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충격의 첫 트레일러 공개때가 기억납니다. 예. 바로 위에 영상이 9년 전 바로 그 영상입니다.
지금이야 오늘 내일하며 폐지니 뭐니 위기에 놓인 E3지만, 당시만 해도 E3기간엔 기자들이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날밤을 새며 새 트레일러를 기다리는게 꽤 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드 아일랜드2’의 트레일러는, 그 모두의 기대를 충족할 만큼 대단한 퀄리티를 보여줬었죠. 직후, 기자들은 게임이 정식 출시되면 무슨 캐릭터로 어떤 컨셉플레이를 할지에 대해 즐겁게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9년이 흘렀습니다.
같이 게임하자던 꼬맹이 신참 기자들은 수석기자가 되었고, 졸린 눈을 비비며 기사를 쓰던 선임 기자는 편집장이 되어버렸죠. 그 9년 동안, ‘데드 아일랜드2’의 상황도 여의치는 않았습니다. 개발사가 두 번이나 바뀌고, 출시일도 몇 번이나 밀렸으며, 감염병을 소재로 하는 게임인데 하필 전세계를 휩쓰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타이밍도 애매해졌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나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눈치를 보던 데드 아일랜드2가 다시 슬쩍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게임은 김치와 비슷합니다. 적당히 익어야 맛있지만, 또 너무 오래 익으면 푹 쉬어버립니다. 다만, 아주 가끔은 그 푹 익은 김치가 아주 맛깔나는 맛을 내기도 합니다. 결국, 맛을 봐야 안다는 거죠. 그러니 ‘데드 아일랜드2’도 맛 좀 봅시다. 쉰김치인지, 기깔나는 묵은지인지 말이죠.
※ 본 리뷰에는 다수의 유혈 묘사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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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좀비 패는 게임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은 참 많고, 게임 내에서 좀비의 역할은 매우 다양합니다. 게임 제작이라는 분야에서, 좀비라는 소재는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깝기 때문이죠. 적당히 넣으면 게임의 긴장도가 올라가고, 사람처럼 생기긴 했지만 이미 시체라는 설정 상 잔혹하게 다뤄도 괜찮다는 프레임이 존재하며, 판타지건, SF던 대충 설정만 슬쩍 꼬아주면 어디에 넣어도 그럭저럭 통합니다. 게임판의 무안단물이 따로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 중에서도, ‘좀비 그 자체’에 더 포커스를 두는 게임들도 있습니다. 사지 중 몇 개가 떨어져 나가도 덤벼드는 본능, 곱창과 선지를 휘날리며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그로테스크함,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잔인하게 죽여도 “어쨌든 살인은 아님”이라는 무적핑계가 가능한 게임적 요소라는 특수성에 주목하는 게임들이죠. 캡콤의 ‘데드라이징’ 시리즈나 데드 아일랜드 1편의 개발사인 테크랜드의 ‘다잉 라이트’, 그리고 오늘 말할 ‘데드 아일랜드’ 시리즈도 이에 해당합니다.
‘데드 아일랜드2’라는 게임은 ‘좀비 헌팅’이라는 핵심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는 게임입니다. 게임을 한 줄로 요약하면, 좀비 때려잡는 게임이고, 게임을 추천해줄 게이머는 좀비를 쥐어패고 싶은 게이머들이죠. 다만, 비슷한 다른 게임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데드 아일랜드2’의 좀비 헌팅은 다른 게임보다 훨씬 치열하고, 또한 하드코어합니다.
‘데드라이징’ 시리즈나 ‘다잉 라이트’ 시리즈에서 좀비는 거의 장난감에 가깝게 취급됩니다. 데드라이징에선 로드롤러로 좀비를 바닥에 칠하는가 하면, 다잉라이트는 분위기만 엄근진이지 실제 플레이는 드롭킥 시뮬레이터입니다. 그 무섭다는 볼래틸도 야간에 썽둥썽둥 썰어버리는게 주인공이니 말이죠.
‘데드 아일랜드2’는 여기에 소울향 조미료를 한 스푼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반 좀비 상대로도 다른 게임에 비해 어려운 편이고, 특수 좀비가 하나라도 섞이면 소울라이크가 됩니다. 회피와 방어를 적당히 섞어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순대모듬이 되고, 무기 내구도도 신경쓰지 않으면 싸우다 무기가 깨지는 대참사가 일어나죠. 물론, 실제 소울라이크만큼 고난이도를 표방하진 않지만, 말 그대로 좀비를 휩쓸어버리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는 피로도가 꽤 크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성공적으로 전투를 수행했을때 얻는 카타르시스가 크기도 합니다. 몰려드는 좀비들을 상대로 상처 없이 공격을 딱딱 성공시켰을 때의 쾌감, 달려드는 러너들을 여유롭게 피해준 후 두 주먹으로 순살치킨을 만들 때의 짜릿함. ‘데드 아일랜드2’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게임 서사는 그냥 평범한 수준입니다만,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아마 게임을 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신 분은 별로 없을 겁니다. 다음 무기는 뭘 쓸지가 문제죠.
이는, 전작부터 이어지는 ‘데드 아일랜드’ 시리즈만의 고유한 전투 감각이기도 합니다. 분명 느려터진 좀비들인데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이상할 정도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좀비들, 발차기와 주먹질까지 동원해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초반부, 좋은 무기와 충분한 성장을 거치면 걸어다니는 피바다 제조기가 되는 게임 플레이의 점진적 변화까지 ‘데드 아일랜드2’는 전작의 많은 부분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전반적인 요소들 또한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전신골절부터 가벼운 타박상까지 다양한 병변을 만들어내는 F.L.E.S.H 시스템, 그 어떤 좀비 게임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좀비 모델들, 뚝배기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불꽃주먹부터 안면 평탄화 니킥 등 다양한 반격 모션까지 말이죠.
여기서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한 ‘피로도’입니다. 전투가 요구하는 집중력도 문제지만, 고어물 매니아나 좀비 애호가가 아니라면 마음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비주얼 또한 정신력을 갉아먹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F.L.E.S.H 시스템은 리얼한 좀비와 타격감을 구현해내는데 큰 도움을 줬지만, 그만큼 그로테스크함도 올라갔습니다. 멀쩡하던 좀비가 안면에 펀치 한 대 맞으면 바로 눈알을 데롱거리며 걸어오는데 마음이 편할리가요.
게다가 1인칭이라는 시점의 한계까지 겹쳐 게임은 게이머를 극한의 상태로 몰아갑니다. 전투 시의 긴장감 + 천장을 깨고 솟아오른 고어 연출 + 1인칭 근접전에서의 카메라 워킹의 삼박자가 구토 유발의 황금 트라이앵글을 만들죠. 웬만한 고어 게임쯤은 밥 먹으면서도 하는 저조차도 두 시간에 한 번씩은 쉬어줘야 했습니다.
참아줄 수는 있지만 이건 좀 별로야
다른 부분을 봅시다. 앞서, ‘데드 아일랜드2’를 굳이 한 줄로 요약할 때 ‘좀비 액션 게임’이나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이 아닌, ‘좀비 패는 게임’으로 정의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게임의 세계 구성이나 연출, 전투는 참 맛깔나게 잘 만들어 두었는데, 그 외 다른 부분에서는 꽤 아쉬운 점들이 보입니다. 게임 전체를 보면 큰 문제라 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조금만 더 손봤어도 훨씬 좋았을 법한, 어찌보면 안타까운 부분들이기도 하죠.
가장 먼저 말할 건 레벨 디자인입니다. ‘데드 아일랜드2’는 전작과 비슷하게 디테일하지만 공간 자체는 그리 넓지 않은 필드 10개로 구성된 세미 오픈월드 게임입니다. LA를 가상의 무대로 다루지만 통채로 이를 구현해두지 않고 ‘벨 에어’나 ‘베벌리 힐즈’, ‘헐리우드 스튜디오’등 실제 LA의 유명 장소들을 뚝뚝 떼다가 하나씩 만들어두었죠. 그리고 이 각 지역마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 숨겨진 상자 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숨겨진 요소들을 찾아내는 퍼즐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렵습니다. 숨겨진 상자를 열려면 열쇠를 구해야 하는데, 열쇠를 가진 좀비는 대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죠. 지도가 존재하지만 직관적으로 길과 갈 수 있는 영역을 표시해주기보단 관광 책자에 인디케이터가 붙은 형태다 보니 솔직히 있으나 마나입니다. 이 게임이 퍼즐 게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좀비 헌팅 게임 치곤 너무 과한 느낌입니다.
또한, ‘세미’이긴 해도 오픈월드 형태를 가져온 만큼 거의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빠른 이동’기능이 너무 늦게 생깁니다. 서사적 관점에서 보면 개연성이 있다 볼 수 있지만, 애초에 서사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게임임에도 게임을 대여섯 시간은 플레이해야 빠른 이동이 열리는 건 게이머 친화적이라곤 할 수 없는 디자인입니다.
게다가 ‘데드 아일랜드2’의 좀비 스폰 시스템은 마치 ‘사이버펑크 2077’의 경찰처럼 일정 범위 밖에서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으면 생기는 시스템인데, 그러다 보니 어딜 가려고만 하면 몇 번씩 원치 않은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빨리 가서 무기 수리하고 정비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요.
게임 페이즈의 전환이 되는 ‘총기’를 사용하게 되는 시점 또한 꽤 늦은 편입니다. 차라리 초반부터 총기를 풀어주되 초반부엔 저열한 성능의 총기만 스폰되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플레이어가 근접전으로 대부분의 좀비를 박살낼 수 있을 때 쯤 애매한 시점에 총기가 등장해 버리니 쓰기도 애매하고 버리긴 아까운 계륵이 되어버립니다. 일종의 필살기처럼 쓰긴 합니다만 영 손이 안가더라고요. LA라면 그냥 총 몇 자루 굴러다녀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죠. 제가 출장갔다가 총소리 여러번 들어 봐서 압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게임의 핵심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전투의 비중이 근접전에 70~80%가 몰려 있는 만큼 늦은 총기의 등장은 게이머가 충분히 근접전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기 위한 의도로 보이며, 빠른 이동 또한 자연스럽게 게임 내 콘텐츠를 발견하게끔 게이머의 동선을 유도하려면 늦은 시점에 가능해지는게 개발사 입장에서는 일견 합리적인 디자인입니다. 다만, 이를 짜는데 게이머의 입장을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한 번쯤 고민해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데드 아일랜드’의 스타일 정립은 끝, 다음은?
정리하면, ‘데드 아일랜드2’는 전작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편, 게임의 코어라 할 수 있는 ‘좀비와의 전투’ 그 자체를 매우 유려하게 조형해둔 게임입니다. 한 번의 전투를 치를 때마다 마치 실제 좀비 영화의 생존자가 된 것 처럼 몰입해서 싸울 수 있지만, 그 몰입에 비례해 피로를 느낄 정도로 핵심을 잘 다져 놓았습니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놔 버린 MMA 선수마냥 매콤 펀치와 이단옆차기를 날리거나, 무지막지한 체력으로 날 괴롭히던 특수 좀비의 뚝배기에 마지막 도끼날을 박아넣을 때의 쾌감은 다른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강렬한 쾌감을 줍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비슷한 게임에서는 그냥 그랬는데 좀비를 때리는 행위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다만, 그 핵심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게이머의 편리함보다는 게임의 합리성을 우선하는 개발 의도가 다소 드러나는 점은 아쉽습니다. 게임의 핵심 요소를 해치지는 않기에 못참을 정도는 아니지만, 게이머의 플레이 동선에 대한 노골적 유도는 현대 게임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만큼 조금 더 개선이 이뤄지면 보다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겠죠.
게임에 대해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온라인 플레이를 경험해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데드 아일랜드2’는 전작처럼 코옵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며, 본인 스스로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는 적대적 환경 또한 상당한 피로를 유발하는 요소이기에 코옵 플레이가 가능했다면 앞서 말한 피로도 중 상당량이 경감됐을 것 같습니다. 정식 출시 이후였다면 어렵지 않게 가능했으리라 생각되나, 리뷰용 선행 빌드의 경우 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이머가 매우 적다 보니 플레이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해도 저는 이 게임에 꽤 좋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데드 아일랜드2’는 꽤 오랜 시간을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이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개발사가 두 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도 전작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팬들이 사랑한 부분을 살려냈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의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기조를 유지한 채 후속 작업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사회생활 좀 해 본 분들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공감할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후속작이 나와준 덕분에, 조금은 늦었지만 ‘데드 아일랜드’라는 프랜차이즈가 다른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과는 차별화되는 스타일로서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출시가 끝이 아닌 시작이 되는 요즘이니만큼, 앞으로 게임을 어떻게 굴리냐에 따라 DLC, 그리고 이후의 후속작에 대한 전망도 좋아졌다 볼 수 있겠죠. 마침 또 시리즈의 특징인 세미 오픈월드가 DLC 내기엔 안성맞춤입니다. 콘텐츠와 편의성이 업데이트를 통해 다져진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도 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출처: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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