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PROJEKT RED(이하 CDPR)는 현지화에 진심인 게임사다. CDPR은 한국에선 팬 번역을 공식 채택한 것을 시작으로 ‘사이버펑크 2077’ 때는 풀더빙까지 지원했다. 이미 출시된 ‘위쳐3’는 깜짝 더빙 추가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CDPR에서 현지화 책임을 맡는 미콜라이 슈베트 디렉터, 데이비드 트리우 매니저, 한국 파트너인 무사이 스튜디오 대표 이인욱 디렉터에게 그들의 일에 대해 물었다.
CDPR의 현지화 담당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해달라.
미콜라이 디렉터 = CDPR에는 프로젝트마다 현지화 매니저가 있는데, 나는 매니저들의 전체적인 업무 과정을 관리한다. 예로 CDPR은 언어별로 현지 스튜디오와 협업한다. 한국의 경우 무사이 스튜디오와 협업해 캐릭터에 성우를 배정하는 일이나 번역의 퀄리티를 책임지고 있다.
세부적으론 무사이 스튜디오가 작업할 때 필요한 자료, 영상들을 전달한다. 이후 무사이 스튜디오가 결과물을 가져오면 작업이 잘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결과물이 게임에 적용 가능하다면 옮기는 작업과 함께 전반적인 테스트까지 담당한다.
현지화가 잘 됐다는 것은 번역, 더빙뿐만 아니라 게임 위에 올라가 있는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한다. 예로 영어일 때 노출을 한국어로 따라 하기만 하면 폰트나 줄바꿈이 어색할 수 있다. 한국어에 적합한 폰트 결정과 줄바꿈이 자연스러운지 보는 것도 내 업무다.
최근 대형 외국 게임사의 기대작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아 국내 유저들이 실망한 일이 있다. 반면 CDPR은 꾸준하게 현지화 작업을 한다. 회사로선 꽤 비용이 들 텐데, 꾸준하게 현지화를 지원하는 이유가 있을까?
미콜라이 디렉터 = CDPR이 꾸준하게 지원하는 이유는… 사실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 그 배경에 대한 얘기가 좀 길다.
나는 CDPR에서 13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13년 동안 CDPR의 현지화 업무가 어떻게 변했는지 지켜봤다. 먼저 ‘위쳐2’의 경우 한국 커뮤니티에서 번역하고 우리에게 공식 적용해달라 제안을 해줬다. 개발사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나, 집어넣어달라고 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지는 않다. 개발 쪽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굉장히 많다. 폰트라던가 UI 수정 등. 한국어 번역이 길어질 경우 줄바뀜 현상까지 살펴봐야 한다.
처음에는 개발에 소요되는 것들이 많아서 한국 커뮤니티의 제안을 고민했다. 결과적으론 팬 번역을 공식 번역으로 채택해 개발을 진행했는데, 내부적으로도 좋은 경험이었고 유저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고 여긴다.
다음 ‘위쳐3’은 한국 배급사인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가 한국어 번역을 맡았다. 당시 테스터들이 폴란드 본사로 와 직접 품질 검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지화에 대한 CDPR의 협업 노하우가 쌓여갔다.
CDPR이 제대로 현지화를 추진한 건 ‘궨트’와 ‘쓰론브레이커’ 때부터다. ‘궨트’ 작업 당시 게임업계에선 온라인 TCG 더빙이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드 게임이다 보니 다른 장르에 비해 녹음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에 ‘궨트’부터 현지화 작업을 일단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진행된 프로젝트가 ‘쓰론브레이커’이다. ‘쓰론브레이커’가 대사가 많다 보니, CDPR이 제대로 현지화를 시도한 건 ‘쓰론브레이커’를 첫 작품으로 본다. 이어 ‘싸이버펑크 2077’로 넘어가면서 현지화 분량이 굉장히 많아졌다. 결정되기 전까지 무사이 스튜디오와 업무상으로 왔다 갔다한 게 많다 보니 좀 늦게 결정되었지만, 무사이 스튜디오가 번역과 녹음 모두 너무 잘해줘서 단기간에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오게 됐다.
이후 ‘위쳐3’은 당시 차세대기 업데이트를 준비하면서 한국어 더빙까지 들어가면 굉장히 좋을 거란 아이디어가 나왔다. CDPR 경영진과 한국팀이 의논한 끝에 진행된 케이스다. 중간중간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고 판이 점점 커지면서도 좋을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CDPR이 왜 현지화에 신경을 쓰냐면… 비즈니스적으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한국에서 타이틀이 별로 많이 팔리지 않을 거로 생각하기에 현지화를 진행하지 않는 것 같다. CDPR은 반대라 생각한다. 현지화가 되어있지 않기에 한국에서 타이틀이 많이 팔리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최근 서울에서 ‘팬텀 리버티 투어’를 하면서 많은 한국 팬이 “현지화를 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해줘서 감명 깊었다. 결국, 우리 게임 특성상 장르가 RPG다 보니 캐릭터가 많고, 세계관에 대한 설명과 캐릭터마다 서사가 있다. 그래서 현지화하면 게이머가 몰입하기도 좋고,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깊어질 거로 우리는 생각한다.
물론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는 않다. 그래도 한국에서 CDPR의 입지가 넓어지는 걸 보면, 현지화는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다.
현지화 작업의 업무 과정을 소개해 줄 수 있나?
데이비드 매니저 = 일단,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걸 가장 많이 한다. 전체적인 업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건 스케줄 잡기다. 스케줄은 번역, 녹음, 그리고 QA를 다 담는다. 스케줄을 짜서 프로젝트가 기한 내에 완성될지를 본다. 왜냐하면 현지화 스튜디오는 다른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으니, 우리 스케줄을 맞추는 작업이 사전에 이뤄진다.
현지화 작업물은 전체 파일을 한 번에 보내지 않고, 조금씩 나눠 전한다. 이를 배치한다고 한다. 배치를 나눠 현지화 작업이 진행되고, 우리가 배치마다 결과물을 보는 작업이 반복된다. 이후, 번역 작업물을 게임 안에 다 집어놓고 어떻게 나오는지를 일단 본다. 그리고 녹음이 진행된다.
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앞서 말한 더빙 캐스팅도 같이한다. 캐스팅은 비중이 가장 많은 캐릭터부터 시작한다. ‘사이버펑크’로 예를 들면 남자 V와 여자 V, 조니 실버핸드와 같은 캐릭터부터 캐스팅한다. 캐스팅 과정은 무사이 스튜디오와 CDPR 현지화팀, 한국팀이 서로 의견을 내고 조율한다.
비중이 좀 있는 캐릭터는 라이브 캐스팅이라고 해서 실제 게임 내 장면을 이용해 성우가 대사를 직접 해보게끔 한다. 비중이 좀 낮은 캐릭터는 데이터베이스 캐스팅을 해서, 이전 작품을 참고해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의 샘플을 받아 들어보고, 캐릭터에 맞는지 결정을 한다.
녹음 준비 단계에서는 성우에게 캐릭터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성별, 나이, 나이트 시티 안에서 캐릭터가 맡은 역할, 그리고 배경까지. 예를 들어 순진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니 스파이라는 정보를 제공해 연기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CDPR은 성우에게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다.
더빙 과정에서는 영어 소스도 전달한다. 영어로는 어떻게 연기가 됐는지 톤을 참고할 수 있게 한다. 때때로 영어와 한국어 녹음의 길이를 맞춰야 할 때가 있다. 영어에서는 5초 연기인데, 한국어로 7초가 나온다면 실제 게임에 적용하기 곤란할 때가 있으니까.
업무적으론 매주 금요일마다 녹음 파일을 게임에 넣는 작업을 했다. 모든 게 다 되면 QA 단계에 들어간다. 게임 화면에 나오는 텍스트와 음성의 조화를 맞춘다. 사이버펑크 경우에는 QA까지 무사이 스튜디오가 맡았다. 우리로선 번역, 더빙, QA까지 한곳에 맡기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정보가 샐 일이 없었다. 업무적으로도 더 효율적으로 진행됐단 장점이 있었다.
이후에는 픽업 세션이라고 해서 일부 내용 수정이나, 우리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톤으로 녹음이 된 것을 수정하는 작업이 있다. 이 정도가 현지화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볼 수 있다.
무사이 스튜디오는 CDPR과의 협업에서 어떤 일을 할까?
이인욱 디렉터 = 성우로 예를 들면 모두가 어떤 연기든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이 있는데, 성우의 성격과 캐릭터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적합한 성우를 찾고 CDPR에 제안하는 일을 한다. 아무래도 클라이언트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를 수 있어서 가끔 캐스팅을 두고 오랜 논쟁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위쳐’에서 ‘피의 남작’ 경우였다. 결과적으로 피의 남작은 좋은 현지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한다.
종종 클라이언트가 현지화 작업 샘플을 요구한다. 샘플을 전달하면, 우리가 봤을 때 정말 아닌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CDPR은 95% 이상은 의견이 일치해서 협업하기 굉장히 좋은 클라이언트다. CDPR과 작업을 하면 단순히 샘플을 받아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정말 많이 고민한다는 걸 느낀다.
이인욱 디렉터는 아마도 ‘팬텀 리버티’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일 텐데, 먼저 게임을 접한 소감이 궁금하다.
이인욱 디렉터 = 사실, 작업을 하는 사람과 유저의 마음이 너무 다르다. 작업자는 게임이 재밌다, 재미없다를 판단하기 전에 이거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에만 몰입한다. 그래서인지 게임이 정말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는 나중에 출시되고 나서 유저가 되어 플레이해야 느낄 수 있다. 작업할 때는… 정말 그 긴장감에 사로잡혀가지고 재미는 찾을 수 없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임무니까. 그것밖에 없다. 정말로.
여러 클라이언트를 접했을 텐데, CDPR은 어떤 클라이언트인지 궁금하다. CDPR로부터 작업을 의뢰받을 때는 어떤 기분인가?
이인욱 디렉터 = 사이버펑크 현지화 작업을 시작하잔 얘기가 나왔을 때… 미용실에 가서 대표 이미지의 V처럼 머리를 밀었다. 일종의 각오랄까. 그렇게 되더라. 그리고 언젠가 CDPR에서 전할 말이 있다고 부르더니, “저희 위쳐 더빙합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위쳐 더빙을요? 왜요?”라고 했다. ‘위쳐3’은 생각하지 못한 프로젝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만만치 않을 게 예상되어 나온 반응이다.
CDPR이 한국 시장에서 현지화를 이끄니, 한국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엄청나게 오른 상태였다. 그에 맞는, 그 이상의 퀄리티를 계속 내야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중압감, 압박감이 엄청 심했다. 사실 타이틀이 B급이라고 하면 머리를 미는 정도의 압박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CDPR의 AAA급 타이틀이 오면… 한 일주일 정도 뭔가에 막 짓눌리는 감정을 느낀다. 그 무거움이 정말 엄청나게 크다.
‘사이버펑크’ 정도의 대작 게임은 앞서 얘기가 나온 스케줄을 잡아가는 작전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떻게 작전을 짜야 하는지 고민만 일주일 정도 한다. 하,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마음은 엄청 무거웠다.
‘사이버펑크 2077’과 ‘팬텀 리버티’ 모두를 작업했는데, 두 작업 간의 차이가 있었을까?
이인욱 디렉터 = 작업 자체는 ‘팬텀 리버티’가 더 편했다. 이야기가 한 섹터에서 펼쳐진다는 개념이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사이버펑크’에서 이어지는 거여서 편했다.
다만, ‘욕’에서는 조금 차이를 뒀다. ‘사이버펑크’를 작업하면서 보이지 않게 놓쳤던 게 욕에 관한 거였다. 특정 욕설에 좀 치우쳐져 있는데, 아무래도 성우에게 편하게 욕해달라 주문하니 그분들도 자기가 하기 편한 욕만 하게 되더라. 우리가 캐릭터에 맞게 다양한 욕을 주문해야 했는데, 편한 욕으로만 쭉 가게 되었다.
‘팬텀 리버티’에서는 성우와 의논해서 좀 더 다양한 욕이 나오게끔 노력했다. 아무래도 영어에서 번역이 시작되다 보니 영어의 F***가 번역이 되어 그렇게 됐던 거 같다. 기억에는 영어의 F***의 절반은 없앤 거 같다.
‘사이버펑크’ 게임 내에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나오는데, 몇 개 언어 정도가 들어가 있는지 소개해 줄 수 있나?
미콜라이 디렉터 = 나이트 시티에 여러 인종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느낌을 표방하려고 노력했다. 여러 인종, 여러 언어가 나오는 아이디어 자체를 현지화 팀이 제시했는데, CDPR이 처음 나이트 시티를 계획할 때 오픈월드 팀에 현지화 팀이 가 이 안건을 건의했다.
정확히 몇 개 언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어와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브라질-포르투갈어, 아이티 크레올어 등 8개 언어가 ‘사이버펑크’에 있다. 그리고 ‘팬텀 리버티’에 프랑스어와 폴란드어가 추가됐다.
아, 참고로 ‘팬텀 리버티’의 도그 타운에 가면 폴란드어로 등장하는 우리 설립자가 있다. 마친 이빈스키와 미하우 키친스키 설립자가 브레인 댄스를 팔고 있는데, 두 캐릭터의 녹음을 본인들이 직접 했다.(웃음) CDPR이 설립될 당시의 느낌이랄까. 그런 모습으로 브레인 댄스를 팔고 있으니 꼭 만나보길 바란다.
게임을 현지화하는 것과, 현지화된 콘텐츠를 게임에 넣는 것에 차이가 있을까?
미콜라이 디렉터 = 둘은 같이 간다고 생각한다. 우린 사실 현지화를 ‘번역한다’보다는 ‘각색한다'(adaptation)라고 여긴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유저가 플레이할 때, 해당 언어로 처음부터 개발됐다고 여길 만큼 자연스럽게 나오길 원한다. 예로 나이트 시티에서 흑인 NPC가 욕을 하는 걸 한국 성우가 연기한다면,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가져오는 것보다 한국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녹여낼 방법을 채택한다.
언어별로 따지면 폴란드어 버전이 한국어나 영어보다 욕이 더 들어가기도 한다. 왜냐하면 폴란드인들이 소통할 때 욕을 더 많이 한다. 어떤 언어든 모든 게 1:1로 번역되지 않기에 그냥 해당 언어로 재해석하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영어 농담이 한국어로는 말이 안 될 때가 있다면, 그냥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이 우리만의 특장점이라 여긴다.
이인욱 디렉터 = 이 부분이 현지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야기에서 농담이 크게 중요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종종 원작과 왜 다르게 했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우리로선 CDPR과 얘기해 현지화 작업을 한 것이지만, 원작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마땅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원작을 유지해야 하는지 현지에 맞게 가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할 주제다.
데이비드 매니저 = 이 일을 하면서 즐거울 때는 커뮤니티 반응을 체크하다가 ‘현지화가 잘됐다’라는 댓글을 볼 때다. 그런 반응들은 작업 자체가 그 나라 언어로 됐다고 여겨져야 나오는 거 같다.
소설이나 영화와 비교해 게임 현지화 작업의 어려움을 듣고 싶은데.
이인욱 디렉터 = 작업이 순서대로 쭉 가지 않는다는 게 어렵더라. 특히 CDPR 게임의 경우 대답에 따라 다른 분기로 간다. 그리고 게임 현지화 작업은 처음부터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받게 된다. 작업자로서 이야기를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데, 대본을 다 보는 데만 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캐릭터끼리 서로 사이가 좋은 건지, 싸우게 되는 건지, 처음에 좋다가 나중에 틀어지는 건지 파악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야기 파악, 스케줄 조정이 엉키다 보면 더빙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럼, 난리가 나는 거다. “캐릭터 파악도 안 됐는데 무슨 더빙이냐?”는 의견부터 “된 것부터 더빙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오간다. 그래서인지 게임 작업을 하다가 영화로 넘어가는 분들을 보면 다들 행복해하더라.
게임 현지화 어려움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텍스트만으로 상상한 거리감과 실제 게임의 거리감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까이서 얘기하는 것과 멀리서 얘기할 때 들리는 거리감이 다르다. ‘쓰론브레이커’ 작업 때 녹음의 거리감을 잡아야 하니 CDPR에 “이미지 한 장만 제발 달라”고 했다. 그런데 보안 때문에 주지 못하겠다더라. 그래서 거리감이 가까운지 먼지 몰라서 경우에 따라 다 녹음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위쳐3’ 더빙 때는 다른 게임보다 결과물이 훨씬 좋게 나온 거 같다. 아무래도 게임 자체는 이미 다 나와 있으니 디테일한 더빙을 할 수 있었다.
작업을 마쳤더라도 정말 게임이 출시되기 전까지 현지화가 잘됐는지 알 수가 없다. 긴장의 연속이다. ‘쓰론브레이커’ 때 본사로 갔는데, 당시 게임을 시연해 본 기자들이 “이번 쓰론브레이커 현지화 잘됐는데?”라고 얘기하더라. 그제야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최근 AI 번역으로 공식 한국어화가 안 된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AI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나?
이인욱 디렉터 = 아직 우리끼리는 그런 농담을 한다. 우리 생에는 AI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한편으론 AI 발전 속도에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게임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수준이 아닌, 한 다리 더 걸쳐야 한다고 본다. 결국 AI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검수는 사람이 하게 된다. AI 기술을 검수하지 않고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미콜라이 디렉터 = 결국에는 작은 디테일이 더 중요해질 거 같다. 아직까진 사람이 하는 검수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AI 발전 속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사람의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이미 AI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CDPR도 여러 방면으로 검토하는 게 있다. 실제로 유럽에 있는 성우들은 이제 실직을 두려워할 정도다. CDPR은 게임 개발에 AI 쓸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 메인 콘텐츠나 서사를 전달하는 콘텐츠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연기에 있어서도 사람과 AI는 깊이에 차이가 있다. 다만 단순히 필드를 채우는 기술에는 실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팬텀 리버티’에 실제 AI 기술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빅터 벡터’ 캐릭터의 폴란드어 성우가 작업 전에 작고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를 사용하길 원했다. 그분이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했고, 다른 성우 목소리가 들어가면 기존 작업물까지 재녹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목소리를 AI로 추출했고, 비슷한 목소리의 성우가 연기를 하면 작고한 성우의 목소리를 입혔다. 물론 작고한 성우의 유가족 동의를 받고 진행했다. 그렇게 빅터 벡터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빅터 벡터 사례처럼 AI가 좋게 이용되는 방안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기술 자체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보니 적당한 선이 어디까지인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 확실한 건 개발 단계에서 AI 기술 활용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마치면서, 좋은 현지화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미콜라이 디렉터 =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먼저 앞서 말했듯이 현지 유저들이 플레이했을 때 이 게임이 현지에서 개발됐다고 여길 만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욕, 숙어 등을 녹여내고 음성의 감정선과 톤이 자연스러운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기술적인 부분이다. 폰트나 줄맞춤, 크기, 글자의 방향, 노출 속도, 맞춤법까지도 잘 넣는 게 중요하다. 번역을 잘했더라도 폰트가 이상하면 게이머들은 이상하게 느낀다. 소위 말해서 ‘깬다’라던가. 이러한 예술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의 조화가 잘 이뤄져야 좋은 현지화가 됐다고 여긴다.
이인욱 디렉터 =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예술을 빙자한 상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끼리만 만족하고 유저들이 만족하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작업이라고 본다. 유저의 만족이 좋은 현지화, 나쁜 현지화를 가른다. 그리고 유저가 만족하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분석해 개선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유저들은 현지화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지, 세세하게 이유까지 쓰지는 않는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집단으로 보면 그렇다. 그래서 유저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고, “후지다”라고 하면 후진 거다. 그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O(좋다)/X(나쁘다)의 문제 같다. O와 X들의 싸움에서, O의 비중을 늘려가는 게 좋은 현지화라 생각한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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