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취임 후 첫 산업 간담회로 게임을 택했다. 지난 23일 판교에서 진행된 간담회 자리에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회사 대표와 노동조합 지회장과 학생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모여 유 장관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유 장관은 모두발언 이후 간담회를 비공개로 진행하며 참석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취재를 종합하면 비공개 간담회에서, 넥슨 한재호 개발전략그룹장은 정부가 안정적인 개발환경을 제공해달라고 주문했다. 한 그룹장은 “창의적인 도전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스타트업이나 인디개발자에 지원이 확대된다면, ‘데이브 더 다이버’와 같은 창의적인 게임들이 한국에서 더 탄생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이어 “우리 게임산업이 성숙하다 보니 이제 양극화가 굉장히 심하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개발자가 많기에, 정부의 혜택과 지원이 이런 분들께 더 많이 가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한 그룹장의 제언에 유인촌 장관은 “넥슨은 (잘 나가니까) 별로 안 도와줘도 될 거 같아”라며 농담 섞인 답변을 했고, 이에 청중들은 웃었다. 이어 유 장관은 순서를 정하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자고 했다.
엔씨소프트 넥스트웨이브 프로덕션 서민석 센터장은 글로벌 진출에 있어 법률 리스크, 문화적 고려사항을 정부 차원에서 정립해 주길 바랐다. 그는 “엔씨는 ‘리니지’로 대표되는 대작 게임을 가지고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원툴 회사’라는 얘기가 조금 있다”라 운을 떼며 최근에는 ‘퍼즈업 아미토이’와 같이 다양한 장르로 글로벌 유저층을 사로잡으려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서 센터장은 “엔씨는 작은 회사가 아니어서 나라마다 노하우는 있지만, 글로벌 진출이라는 지향점을 두고 보면 스타트업과 같이 법률 리스크, 문화적 차이를 굉장히 조심하게 된다”라며 “문체부가 글로벌 진출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준비해 준다면 게임 개발 경쟁력을 갖추고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 센터장은 유 장관이 직접 지스타에 와 국내 개발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확인해 주길 바랐다. 그는 “엔씨소프트가 장르 다변화를 시도하고, 다른 개발사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봐주고 많이 지원해 준다면 한국 게임 개발이 더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다.
네오위즈 신작개발그룹 박성준 본부장은 최근 100만 장 판매를 달성한 ‘P의 거짓’ 의미를 짚었다. 박 본부장은 “우리나라 트리플 A급 게임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증명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성과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우리 콘솔 게임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전을 해나갈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박 본부장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 장관에게 꼭 전할 말이 있다고 운을 떼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게임 자체의 재미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도 굉장히 중요하다. ‘P의 거짓’은 북미 탑급 영화사가 영화 제안을 할 만큼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라며 “지난해 문화예술진흥법에 게임이 포함되는 등 고무적인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 게임이 문화콘텐츠로 글로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체부가 콘솔 게임 성장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라며 “게임산업 중장기 계획에 콘솔게임 제작지원이 포함된 것은 정부가 핵심 콘텐츠로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정부 정책이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잘 지원해 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네이션에이 유수연 대표 정부 지원 사업에 있어 페이퍼 워크(서류 준비) 간소화가 필요하다 제시했다. 유 대표는 “아무래도 남용하는 사례가 생길까 봐 장치를 철저하게 하는 거 같은데, 스타트업은 사업을 수행하다 보면 변경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라며 “실제 산업 생태계에 더 적합한 사업 수행이 되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제언했다.
그램퍼스 김지인 대표는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원해 주길 바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은 좋지만, 1년 단위 사업은 게임사가 성과를 내기에 짧다는 의견이다. 그는 “스타트업이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게임을 출시하는 과정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인다”라며 “장기적으로, 2년에서 3년 동안 체력을 아껴가며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4년을 견딜 수 있는 기초 체력이 있지만, 스타트업은 그러한 체력이 없다”라며 게임산업의 허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투자와 장기적인 안목을 주문했다.
페퍼스톤즈 하수영 대표는 PC-콘솔 개발 스타트업이 게임물 등급분류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의위원회에 들어가 심의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얘기했다. 모바일 게임은 구글과 애플의 자율등급분류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지만, PC와 콘솔에는 간소화된 시스템이 없다. 그는 “청년 창업가로서 페이퍼 워크가 너무 많았다”라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유 장관에게 전했다.
유닉온 장누리 대표는 업계 선배들로부터 스타트업 성공 노하우를 공유받을 수 있는 자리를 정부가 마련해 주길 기대했다.
케이퍼스 고성진 대표는 현재 정부 지원 정책이 다소 간접적이라며, 번역 지원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이 더 많아지길 바랐다. 직접 지원의 예는 개발비 충당, 인력 지원 등이다. 고 대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만큼, 안정적인 보장이 더 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넥슨 노동조합 배수찬 지회장은 업계에 만연한 포괄임금제 문제를 지적했다. 배 지회장은 유 장관에게 “유연근무제 가이드를 내놓거나 포괄임금제에 대한 가이드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포괄임금제는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편법이라, 판례대로 근로시간 측정이 손쉬운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개정을 했으면 한다”라고 제시했다.
유 장관은 “더 줄여달라고 요구할 줄 알았는데, 지켜달라는 것은 안 지키는 데가 많다는 얘기네”라며 “더 알아보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송가람 지회장은 게임물 사전심의 폐지를 유 장관에게 제안했다. 송 지회장은 “장관도 배우를 했으니 알겠지만, 옛날에는 드라마나 연극에 사전심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며 “다양한 문화산업 중에서 사전심의가 남아있는 곳이 게임업계다”라고 전했다. 이어 “사전심의 때문에 외국 게임사가 한국에는 출시하지 않는 일도 있는데, 산업의 발전과 이용자를 위해서라도 사전심의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송 지회장 주장에 많은 참석자가 사전심의의 어려움을 유 장관에게 전했다. 특히 스타트업 대표들은 심의 비용이 부담되고, 서류 작업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 장관은 “계속 자율심의를 하는 걸로 얘기를 해서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선) 전혀 얘기가 다르다”라며 “확인해 보겠다”라고 약속했다.
한 참석자가 “게임의 90%가 모바일 게임이고, PC와 콘솔은 숫자가 굉장히 적으니 (알고 있는) 통계에 오류가 발생하는 거 같다”라고 하자 유 장관은 “확인을 해보겠다”라고 답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강신철 협회장은 “국가에 기여한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게임산업이지만, 사실 여러 규제나 진흥 정책에 있어서는 다른 문화 산업에 비해 아쉽다고 여기는 걸 다른 참석자들이 다 얘기해준 거 같다”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게임사는 여전히 치열하고 힘겹게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한국 게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라며 “그런 성장에 정부가 더 지원하고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강 협회장은 곧 발표될 확률형 아이템 시행령에 의견을 냈다. 강 협회장은 “마무리 단계이긴 하겠지만, 우리 업계 의견이 좀 더 반영됐으면 한다”라며 “당연히 게임사도 사회가 요구하는 부분에 소통해야겠지만, 부담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화해서 줄여가는 방향으로 시행령 준비가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간담회를 마치며 유인촌 장관은 “(행사 전에)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내게 해줄까 걱정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상당히 건설적인 얘기가 많았고, 해결 안 될 것은 별로 없는 거 같다”라며 “정말 도움 되는 얘기가 많아서 오히려 힘을 얻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넥슨과 엔씨소프트를 향해선 사회공원 차원으로 스타트업들을 지원해 주길 바랐다. 유 장관은 “넥슨이나 엔씨소프트는 게임업계에서 삼성과 현대다”라며 “예로 벤처청년인디게이머단(가칭) 같은 것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떤지 의논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모든 것을 정부가 해줄 수는 없는 것이고, 어느 정도 앞서가는 선두 기업이 후배를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이 농담을 섞어 “혹시 그런 것을 만들라고 하면 노조가 반대하나?”라고 하자, 노조 측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화답했다. 유 장관은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회사로 돌아가 의논해보라”며 “넥슨키즈, 엔씨키즈를 한번 키워본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봐 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유인촌 장관은 “문체부는 여러분을 돕기위해 있는 부처지, 규제하기 위해 있는 부처가 아니다”라며 “등급분류 문제도 자율규제로 머리에 박혀있어서 걱정을 안 했는데, 현장에서는 많이 부딪히는 문제이니 확실하게 잘 정리를 해보겠다”라고 약속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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