입감이 강조된 1인칭이 아니고 좀 더 객관화해서 보는 3인칭인 것을 감안하자면 개발진이 생각하는 방향에 맞는 연출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을 해도 반동이 센 것에 비해서 사격음은 조금 밋밋하고, 적이 피탄됐을 때의 소리도 작아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갑 상태에 따라 비무장 / 경장갑 / 중장갑으로 구분된 적 중에 비무장 상태인 적은 한 발 한 발 맞을 때마다 오버액션으로 반응해주지만, 경장갑만 되도 장갑에 몇 발 맞춰도 반응이 크게 없다. 경장갑은 5mm라도 동일 부위를 여러 발 쏘면 장갑이 금방 깨져서 그 사이를 뚫고 몸에 탄환을 박아줄 수 있지만, 중장갑은 7mm 구경의 저격소총으로 헤드를 쏴도 거리가 멀면 두어 발은 쏴야 제압이 되는 정도였다. 게다가 장갑판을 벗겨내기 전까지는 피탄 반응이 크게 없어서 쏴도 제대로 맞췄나 의문이 간다고 할까.
장갑 파괴 시스템은 택티컬 슈트의 다양한 스킬이나 유탄발사기, 혹은 투척무기까지 다각도로 활용하는 전략적인 전투를 이끌어낸 점에선 나쁘지 않았다. 적의 체력을 볼 수 없어서 처음에는 맞나 안 맞나 조금 당황스럽지만, 엄폐 후에 침착하게 대처하면서 적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가는 것이 슈팅 게임의 또다른 묘미 아니던가. 근접전에서 산탄총의 위력도 상당히 강해서 방패를 세우고 대시로 빠르게 치고 달린 뒤 택티컬 기어 스킬 그리고 샷건으로 땅땅땅빵이라는 호쾌한 플레이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장갑 이상의 적인 ‘파워로더’부터 발생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LLL은 우선 장갑 부분을 파괴한 뒤, 약점을 타격해야만 적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생체형 적이 아닌 거대 전투 기계인 ‘파워로더’는 각 구동부의 장갑을 박살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코어들을 전부 부숴야만 기능이 정지된다. 그 과정이 서너 명이 쏴서는 흠집도 안 난다는 게 문제였다. 약점을 감싸고 있는 장갑 부분을 쳤는지, 아니면 그냥 일반 장갑 부분을 쳤는지 그 반응의 차이가 없어서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파워로더급이 나왔다는 것은, 적의 지원 병력이 그만큼 왔다는 말이기 때문에 다수의 인원이 지원이 온 상태가 아니고선 대처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딘가 적이 조금 덜 출몰하는 지역에서 장비라도 바꾸고 숨을 돌리고 싶어도 그럴 공간 자체가 없어서 엄폐물 뒤에서 급히 장비를 바꾸다가 피습당해서 방주로 전송된 사례도 많았다. 회복 아이템이 있었다면 모를까, 일정 시간 지나면 자동으로 회복하는 택티컬 기어 파츠 효과만 빼면 회복할 수단도 마땅치 않아서 한 번 크게 타격받았을 때 수습하기도 어려웠다.
MMOTPS, 그리고 서울부터 시작해 지구를 수복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게임에서 왜 지엽적인 교전 이야기만 나오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대전제를 내세운 이후, LLL에서는 세부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조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 지점으로 가라는 기본적인 콜도 있고 오퍼레이터 NPC도 있지만 어떤 지점에 가서 특정 퀘스트를 이행하라는 지시가 타 게임에 비해서 강조가 되어있지 않고, 맵에 상당히 모호하게 표시가 되어있다.
또한 그 다음 단계 미션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달성해야 할 목표들이 너무 멀리 산개해있었다. 애초에 채널 없이 원 서버 그리고 심리스 오픈월드를 강조한 만큼, 그곳으로 유저들이 모여서 함께 달성하라는 의도가 느껴졌다. 마치 전쟁에서 부대원들이 강하한 뒤, 목표 지점을 향해서 각자 나아가는 구도를 연출하고 싶었다고 할까.
특히 엔씨가 그간 MMORPG, 그것도 ‘대규모 전쟁’을 테마로 한 작품들을 집요하게 빚어왔던 만큼, 그 노하우를 더해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MMOTPS를 만들겠다는 집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전쟁’이라고 가정해서 보면, 그렇게 설계한 것 자체는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장갑으로 무장한 까다로운 적들이기 때문에 지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바로 체감할 수 있었고, 그들을 상대로 유저들 각각이 병사로서 참전해 처절한 전투에 임하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이 체감됐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LLL’의 현 시연 버전에서 말한 비전은 너무 불안정했다. 그냥 전장에 들어와서 쏘고 달리고 어떻게든 생존하면서 목표를 하나하나 달성하는 맛 자체는 있지만, 유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극단적으로 제한이 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저 한 명 한 명이 병사라고 묘사한 것부터 짐작했겠지만, LLL에서는 어떤 구심점이 없었다. 메인퀘스트가 없고, 월드 돌발 임무처럼 주어진 임무를 하나하나 단계별로 클리어해나가야 하는 정도다. 군대로 치자면 지휘관이 없이 병사들만 갑자기 투입된 상태에서 상황병 말을 들으면서 어찌저찌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까.
그나마 노획한 무기는 상당히 쓸만하고, 택티컬 기어 파츠나 탈것 같은 시스템과 필드가 확장되면서 전장의 밀도도 바뀌기 때문에 양상이 바뀐다는 설명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유저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그 전략 자체는 현 단계에서는 미지수였다. 그간 즐겨왔던 레일 슈터나 멀티플레이 슈터, MMOTPS와는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슈터들에서 유저들은 정예 대원,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으로 등장하지 않던가.
그러나 LLL은 그간 엔씨가 내세웠던 MMORPG의 철학에 더 가까웠다. ‘유저들이 이끌어가는 스토리’, 그것을 SF 요소를 섞은 클래식 밀리터리 슈터로 빚어냈다고 할까. 그게 빛을 발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 현 단계에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그 이유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 이번 시연 단계에서는 그저 작전에 갑자기 투입되어서 전투만 벌인 꼴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치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장비나 화력 지원 체계 같은 것도 제대로 안 갖추고 훈련만 대강 마친 상태에서 슈트에 소형 화기류만 들고 닥돌했다가 패퇴했던 클렌다투 전투가 이렇지 않았나 싶었다.
LLL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쨌거나 쏘고 달리고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아둥바둥 발버둥치는 맛은 살려냈다. 다소 가볍고 무거운 느낌이 언밸런스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슈팅 감각을 차근히 익히면서 해치우고 도망치고 엄폐하는 그런 메카니즘 자체는 확고히 갖췄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간 루트 슈터나 MMOTPS를 즐겨온 유저들은 오합지졸의 패배가 아닌 승리로 가기 위한 작전 그리고 이를 위해 차근차근 밟아갈 단계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던가. 이 부분에서 LLL은 지스타 시연만이 아닌, 앞으로도 여러 차례 테스트를 통해 검증이 필요할 듯하다. “엔씨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자신감과 그 철학 자체를 흠잡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연 버전 특성상 극히 일부분만 공개 상태에서 그 철학을 벌써부터 내보인 만큼, 그걸 즐길 유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유저들을 ‘설득’해나가기 위해서 어떤 것을 추가로 보여주고 갖춰나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보였기 때문이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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