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난이도의 전투를 매력으로 내세우는 게임들은 하나같이 특유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공략하지 못하면 끙끙 앓게 되는 성격상 이런 류의 게임을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도 금방 생각나고, ‘조금만 더 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포기하는게 맞아?’라는 생각이 들어질리지도 않고 재차 반복하게 된다. 취향이 아닌 이들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인 ‘마라탕’ 같은 매운맛이 담겨 있는 셈이다.
여기 마라탕처럼 매운, 가혹한 전투 난이도가 취향인 유저들을 위한 신작이 있다. 바로 밤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게임, ‘헌트 더 나이트(Hunt the Night)’다. 헌트 더 나이트에는 가혹한 전투 외에도 다크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처럼 끝도 없이 어두운 분위기의 ‘다크 판타지’가 더해졌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유머 요소가 일절 섞이지 않아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그만큼 취향을 탈 수밖에 없는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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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그래픽으로 완성된 공포 게임처럼 어둡고 음습한 다크 판타지
헌트 더 나이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불호’ 포인트가 가득한 게임이다. 취향에 맞지 않으면 플레이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분명한 만큼 취향에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리뷰에서도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는 포인트들을 하나씩 짚어볼까 한다.
첫 번째 포인트는 꿈도 희망도 없는 어두운 세계관 설정이다.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점액질과 눈동자, 핏자국, 그리고 시체가 가득한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기본조작을 익히며 주변을 돌아보고, 튜토리얼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늑대를 사냥하고 나면 자신이 사냥꾼 집단에 소속됐으며, 폐허와 공포로 가득한 방대한 세계인 ‘메드람’에서 어둠을 몰아내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공포로 물들어버린 세계는 살아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으며, 세계 곳곳은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괴물들로 가득하다.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마주하게 되는 배경들도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로 가득 채워져 있고, 여기에 한술 더 떠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소름 끼치는 BGM이 플레이 내내 이어진다. 이는 게임에 찰떡처럼 맞아 떨어지는 BGM 선정이고, 그만큼 몰입을 더하는 포인트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로 헌트 더 나이트의 BGM은 성검전설 시리즈의 음악으로 이름을 알린 작곡가 ‘키쿠타 히로키’의 손길이 더해졌다고 하니, 해당 작곡가 특유의 음악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반가운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를 꽉 잡아주는 BGM에 더불어, 고전 어드벤처 게임을 연상케하는 도트 스타일의 아트 디자인은 게임의 어두운 분위기에 생기를 더해준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괴물들의 도트 아트를 보고 있으면, 다음번엔 어떤 끔찍하면서 기괴하게 생긴 적이 등장하게 될 것인지 자연스레 기대감을 품게 된다.
이처럼 헌트 더 나이트는 세계관 설정과 BGM, 아트 디자인의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계관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자신이 꿈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다크 판타지 세계관과 스토리. 고전 게임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 스타일의 도트 그래픽, 그리고 공포 게임처럼 으스스한 배경음악과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헌트 더 나이트는 꼭 놓치지 말고 체크해야 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각각의 요소들이 풍기는 향취가 꽤 깊은 편이니, 이러한 요소들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게임을 멀리하는 것이 이로울 수 있다.
‘젤다의 전설’에 소울라이크의 풍미를 곁들인 액션 어드벤처
서두에서 헌트 더 나이트를 소울라이크 액션 게임이라고 소개했지만, 이 게임의 근본은 오히려 패미컴 시절의 고전 게임인 ‘젤다의 전설’ 같은 어드벤처 쪽에 더 가깝다. 머리를 써야 해결할 수 있는 퍼즐을 풀고, 숨겨져 있던 길을 찾고, 막힌 길을 뚫을 수 있는 재료를 모아 하나씩 진행하는 젤다 스타일의 어드벤처, 여기에 어려운 난이도의 보스를 차례차례 쓰러트리는 보스 랠리로 주목을 받았던 ‘타이탄 소울즈’나 ‘데스 도어’ 같은 전투 스타일을 더한 셈이다.
이러한 어드벤처 중심의 플레이 스타일은 헌트 더 나이트의 두 번째 호불호 포인트가 된다. 어려운 난이도의 보스전을 통해 빠른 템포와 전투의 긴장감을 느끼고, 액션 그 자체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번거로운 요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늑대형 보스 ‘탐식자’, 그리고 약간의 퍼즐과 던전 탐색을 거친 뒤 마주하게 되는 두 번째 보스 ‘아델람’까지는 일반적인 소울라이크 게임처럼 ‘잡몹 전투와 탐색 – 보스전’으로 게임의 템포가 이어진다. 사실 여기까진 개발자가 미리 구성해둔 단서를 그저 따라갈 뿐인 선형적인 구조이기에 퍼즐 단서나 길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거나, 같은 장소를 계속 헤맬 일 없이 온전히 전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헌트 더 나이트의 진짜 게임 플레이는 이 이후부터 시작된다.
아델람 공략 후 사냥꾼들이 머물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한 주인공 베스퍼는 이제 세계에서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게임 속 오염된 세상인 ‘메드람’ 전역을 누비게 된다. 각 거점마다 세이브 포인트를 겸하는 포탈이 존재하고, 이를 오고 가면서 꽤 방대한 규모의 맵을 돌아다닐 수 있는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이 과정엔 열쇠 찾기로 대표되는 재료 모으기, 단서를 찾은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원래 지나지 못했던 길을 통과하는 퍼즐과 어드벤처 요소가 꽤 심도 있게 적용되어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안내해주는 진행상황 표시나 월드 맵 등의 참고 요소가 게임 속에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공포게임처럼 화면이 어두운 편이라 길도 잘 보이지 않는데 통로들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꼬여있기 일쑤고, 분명히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은 공간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가 하면, ‘다음에 다시 방문해야 할 곳’에 대한 표시를 남길 수 없으니 순전히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단서를 특정하지 못하면 똑같은 곳을 몇 번이고 헤맬 수 밖에 없고, 길 찾기 과정이 스트레스처럼 느껴지기 쉽다. 어드벤처 장르의 묘미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겐 이상할 것이 없는 부분이나, ‘소울라이크’ 키워드를 보고 보스전의 쫄깃한 긴장감을 원했던 이들에겐 예상치 못한 허들이 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앞서 호불호 영역이라고 말했 듯, 어드벤처 중심의 플레이 구성이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픈월드 게임을 탐험하는 것처럼 비선형적으로 구성된 넓은 맵을 자유롭게 탐색하면서 숨겨져 있던 길을 발견하고, 나만의 템포로 여행을 이어가는 도중에 다양한 장비와 스킬, 스토리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단순히 보스전을 반복하는 일직선 구조였다면 맛볼 수 없는 월드 탐색의 재미가 있는 셈이다.
생각지도 못한 루트에서 발견한 강력한 장비와 스킬을 활용하여 기존에 어렵다고 느꼈던 강력한 보스에 도전하는 등, 나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길을 헤맬 때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감정이 앞섰지만, 이 과정에서 더 강한 스킬을 획득하고, 끝내 정확한 길에 들어섰을 때는 희열이 느껴지기 까지 했다.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 속에 ‘있을 것은 다 있는’ 깊이 있는 전투 액션
아쉬운 포인트와 호불호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다수 산재하고 있음에도, 헌트 더 나이트를 매력적인 게임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호쾌하면서 빠른 템포의 전투 구성에 있다. 사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단순히 바라보면, 헌트 더 나이트는 전투가 참 재미있는 게임이 맞다.
헌트 더 나이트 전투의 첫 번째 특징은 단순한 도트 비주얼 속에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공격 방식에 있다. 주요 무장인 도검을 활용한 근접 공격, 총기류를 활용한 원거리 공격, 속성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수류탄 형태의 투척무기, 일정한 쿨타임이 존재하는 강력한 스킬인 ‘어둠의 힘’, 그리고 각각의 능력치에 유의미한 변화를 제공하는 ‘월장석’ 장비가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일반 공격이라고 검 하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공격속도와 사거리에 변화가 있는 단검, 장검, 양손검, 창, 클로 무기까지 종류가 세분화되고, 총기류도 권총, 샷건, 석궁으로 나뉘어 있다. 같은 계열의 장비라도 속성이나 능력치가 다르게 적용되어 있는 것은 물론, 장비에 맞는 세 개 단계의 업그레이드가 별도로 존재할 정도다. 도트 비주얼의 단순한 조작이지만 그 속에 그려낼 수 있는 수십가지의 조합이 존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클리어할 수 없는 것이 헌트 더 나이트의 전투라고 할 수 있겠다.
헌트 더 나이트 전투의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낮은 리스크, 그만큼 낮은 성장 기대치’가 있겠다. 헌트 더 나이트에서 적을 쓰러트렸을 때 얻을 수 있는 재화는 재화 개념의 ‘녹틸륨’이 유일한데, 전투에서 죽어도 그간 모은 재화를 떨어트리는 일 없이, 노 리스크로 언제든 재도전이 가능하다.
필드에 널려있는 일반 적들의 공격력이 상당하고 세이브 포인트의 배치 간격도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모험 중에 죽게 되는 일이 꽤 빈번한데, 이때도 그간 모았던 주요 아이템이나 녹틸륨은 그대로 보전된다. 일반적인 소울라이크 게임들과 다르게 굉장히 이질적이게도,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재화인 녹틸륨을 활용할 수 있는 활용처 역시 소지 물약 개수를 늘리는 것과 보조 무기를 강화하는 것 정도에 그칠 정도로 매우 한정적이기에, 사실상 일반 전투를 반복하는 것에서 오는 성장 기대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플레이어 본인이 기믹을 숙지하고, 숙련도를 높이는 것 외에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셈이고, 이러한 구조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회피의 성능이 워낙 출중하여 기믹만 파악하면 누구나 반복학습을 통해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난이도라 너무 어려울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헌트 더 나이트’는 확고한 방향성을 갖춘 어두운 다크 판타지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도트 그래픽,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알싸하고 매콤한 난이도의 전투까지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작품이나,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 역시 다수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키보드 플레이 기준으로 가끔 조준점이 사라져 정확한 공격 방향을 알 수 없게 되는 문제, 정식 출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지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간혹 남아있는 영어 지문과 어색한 한국어 번역, 그리고 맵과 맵 사이를 통과할 때 계속해서 이어지는 잦은 로딩 등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진행상황 저장 후 다음 맵 이동, 바로 등장한 건물에 진입, 입구의 승강기 이용까지 연속 동작처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엔 10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로딩을 위한 검은 화면이 네 번 등장한다. 로딩은 1~2초 정도의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으나, 보스에게 죽은 뒤에 바로 재도전을 하고 싶은 이에게는 끔찍한 방지턱처럼 느껴질 수 있으므로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얼리억세스가 아닌 정식 버전인 데다가 출시 후 4일 정도가 지났지만 별다른 피드백 공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불편점들이 빠른 시일 내에 고쳐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호불호가 극명한 마라탕 같은 매운 맛을 가졌더라도,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그만큼 뚜렷한 만큼 헌트 더 나이트의 매력에 푹 빠지고 싶은 이들 역시 다수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시스템 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낄 일 없이 온전히 게임의 재미를 음미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개선점들이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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